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통사고 피해자 멀쩡해 보여 명함만 주고 떠났다면 뺑소니

중앙일보 2014.02.05 01:08 종합 16면 지면보기
자영업자 김모(61)씨는 지난해 7월 울산시 남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차를 후진하다 교통사고를 냈다. 뒤편에 멈춰 있던 택시를 발견하지 못한 탓이다. 차에서 내린 김씨는 택시운전기사 강모(55)씨에게 명함을 주고 현장을 떠났다. 강씨가 크게 다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병원으로 가보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김씨는 피해자가 ‘뺑소니를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재판에 넘겨졌다.


울산지법 유죄 판결 잇따라
"부상 여부 스스로 판단하고
현장 구호 조치 않으면 잘못"

 교통사고 현장에서 피해자에게 연락처를 알려줬다 하더라도 ‘구호조치’가 없었다면 뺑소니로 본다는 법원 판단이 잇따르고 있다. 피해자의 부상 여부를 확인하거나 ‘병원으로 가보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유죄라는 것이다.



 울산지법 형사4단독(정성호 판사)은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차량)과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으로 기소된 김씨에 대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고 3일 밝혔다. 정성호 판사는 “피고인은 교통사고 직후 차량에서 내리기는 했으나 차량의 피해 여부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운전자의 부상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기 때문에 유죄”라고 판시했다.



김씨의 변호인은 재판에서 “매우 경미한 교통사고였다. 사고 직후 운전자와 차량의 상태도 확인했다. 상대 운전자에게 명함까지 주고 현장을 떠났기 때문에 뺑소니가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도 법원은 비슷한 사건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회사원 손모(42)씨는 2012년 2월 양산시 물금읍의 한 교차로에서 교통사고를 냈다. 후진 중 차량 뒤편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면서 멈춰 있던 경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사고 직후 차에서 내린 손씨는 차에 타고 있던 피해자 이모(26·여)씨와 함께 차량 상태를 살폈다. 스마트폰으로 현장 사진도 찍었다. 피해자가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판단한 손씨는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피해자에게 주고 현장을 떠났다. 나중에라도 사고 수습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사고 현장에 머무른 시간은 약 20분. 하지만 합의가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으면서 재판에 넘겨져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손씨의 행위를 구호조치로 판단하고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에서 손씨가 피해자의 부상 여부를 묻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판결이 뒤집어졌다.



 박주영 울산지법 공보판사는 “사고 직후 피해자에게 ‘괜찮으십니까. 다친 곳은 없습니까’라는 말 한마디가 뺑소니의 유죄와 무죄를 결정 짓기도 한다. 가해자가 임의로 부상 여부를 판단해 현장을 떠난다면, 명함을 주고 갔다 하더라도 구호조치로 보지 않는 게 법원 판단”이라고 조언했다.



차상은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