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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한국, 신흥국입니까

중앙일보 2014.02.05 00:58 종합 1면 지면보기
한국 경제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신흥시장 불안과 중국 경기 둔화 조짐, 미국 경기의 이상 신호가 한꺼번에 겹치면서다. 화들짝 놀란 전 세계 투자자금은 위험지대에서 안전지대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외국인, 주식 팔지만 채권은 사들여
국제 금융가 "멕시코·폴란드와 동급"

 한국은 두 지대의 경계에 서 있다. 위기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느냐, ‘탈(脫)신흥국’으로 차별화할 수 있느냐의 갈림길이다. 증시엔 이미 찬바람이 불고 있다. 위기 경보가 울리자 외국인들은 연일 한국 주식을 내다팔았다. 연초 이후 산 주식보다 판 주식이 2조1000억원가량 많다. 4일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33.11포인트(1.72%) 내린 1886.85로 마감했다. 1900선을 내준 것은 지난해 8월 이후 5개월여 만이다.



 그렇다고 ‘셀(Sell) 코리아’라고 말하긴 이르다. 외국인은 여전히 한국 채권을 사고 있 다. 올 들어 3일까지 1조7235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이 때문에 국채 금리는 신흥국 위기가 불거진 이후 오히려 떨어졌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와 같은 흐름이다. 현대증권 신얼 분석가는 “채권시장만 보면 한국은 선진국에 가깝다”고 말했다. 원화 값도 이날 소폭(달러당 0.7원) 반등했다.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예전엔 바깥의 위기가 한국 주식·원화·채권 값을 동시에 떨어뜨리는 ‘트리플 약세’를 불러왔다. 그러나 ‘버냉키 쇼크’에 1차 신흥국 위기가 발발한 지난해 6월 이후부터 따지면 원화 가치는 오히려 4% 올라가 있다. 같은 기간 아르헨티나(-34%), 인도네시아(-20%), 터키(-19%) 통화가 일제히 추락한 것과 대조된다. 흔들리긴 했지만 ‘외국인의 현금인출기’로까지 전락한 건 아닌 것이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은 “달라진 대우는 한층 튼튼해진 기초체력(펀더멘털) 덕”이라면서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면서 달러가 꾸준히 들어오는 데다 재정 건전성 면에서도 다른 신흥국과는 격차가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는 707억 달러로 사상 최대였다.



 국가 위험도를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최근 소폭 올랐다. 하지만 그 수준(0.75%포인트)이 신흥국보다는 선진국에 가깝다. CDS는 채무자가 빌린 돈을 갚을 수 없을 때 원금을 보장해주는 대신 받는 일종의 보험료다. 이 비용이 높다는 건 그만큼 채권이 부도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한국 국채의 CDS는 6.5%포인트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2차 테스트도 무사히 넘길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한국을 ‘잘나가지만 여전히 신흥국’ 정도로 보는 국제 금융시장의 통념이 강한 탓이다. 지난해 글로벌 투자회사들은 인도·터키 같은 나라에 투입됐던 자금을 빼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한국에 더 줬다. 하지만 요즘은 신흥국 투자펀드에 들어가 있던 돈을 아예 선진국 펀드로 옮기고 있다. 지난달에만 122억 달러(약 13조원)가 한국이 포함된 신흥국 증시에서 빠져나갔다.



국제금융협회(IIF) 수석이코노미스트 찰스 콜린스는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자금 유출입, 환율 변동성 측면에서 한국을 필리핀·폴란드·멕시코·칠레와 유사한 범주로 묶고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취약한 5개국’(인도·인도네시아·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터키)보다는 기초체력이 좋지만 선진국 수준의 안정성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는 “한국은 특히 주식·채권 시장의 외국인 투자비중이 커 신흥국 위기가 본격적으로 확산해 탈출 러시가 일어날 경우 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익주 국제금융센터 원장은 “외국인들이 평소에는 경상수지와 외환보유액을 쳐다보지만, 상황이 나빠지면 은행의 예금 대비 대출 비율, 가계부채 같은 지표까지 끄집어내 꼬투리를 잡곤 한다”며 “호들갑을 떨면서 과잉 대응할 필요도 없지만, 펀더멘털만 내세워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민근·조현숙·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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