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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선물 준 한국 … 이젠 돌려줄래요

중앙일보 2014.02.05 00:27 종합 27면 지면보기
아제르바이잔에서 온 유학생 라힐 아마도바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모금활동을 하고 있다.


고국인 아제르바이잔(Republic of Azerbaijan)에서 보내주는 20여만원으로 한 달 밥값·책값 등을 해결하기에도 빠듯하다. 그래도 매달 빠트리지 않고 돈 쓰는 데가 있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기부금이다.

아제르바이잔 유학생 라힐
다문화가정 한국 적응 돕기도



 “고마운 한국에 보답하겠다”며 매일 300원, 500원씩 용돈을 모아 4년째 기부금을 내고 있는 갈색 눈, 갈색 머리의 외국인 유학생 라힐 아마도바(25·여·Rahil Ahmadova). 넉넉지 않은 나라에서 유학 와서 한국 생활이 힘겹지만 2011년부터 매달 5000원씩 이웃과 나눈다.



 국내의 아제르바이잔 국민은 100여 명뿐이다. 그는 2008년 한국 정부 초청장학생으로 선발돼 한국에 왔다. 올해로 유학 생활 7년째다. 계명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경북대 대학원 경영학과에서 마케팅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영어·한국어·러시아어 등 5개 국어에 유창해 재능기부도 한다.



 2009년 계명대 한 교직원에게 불쑥 찾아간 그는 “이웃 돕는 방법을 알려 달라 ”고 했다. 그래서 저소득가정 아이들이 생활하는 복지관을 소개받았다. 일주일에 3번, 하루 2시간씩 아이들과 만났다. 1년 동안 영어 무료 수업을 하고, 과자나 과일 등 간식을 챙겨주기도 했다.



 2010년 욕심이 더 생겼다. 이번엔 적십자사를 찾아갔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때부터 분기에 한 번씩 아이들 상담교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엔 한국 생활이 서툰 다문화 가족 50명을 적십자사에 불러 자신의 한국 적응기를 전해 줬다. 지난달부턴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이웃돕기 모금함을 들고 북대구 IC 톨게이트에 나갔다. 한국 자원봉사자들도 기피한다는 고속도로 모금을 자원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그는, 자신도 한국 생활이 쉽지 않을 텐데, 왜 남을 도울까.



 한국과 얽힌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4살쯤이던 1993년 구소련에서 떨어져 나온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3년여간 전쟁을 치렀다. 아버지는 참전해 총상을 입었다.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족은 생활고를 겪었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난민촌에서 살았다. 이때 한국이란 나라를 처음 만났다.



 “난민촌에서 적신월(赤新月·이슬람 국가의 적십자사, 초승달 모양 표장 사용) 봉사원이 빵과 우유, 옷을 줬어요. 한국인이 낸 후원금으로 전하는 물품이라고 들었어요. 계속 도움 받았죠.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됐으니, 한국이 공부 선물 을 제게 또 한 셈이죠.”



 그는 새로운 이웃돕기 단체를 만들고 있다. 대학생·대학원생 등 유학생만 따로 모아 한국인을 돕는 봉사 단체다. 단체 이름은 ‘HOPE’다. “석사를 받고, 취직하면 월급의 10% 정도는 한국인을 돕는 데 쓸 생각이에요. 그땐 제가 한국에 선물을 하는 거죠.”



대구=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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