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판 탈피오트 … 군대서 창업인재 키운다

중앙일보 2014.02.05 00:55 종합 2면 지면보기
세계적 생물공학 기업인 컴푸젠의 창업자 엘리 민츠는 이스라엘 군(軍) 출신이다. 그는 유전학자였던 부인이 유전자 데이터 분석에 애를 먹는 것을 보고 1년 만에 유전자 해독 기술을 개발해 성공을 거뒀다. 많은 유전학자가 시도했지만 결국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게 했던 작업을 단기간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군 경험 덕택이다. 그는 군에서 테러리스트를 분류하기 위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컴푸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60명의 수학자 중 25명이 민츠와 같이 군대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이다.


KAIST 등서 20명 장교로 선발
이공계 인재 경력단절 막아
"이스라엘 창업 떠받치는 기둥"

 창조와 혁신. 군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용어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군대에서 익힌 혁신적 마인드를 활용해 창업에 성공하는 인재들이 많다. 탈피오트(Talpiot)라는 독특한 군 복무제도 덕분이다. 한국처럼 징병제 국가인 이스라엘은 탈피오트 제도를 통해 우수 인재가 군 복무기간 동안 다양한 과학기술 분야를 연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최고 중의 최고’를 뜻하는 히브리어에서 따온 탈피오트는 매년 고교를 졸업한 이공계 영재 50여 명을 선발해 부대 훈련과 대학교육을 동시에 이수토록 한다. 이들은 군에서 최첨단 군사장비를 개발하거나 해킹 등 사이버전(戰)에 대응한다. 탈피오트 과정을 마치고 제대하면 ‘탈피온(Talpion)’이라는 명예가 수여된다. 군대는 이들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키울 수 있고, 탈피오트 출신은 군 생활을 통해 얻은 경험과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창업에 나설 수 있기에 서로 ‘윈윈’하는 셈이다.



 이를 벤치마킹한 제도가 한국에서도 시행된다. 정부는 올해부터 과학 분야의 우수 인재를 선발해 군 장교로 임관시키기로 했다. 사이버전을 다루는 전문 장교 인력도 육성한다. 과학기술전문사관제다. 국방부와 미래창조과학부는 이 같은 내용의 업무 협약을 4일 체결했다.



 과학기술전문사관은 KAIST·광주과학기술원·대구경북과학기술원·울산과기대·포스텍 등 5개 특성화대 재학생 가운데 매년 20명씩 후보를 뽑는다. 후보생들은 대학 졸업 후 전기·전자, 기계, 컴퓨터, 물리·화학 분야의 연구개발 전문 장교로 임관해 국방과학연구원(ADD)에서 3년간 근무하게 된다. 선발된 후보생은 등록금이 전액 면제되고 전문 역량 개발비를 받는다. 정부는 올해 10월 첫 후보생을 선발해 2017년 임관시킬 계획이다.



 또한 정부는 과학기술전문사관이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하면 개인 희망에 따라 상위 학위 진학, 취업, 창업을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함께 마련할 방침이다. “탈피오트 제대 후 대학에서 연구를 지속하거나 창업한 덕분에 이스라엘에선 20대부터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인재들을 배출할 수 있었다”(양세훈 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고 평가해서다. 탈피오트가 이스라엘의 창조경제와 창업국가를 지탱하는 주된 기반이 됐듯이 과학기술전문사관제 또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성과를 내게 하는 데 첨병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깔려 있다. 컴푸젠뿐 아니라 포브스 선정 100대 기업 중 85곳이 쓴다는 디지털보안 솔루션업체 ‘나이스시스템’, 인터넷 방화벽을 발명한 보안업체 ‘체크포인트’, 인기 사용자제작콘텐트(UCC) 사이트인 ‘메타카페’, 이베이가 인수한 결제 보안업체 ‘프로드 사이언시스’ 등이 탈피오트 출신이 만든 기업들이다.



 사이버 전문인력은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졸업생 30명이 2016년부터 장교급 사이버 전문인력으로 첫 임관을 한다. 사이버 전문 부사관과 사병도 해마다 20명 안팎으로 뽑아 2016년부터 실전 배치하기로 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공계 우수 인재들의 경력 단절을 막고 국방과학 분야와 정보보호 분야에 필요한 전문 장교와 하사관을 양성하기 위해 이런 방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손해용·유성운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