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트북을 열며] 민주당, '민주 대 반민주' 벗어나야 산다

중앙일보 2014.02.05 00:30 종합 30면 지면보기
채병건
정치국제부문 차장
지난해 12월 17일 민주당은 “박근혜 대통령은 대처의 길이 아니라 메르켈의 길을 가야 한다”는 논평을 냈다. “제1야당을 제압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상생의 정치를 선택했다”고 독일 메르켈 총리를 평가했다. 뒤늦게 이 논평을 꺼내 드는 이유는 ‘포용’은 여권만 아니라 야권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지금까지도 야권을 지배하는 프레임은 ‘민주 대 반민주’다. 그런데 민주 대 반민주의 논리가 과거 민주화의 동력이었음은 분명하지만 그 바탕에 정체성으로 세상만사를 판단하려는 태도가 숨어 있다면 과하다.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사회는 다원화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갈등을 ‘민주 대 반민주’로 덮을 경우 이해의 충돌이 자칫 선악의 충돌로 포장이 된다. 민주 대 반민주는 이면에선 ‘비(非)민주’를 양산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엔 대화와 타협을 통한 갈등의 조정도 포함된다. 그런데 상대를 ‘반민주’로 규정하는 순간 대화의 여지는 줄어든다. 지난해 민주당은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여권과 맞붙었는데 이 과정에서 101일간 장외투쟁을 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은 반복돼선 안 되는 게 분명했지만 이유야 어찌 됐건 여의도 국회보다 서울시청 앞 천막당사가 중심이었던 것은 의회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민주 대 반민주의 또 다른 그늘은 정치적 양극화다. 반민주와 종북은 항상 쌍둥이로 등장한다. 지난해 9월 정기국회가 파행되는 와중에 “새누리당의 뿌리는 독재 정권”이라는 민주당과 “종북 세력의 숙주 노릇을 하지 않았나”라는 새누리당이 충돌한 게 그렇다. 이런 식의 공방은 각자의 지지층 결집에는 도움이 되나 상대를 향한 분노를 축적시키며 통합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갉아먹는다. 연평도에 포를 쏘고 천안함을 폭침시킨 북한과도 대화하라는 게 야권의 일관된 논리라면 같은 체제에서 살아가는 여권과는 필요하면 타협할 수 있는 게 논리적으로 맞다.



 결과적으론 민주 대 반민주에 자리한 정체성이 유일 잣대가 될 경우 야권에서 한국판 메르켈의 등장은 쉽지 않다. 메르켈 총리가 친(親)원전 정책이라는 기민당의 정체성을 고수했다면 원전 폐기를 수용할 수 있었겠는가. 민주당은 과거 집권 시절인 2004년 정체성을 따르지 않은 적이 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명분 없는 전쟁”이라고 반발하고 지지 세력이 이반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미국·영국에 뒤이은 세계 세 번째 규모로 이라크에 파병했다. 그해 12월 노 전 대통령이 자이툰 부대를 찾았을 때 한 해병대원이 그를 껴안아 번쩍 들어 올렸고 이 사진은 잔잔한 감동을 줬다.



 민주당이 여당과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지지층이 다르니 그렇다. 그렇다고 민주 대 반민주의 정체성을 모든 현안에 적용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메르켈 리더십이 우리 정치에 필요하다면 여야 할 것 없이 “우리는 왜 안 되는가”라고 고민하는 게 솔직한 태도다.



채병건 정치국제부문 차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