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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사상 최대 판돈을 건 중앙은행의 베팅

중앙일보 2014.02.08 00:13 종합 23면 지면보기
세계 경제를 움직여온 ‘연금술사들’. 왼쪽부터 머빈 킹 전 영란은행장, 장 클로드 트리셰 전 유럽중앙은행장, 벤 버냉키 전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중앙포토]


연금술사들

닐 어윈 지음

김선영 옮김, 비즈니스맵

616쪽, 2만5000원



“경기순응적 정책을 추가로 도입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이런 말이 영란은행 총재나 유럽중앙은행 총재, 미 연준 의장의 입에서 나오면 월가나 런던·홍콩의 증권거래소는 광기를 일으키며 좋아한다. 그들은 조만간 파운드나 유로·달러를 퍼붓겠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한다. 이렇게 되면 유가도 급등해 슈투트가르트의 트럭운전사는 장사하기 힘들어진다. 세인트루이스의 젊은 부부는 집 장만이 한결 쉬워질 것이다.(35~36쪽)



 중앙은행 총재들은 힘이 세다. 전세계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불가사의한 것은 이런 중앙은행들이 사립은행이란 사실이다. 공무원도 아니고 선출되지도 않은 중앙은행장들이 왜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질까. 저자 어윈은 그래서 이들을 ‘연금술사’라 부른다. 평범한 금속을 금으로 바꾸지 못하지만 분명 신기한 재주를 부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호황과 불황의 파괴적인 주기를 그린다. 금리 조정과 통화수요 관리를 통해 이런 파괴적 주기를 보다 바람직하게 조정하는 게 중앙은행의 역할이다. 문제는 이런 임무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은 17세기 스웨덴에서 탄생한 중앙은행의 궤적을 추적하며 성공과 실패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그린다. 때로는 중앙은행이 전쟁 자금 마련에 동원돼 악성 인플레이션을 야기했고, 1929년에는 극단적인 정책 실수로 대공황을 불렀다. 분명한 점은 중앙은행이 실패하면 그 사회도 예외없이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2007년 8월,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에 맞서 미국·유럽·영국의 중앙은행장들이 어떻게 싸웠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가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기자로 현장을 지켜본 만큼 글에 생동감이 넘친다. 책은 한발 앞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언한 런던 정경대학의 신현송 교수 이야기를 소개한다. “런던의 밀레니엄 브리지는 개통 첫날 1000여 명이 한꺼번에 걷다가 심하게 흔들려 바로 폐쇄됐다. (…) 확률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 실제 벌어진 것이다. 온갖 악재가 한꺼번에 겹쳐지는 퍼펙트 스톰은 현실이 될 수 있다.”(188쪽)



 연금술사들은 유례없이 금리를 떨어뜨리고 통화량을 거의 무제한으로 풀었다. 화폐 장벽을 쌓아 그 안에 온갖 문제를 가두려는 조치였다. 패닉으로 치닫던 시장 심리는 제로 금리와 양적완화 덕분에 안정을 되찾았다.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정치권과 외국정부, 금융투자자들은 사방에서 중앙은행을 포위하고 압박해 왔다. 이 책은 이들이 어떻게 치열한 입법투쟁, 복잡한 국가간의 대립에 유연하고 단호하게 맞섰는지를 묘사한다. 연금술사들의 분투에 대한 어윈의 평가는 존경심에 가깝다. “파국을 피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은 딱 여기까지다. 이들 연금술사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평가는 현재 진행중인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그리고 그 다음에 남을 금리 인상까지 지켜보고 내려야 한다. 과거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통화 긴축과 고금리로 ‘인간 도살자’라 불리던 미 연준 폴 볼커 전 의장(1979~87년)은 결국 대안정기를 가져온 영웅으로 재평가됐다. 현직 시절에 ‘마에스트로’로 추앙받던 앨런 그린스펀(1987~2006년)은 오히려 저금리를 지나치게 오래 끌어 글로벌 불균형과 거품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손가락질 받고 있다.



 국제금융은 전통적인 수요·공급 논리로 접근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해졌다. 상품시장은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지만,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선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더 늘어나 수급불균형이 발생하기 일쑤다. 쏠림현상도 심각하다. 한꺼번에 돈을 쏟아붓다가 일시에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 그것도 최악의 순간에 빼내는 일이 다반사다. 중앙은행은 이에 맞서 인플레이션 관리라는 전통적 임무에 더해 ‘금융안정’이라는 새로운 역할까지 떠맡고 있다. 덩달아 중앙은행의 규모도 몰라보게 비대해졌다.



과연 앞으로 연금술사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어윈은 “중앙은행이 순결한 사제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사고”라 면서도 비교적 밝게 내다보는 쪽이다. “앞으로 후계자들은 이들 연금술사들의 실패와 실수로부터 배울 것이다. (…) 중앙은행의 역사는 공정하고 번영하는 사회를 유지하는 방법을 간헐적으로 찾아내면서, 끊임없이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는 과정이었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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