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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배신하지마 … 돈줄 막은 러시아

중앙일보 2014.02.05 00:03 종합 19면 지면보기
3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독립광장에서 진압 경찰이 바리케이드 너머 농성 중인 반정부 시위대 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날 병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한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측근을 통해 야권이 요구해온 조기 총선과 대선을 수용할 의사가 있다는 뜻을 밝혔다. [키예프 AP=뉴시스]


지난달 29일 러시아와 맞닿은 우크라이나 동쪽 국경에 화물트럭이 멈춰 섰다. 통관은 중단됐고 트럭은 며칠씩 국경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우크라이나 화물트럭연대의 유리 쿠친스키는 “화물 운송이 마비돼 이대로라면 공장은 생산을 중단하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생겼다”고 말했다. 모든 게 모스크바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총리 퇴진' 시위대에 양보안 내자
다급해진 러, 국경 막고 원조 끊어
국가부도냐 EU 편입이냐 기로에



 러시아 측은 “정치적 의도가 없는 절차”라고 주장하지만 “어느 편에 충성할지 잊지 말라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신호”라는 게 시사주간 타임의 해석이다.



 지난해 11월 28일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유럽연합(EU) 동부 파트너십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와 EU의 협력협정 체결이 무산되면서 우크라이나의 반정부 시위는 시작됐다. 정부가 EU 대신 러시아를 선택한 데 대한 반발이다. 유혈충돌로 사망자가 발생하는데도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자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양보 조치를 내놨다. 지난달 28일 니콜라이 아자로프 총리 및 내각이 총사퇴하고 집회·시위 규제강화법 등을 폐지했다.



 그러자 이번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3일 러시아 외무부는 성명을 발표해 “우크라이나 야권은 계속되는 협박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를 위기에서 건져내기 위해 정부와 대화를 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경제자문관인 세르게이 글라제프도 나섰다. 리투아니아 정상회담이 끝난 날 그는 ‘러시아 경제권으로 우크라이나를 복귀시킨 공로’로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하지만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 탓에 러시아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사태가 진행되자 다시 나선 것이다.



 글라제프는 지난달 31일 러시아 국영기업 가스프롬 사보와 한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선택권을 가졌다”며 “시위대를 제압해 국가의 위신을 지키거나, 권력을 잃고 국가가 혼돈에 빠져버리는 상황을 맞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반정부 시위 자금을 대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환전상에 미국달러 새 지폐가 많아졌다”며 “소비에트 붕괴 후 이 지역을 분할 정복하려는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논리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선전전에도 이용되고 있다. 위성을 통해 우크라이나에서도 볼 수 있는 러시아 TV 채널은 ‘미국의 반정부 시위 개입’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



 푸틴 대통령 역시 약속한 150억 달러(약 16조원) 지급을 중단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이 돈은 단순한 경제 지원이 아니라 새로운 동맹에 대한 보답으로, 약속 당사자인 총리가 물러났으니 양국의 합의에 대해 우려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돈이 없으면 당장 국가 부도 상황에 직면하는 우크라이나로선 진퇴양난이다.



 러시아가 ‘내정 간섭’으로 여겨지는 무리수를 둬가며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 한마디에 담겨 있다. “우크라이나가 없는 러시아는 일개 국가에 불과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있으면 제국이 된다.” 외교 전문가들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를 정의하는 표현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가 유럽으로 수출하는 가스 파이프라인이 지나는 허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와 세바스토폴을 통해 흑해의 지배권을 확보하고 있다. 서쪽 바다는 영국에, 발틱해는 덴마크에, 동쪽 바다는 일본에 견제당하는 러시아에 지중해로까지 연결되는 흑해는 전략 요충지다. 특히 최근 시리아 사태 중재에 나서는 등 푸틴 대통령이 중동 해결사로 나서면서 경계에 선 우크라이나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한 손에 넣기엔 만만치 않은 나라가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며 EU에 편입되기를 원하는 서부 지역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는 이들은 우크라이나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이미 반정부 시위는 반러시아 시위로 확대될 조짐이다. 광장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손을 떼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주권을 침해하지 마라’는 구호가 나붙었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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