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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아현고가 … 근대화 상징 헐린다

중앙일보 2014.02.05 00:09 종합 16면 지면보기
1968년 9월 19일 개통 당일 아현고가도로 위로 차량이 통행하고 있다. 길이 942m, 폭 15m의 아현고가도로는 국내 최초 고가도로다.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택시기사 이덕주씨가 1968년 9월 20일 본지에 기고한 글. 국내 첫 고가도로인 아현고가를 달린 소감이 적혀 있다.
서울 아현고가도로가 개통된 1968년 9월 19일, 당시 택시기사 이덕주씨가 중앙일보에 ‘논스톱의 쾌감’이란 제목의 기고문을 보냈다.

국내 첫 고가, 내일부터 철거
노후화로 보수비 많이 들고
"개발 막는다" 민원도 늘어
3월까지 공사, 혼잡 땐 우회



 “서울의 새 명물이 된 고가도로를 왕래하면서 일찍이 느껴보지 못했던 논스톱의 쾌감에 흐뭇했다. 말로만 스피드시대에 살면서 도로를 입체화(고가도로)하지 못하고 지내왔던 우리들로서는 이번 완공은 오히려 늦은 감마저 없지 않다.” <본지 68년 9월 20일자 3면>



 이 글에는 근대화의 상징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서울시 1년 예산이 252억원이었던 그때 3억2000만원을 들여 만든 첫 고가도로가 아현고가다. 이를 시발로 서울에는 101개의 고가가 지어졌다.



1975년 발매된 국민건전가요 2집 앨범 재킷에 사용된 청계고가도로 사진.
 그랬던 아현고가도로가 6일 철거작업에 들어간다. 노후화로 유지·보수비용(연 4억원) 부담이 커진 데다 주변 개발을 저해한다는 민원이 계속돼 왔기 때문이다. 3월 말 철거가 끝나면 이 자리엔 중앙버스전용차로(신촌로~충정로 2.2㎞)가 설치된다. 고가 진·출입 구간을 제외한 일반차로는 공사기간에도 현행 6차로 운영된다. 철거에 따른 혼잡을 피하기 위해서는 ‘공덕오거리~만리재로~염천교~도심’ ‘신촌로터리~성산로~독립문역교차로~도심’과 같은 우회로를 이용하면 된다. 서울시는 오는 8일 오전 11시~오후 4시 시민에게 아현고가를 개방해 마지막 걷기 행사를 갖는다.



 아현에 이어 서대문고가도 올해 철거되고, 서울역고가에 대한 철거 여부가 곧 결정된다. 2002년 떡전고가를 시작으로, 이미 15개의 고가도로가 철거로 사라졌다. 청계고가도로가 철거될 땐 교통 체증에 대한 우려로 반대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대중교통 확대와 보행자 중심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순 없었다.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20세기 서울은 고가도로의 전성기였다. 도심 외곽에서 도심으로 진입하는 주요 통로마다 고가가 건설됐다. 유동 인구와 물류가 증가하는 양적 성장의 시대에 고가도로는 근대화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청계고가(옛 3·1고가도로) 사진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알리는 해외홍보물에도 담겼다. 가요 앨범의 재킷에도 고가 사진이 들어갔다. 통금시간이 있던 때 고가는 경찰의 단속을 피하는 대피로가 됐다. 72년 본지에 소개된 기사다.



 “서울의 도심을 잇는 고가도로가 통금을 위반한 영업용 택시와 행인들에게 도피로로 이용되고 있다. 운전사들은 이 심야 영업행위를 은어로 ‘고가도로를 난다’고 표현한다.”



 지하철 건설로 80년대 잠시 주춤했던 고가 건설은 90년대 들어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86아시안게임·88올림픽을 거치면서 전국적인 마이카 시대가 열렸다. 시울시내 자동차 대수는 91년 100만 대를 돌파한 후 매년 10만대씩 증가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도시계획이 대전환기를 맞았다. 대중교통 확대, 대기오염 방지, 보행자 중시, 디자인 강조, 상권 확대 등이 맞물리며 고가는 현대화의 상징에서 장애물로 전락했다. 주변 지역의 슬럼화로 인해 주민 민원도 더욱 거세졌다.



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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