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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서의 종횡고금 ②] '팔 긴'사람과 '다리 긴'사람의 연합 … 그들이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법

중앙일보 2014.02.08 00:11 종합 23면 지면보기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 조조의 아들로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가 있다. 그는 문학비평의 전범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전론(典論)·논문(論文)』을 남겼다. 그 중 한마디다. “문인들이 서로 헐뜯는 것은 예로부터 그러하다. 자신의 장점으로 남의 단점을 공격한다.(文人相輕, 自古而然. 是以各以所長, 相輕所短.)”



 비단 문인들만 그렇겠는가. 아마 모든 인간의 야수적 생존 본능을 지적한 말일 것이다. 고대의 골계가(滑稽家), 오늘로 치면 일종의 개그맨이었던 동방삭(東方朔)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신이경(神異經)』에는 신화의 옷을 입고 세상을 풍자하는 신랄한 언사가 넘친다. 궁기(窮奇)라는 괴상한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보자.



 이 녀석은 “사람의 말을 알아들어서 싸우는 소리를 듣고는 번번이 정직한 사람을 잡아먹는다. 어떤 사람이 성실하다는 말을 들으면 그의 코를 베어 먹고, 흉악하고 그릇되다는 말을 들으면 항상 짐승을 잡아 선물로 바친다.(知人言語, 聞人鬪輒食直者, 聞人忠信, 輒食其鼻, 聞人惡逆不善, 輒殺獸往饋之.)”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말이 혹시 여기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동방삭은 시비곡직이 전도된 이 괴상한 동물을 통해 부조리한 세태를 꼬집었다. 나쁜 인간들이 온갖 수단을 통해 득세하고 잘난 사람을 끌어내리기에 착하기만 한 사람은 실패한다. 궁기를 통해 동방삭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세상은 살벌한 전쟁판이다. 선악의 올바른 기준은 없고 강자의 말이 진리이다.



 이러한 약육강식의 논리는 사실 다윈에 의해 보증을 받아 오늘날까지도 생존경쟁의 법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할 때 사람들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생물들 사이에는 우승열패(優勝劣敗)의 경쟁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공생도 있었다. 제국주의가 팽창했던 그 시절에 사람들의 눈에는 약육강식의 사례만 보였지 개미와 진딧물 사이 같은 공생의 사례는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신화는 자연과학에 앞서 훌륭한 공생의 사례를 이미 제시한 바 있다. 고대 동양의 기서(奇書) 『산해경(山海經)』을 보면 동쪽 끝 해변에 장비국(長臂國)과 장고국(長股國)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장비국 사람들은 팔이 엄청 길고 장고국 사람들은 다리가 매우 길었다고 한다. 장비국 사람들은 팔은 길지만 다리가 짧아서 깊은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장고국 사람들은 다리는 길지만 팔이 짧아서 물속의 고기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자 장고국 사람이 장비국 사람을 업고 바다로 들어가니 이 문제가 해결되어 두 나라 사람들은 아주 행복해졌다.



 사람들만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여씨춘추(呂氏春秋)』 불광(不廣)편에 나오는 궐(<87E8>)이라는 짐승은 앞은 쥐를 닮고 뒤는 토끼를 닮아 달리면 넘어졌는데 위급한 일이 생기면 공공(<86E9><86E9>)과 거허(巨虛)라는 짐승들이 나타나 업고 달아났다고 한다. 이들이 좋아하는 감초를 평소 궐이 구해다 줬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생존 경쟁이 아니라 생존 공생의 시대라고 한다. 도처에서 상생이 화두다. 요즘 부상하고 있는 남북통일 대박론은 저 장비국과 장고국 사람들처럼 남과 북의 차이를 대립보다 공생의 논리로 풀어간다면 결코 몽상이 아니다.



◆정재서=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신화학과 도교학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상상력을 풀고 있다. 저서로 동양 신화를 분석·정리한 『이야기 동양신화』『중국 신화의 세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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