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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 칼럼] 인간문화재, 문턱이 너무 높고 좁다

중앙일보 2014.02.05 00:31 종합 31면 지면보기
노재현
중앙북스 대표
어린 시절 설 명절을 쇤 추억은 가수 김세레나씨의 복스러운 얼굴과 겹쳐진다. 동네를 통틀어도 TV가 몇 대 없던 시절, 염치 불고하고 TV 있는 집을 찾아가면 안방은 벌써 마을사람들로 꽉 차 발 고린내가 진동했다. 김세레나 없는 설 특집방송은 상상할 수 없었다. 성주풀이, 꽃타령, 새타령, 갑돌이와 갑순이, 까투리타령…. 전통 본래의 모양새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국악의 ‘냄새’를 김세레나로부터 선사받았다. 누군가는 그런 일을 해야 하는 법이다. 우후죽순 격으로 등장해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는 퓨전국악 그룹들도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신세대 국악인 송소희양이 휴대전화 광고에 나와 청아하게 목청을 돋우는 모습도 그래서 귀엽게 보인다.



 그렇더라도 좋은 원단이 있어야 맵시 있는 옷이 나오고 탄탄한 원작 덕에 영화도 빛을 보는 법이다. 국악을 비롯한 전통문화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문화재보호법은 1962년 제정됐다. 강도근제 흥보가 이수자이기도 한 전인삼 전남대 교수는 “해방 후 국악계 명창들은 끼니를 잇기 힘들 정도였다. 문화재보호법 덕분에 가치를 인정받아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속칭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는 전통 예술인의 꽃이라 할 만한 귀한 존재들이다. 전통문화의 정상에 있는 이들 덕분에 세계가 우리 문화를 알아주고 나라의 격을 쳐준다. 약간의 재정적 지원은 그런 공로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하지만 이수자-전수교육조교-보유자로 등급이 나뉘는 중요무형문화재 전승 코스는 전통문화 보존이라는 ‘빛’과 함께 비지정자 배제라는 ‘그림자’를 함께 안고 있다. 모든 분야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 기예에 의존하는 몇몇 종목의 경우 일단 보유자로 지정되면 거의 왕과 같은 지위를 누릴 수 있다. 전수교육조교쯤 되면 보유자인 스승 아래에서 거의 평생을 몸 바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실력이 출중해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하면 따르는 제자도 없이 춥고 외로운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 무가(巫歌)의 양이 많아 학술적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고도 고 박병천 선생의 탁월한 춤과 예술성에 눌려 보유자가 되지 못한 진도 씻김굿 명인 최정례 할머니가 그런 예다. 이유는 하나. 진도 씻김굿 보유자를 두 명 둘 수 없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맞는 말일까.



 재작년부터 문화재청은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인정 제도를 개선하겠다며 전통예술의 유파를 인정하지 않는 방안을 추진했다. 예를 들어 춘향가·흥부가·심청가·적벽가·수궁가의 다섯 마당이 있는 판소리의 경우 작품마다 각기 다른 창법·대사를 구사하는 유파(제)가 있는데, 유파별로 보유자를 지정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이유는? 인정받은 유파만 전승되고 그러지 못한 유파는 소멸되며, 결국 특정 기예 중심의 경직된 전승 풍토가 조성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책은 금세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온 유파 고유의 예술성을 무시한다”는 반발에 부닥쳤다. 문화재청 류춘규 무형문화재과장은 “여론과 관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끝에 유파를 인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물론 유파별 차이가 한 세기 넘게 축적된 판소리야 당연히 인정을 받아야겠지만, 문화재청의 당초 문제의식만큼은 충분히 곱씹어볼 만하다고 본다.



 올해 전통춤 분야에는 모두가 숨죽여 기다리는 빅 이벤트가 하나 있다. 하반기로 예정된 태평무(중요무형문화재 92호)·살풀이(97호)의 보유자 인정심사다. 강선영(태평무), 이매방·김숙자(살풀이춤) 같은 전설적인 춤꾼들의 빈자리를 메우는 절차이기에 휘하 전수교육조교들 중 과연 누가 보유자의 영예를 안게 될지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불꽃 튀는 경쟁일 게 뻔하니 벌써부터 후유증을 걱정하는 이도 있다. 한 국악인은 “만일 나한테 심사에 참여하라는 제의가 온다면 거절하겠다. 엄청난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일부 종목의 보유자 경쟁이 치열한 것은 그만큼 문턱이 높고 좁아서다. 같은 전통춤인데도 민살풀이춤의 명인 장금도·조갑녀 할머니는 보유자가 아닌 탓에 힘도 없고 제자도 없는 신세다.



 우리는 1964년 이래 모두 131개 종목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그러나 중국은 2005년 뒤늦게 자국 무형문화유산 전수조사를 벌인 뒤 2006~2011년까지 1218개 항목을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으로, 7109개 항목을 ‘성(省)급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웬만큼 구색만 갖추면 문화유산 모자를 씌워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처럼 할 것은 아니지만, 이제 우리도 문호를 어느 정도 넓힐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문화의 생명은 다양성에 있는데, 우리는 선택받은 하나만 왕으로 모시고 나머지는 모조리 찬밥 취급이다.



노재현 중앙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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