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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 도로명주소위원회가 결정 … "결국 공무원 작품"

중앙일보 2014.02.05 00:05 강남통신 4면 지면보기
‘청담문화거리’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는 청담사거리. 하지만 이 지역은 압구정로와 삼성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새 도로 이름은 서울시 또는 각 구청 도로명주소위원회가 정한 것이다.


맨 위 사진은 10년 넘게 `산마루길`로 불리다 최근 다시 ‘압구정로 75길’로 바뀐 청담동의 한 골목길 간판.
도로명 주소가 전면 시행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시끄럽다. 한 개의 똑같은 도로명이 여러 동(洞)에 걸쳐있어 도로명만 듣고는 위치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거나 그 지역 토박이도 낯설어 하는 이상한 어감의 엉뚱한 새 도로 이름이 붙여졌기 때문이다. 특히 청담동·대치동 등 동 이름이 아예 사라진 지역 주민은 불만이 더 많다. <江南通新 1월 22·29일자>

새 도로 이름 누가 붙였나 봤더니
구 도로명위원회, 위원은 공무원이 다수
각 구, "주민의견 물었다" 주장하지만
통반장 대상 설명회 한차례 했을뿐



 자, 여기서 궁금증 하나. 대체 이런 도로 이름은 누가 붙였을까. 공식적으로는 각 지자체별로 두고 있는 도로명주소위원회다. 새 주소 개편 준비작업의 하나로 2007~2010년 안전행정부(안행부)를 포함해 전국 시·군·구가 각각 도로명주소위원회를 만들었다. 서울시와 강남3구도 당연히 따로 있다.



  자치구의 위원은 어떤 인물로 구성돼 있을까. 지자체 조례에 따르면 구는 관련 부서 공무원과 해당 분야 전문가, 구청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자 등으로, 5~14명까지 임명할 수 있다. 부구청장 또는 국장이 위원장을 맡는다. 강남구는 11명, 서초구 9명, 송파구는 10명을 두고 있다. 주민에게 혼선과 불만을 야기한 도로명을 각 구마다 10명 안팎이 좌지우지한 것이다.



  자치구 뿐 아니라 시와 안행부도 별도의 도로명주소위원회가 있다. 상·하위기관과 자치구마다 위원회를 각각 따로 둔 이유는 각 기관이 관리하는 도로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안전행정부는 시·도를 넘나드는 광역도로를 관리한다. 안행부 위원회가 이 도로의 이름을 붙일 권한이 있다는 얘기다. 시 위원회는 여러 자치구를 관통하는 도로에 이름을 붙인다. 자치구 내에만 있는 도로는 자치구 위원회가 정하는 식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양재천로’는 서초구 양재동에서 시작해 강남구 대치동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서울시에서 이름을 정했다. 반면 강남구 ‘선릉로’는 강남구 내에서 도로가 시작하고 끝나기 때문에 강남구 위원회에서 정했다. 서초구 ‘신반포로’도 이와 마찬가지로 구내 도로라 서초구 위원회가 이름을 정한 도로다.



 이번 새 도로명 주소 체계 아래에서 강남 3구가 자체적으로 정한 도로 이름은 서초구가 52개로 가장 많았다. 송파구와 강남구가 각각 22개와 3개였다.



 강남구 관계자는 “강남구 도로들은 다른 구에서부터 이어진 길이 많아 대부분 서울시에서 이름을 정했다”며 “압구정로·삼성로·서초구 잠원로는 원래 하나로 이어지는 같은 도로지만 시에서 구별 관리 편의상 구간별로 이름을 달리 붙였다”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큰길엔 하나의 같은 이름을 단다는 작명 원칙을 깬 이유다.



 그렇다면 주민 반발이 큰 서초구 ‘고무래로’는 누가 이름을 붙였을까. 서초구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도로라, 서초구 위원회가 지었다. 서초구 위원회의 위원 9명 중 외부인사는 3명 뿐이다. 위원장을 포함해 구청 공무원이 4명, 구의원·주민이 각각 1명씩이다. 전문가가 3명뿐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그 전문가 구성도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서초구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위원이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다”며 “다만 공간정보학과와 사회생활학과·산업디자인학과 교수가 각각 1명씩”이라고 말했다. 해당 지역 이름에 대해 알 수 있는 전문가가 사실상 없는 셈이다. 새 도로명이 공무원의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서초구 관계자는 “위원회에서 심의를 거쳐 도로명 (최종) 결정을 한 것은 맞지만 그 이전에 각 동에서 주민 의견을 받는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 설명회와 공청회를 2009년 동별로 한 차례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니었다. 통·반장 대상이었고, 주민에겐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서울시는 자치구보다는 형편이 조금 낫다. 19명까지 둘 수 있는데 현재 16명의 위원이 있다. 명단도 밝혔다. 이를 보면 아주대 박헌주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를 비롯해 대학교수와 지적 민간업체 대표 등 외부 인사가 12명,관련 부서 시 공무원이 4명이다. 그러나 시 위원에도 역시 지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교통시스템을 연구하는 서울연구원의 연구위원이나 도시공학과 교수, 위기관리연구소장 등이 포함돼 있다. 게다가 이 위원들이 정해야 하는 시 도로가 105개였다는 걸 감안다면 이 정도 위원 수도 결코 많지 않다.



 이름은 공무원이 짓고, 불편은 주민이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실 이런 혼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특히 강남구는 1997년 당시 도로명주소 시범사업 대상지역으로 정해져 이미 모든 길마다 새 도로명을 붙인 바 있다. 그런데 불과 10여년만에 또 다시 길 이름이 바뀐 것이다. 청담동의 한 주민은 “언제부터인가 집 앞 골목에다 ‘산마루길’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표지판을 붙였다”며 “이제 겨우 익숙해졌는데 이제 와서 또 이름을 압구정로로 바꾸니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이 주민이 말하는 길은 청담동 사거리에서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방향으로 나 있는 ‘압구정로’에서 분산된 한 개 도로다. 지금은 ‘압구정로75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안행부 관계자는 “강남구는 97년 도로명 주소 사업 시범지역이어서 모든 도로 구간마다 이름을 붙였다”며 “(다른 지역 보다) 일찍 사업을 하다보니 그만큼 고쳐야할 부분이 많이 생긴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강남구만의 문제는 아니고 현 도로명 부여 방식으로 바뀌면서 생기는 전국적인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글=조한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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