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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신용 늪에 빠진 20대 … 넷 중 한 명꼴 7~10등급으로

중앙일보 2014.02.05 00:03 경제 3면 지면보기
대학 시절인 2006~2009년 은행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았던 20대 직장인 이건영(가명)씨. 졸업 뒤 몇 년간은 캐피털에서 빌린 고금리 자동차 할부금을 갚는 데 급급해 학자금 대출 원금과 이자를 생각 없이 자주 연체했다. 어느 날 은행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수 없단 말을 듣고 뒤늦게 확인해본 신용등급은 10등급. 은행 대출은커녕 신용카드 발급도 안 되는 저신용자 신세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월세에 살면서 남은 대출금(1255만원)을 한 달 24만원씩 꼬박꼬박 갚아갔다. 하지만 1년 넘게 연체 없이 상환하는데도 여전히 그의 신용등급은 간신히 7등급에 머물러 있다. 그는 “연체를 하지 않으면서 등급이 서서히 오르곤 있지만 대출금을 일시에 줄일 수 없어 막막하다”고 말했다.


한은, 개인신용등급 분석
취업 어렵고 고금리 소액 대출 많아
다른 연령층보다 배 가까이 높아
퇴직 후 자영업자도 신용 위험 커
고금리 빚 → 연체 → 등급하락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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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20대 청년층이 저신용 늪에 빠지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고금리 소액대출에 발목 잡히기 쉬운 데다 취업이 갈수록 어려워져서다.



 4일 한국은행 ‘금융위기 이후 저신용 가계차주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신용등급이 괜찮았던(1~6등급) 20대 4명 중 1명 꼴(27.9%)로 금융위기 이후 저신용등급(7~10등급)으로 떨어졌다. 전체 저신용 하락률(14.8%)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한은은 이 보고서에서 금융위기 이전(2008년 6월)과 최근(2013년 6월) 개인신용등급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추적해 분석했다. KCB와 나이스평가정보가 임의로 추출한 50만 명이 분석대상이다.



 한은은 유독 20대에서 저신용으로 떨어진 비율이 다른 연령대보다 높은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분석했다. 우선 20대는 무직자 비중(49.3%)이 가장 높다.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다 보니 한번 빚을 지기 시작하면 벗어나기 어렵다. 청년층 구직난이 심화되면서 20대 고용률은 해마다 떨어지는 추세다. 이장연 한은 과장은 “청년실업 문제 개선이 더딜 경우 20대의 신용회복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20대는 소액 신용대출 이용이 많은 것도 원인이다. 2000만원 미만 소액대출만 있는 사람이 저신용으로 떨어진 비율(19%)은 1억원 넘는 거액대출자(9.7%)의 두 배에 달한다.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 같은 비은행권에서 고금리 신용대출을 받은 경우가 많아서다. 특히 20대는 학자금을 비롯한 생계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신용대출을 받았다가 저신용으로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 창업을 한 자영업자도 20대 못지않게 신용위험이 컸다.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직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에 뛰어든 경우 6명 중 1명 꼴(18%)로 저신용등급으로 떨어졌다. 쭉 직장에 머문 임금근로자(9.9%)는 물론 아예 정년퇴직 뒤 무직자가 된 경우(15.4%)보다 저신용으로 떨어진 비율이 높았다. 창업 때문에 빚은 크게 늘었는데 소득은 별로 늘지 않아 빚을 갚을 능력이 떨어져서다.



 일단 저신용자가 되면 악순환에 빠지기 십상이다.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우니 카드·캐피털·저축은행으로 발길을 돌리고→고금리 대출을 받다 보니 빚은 더 불어나고→빚 갚기 어려우니 연체가 생기고→결국 신용은 더 떨어진다. 실제 금융위기 뒤 저신용으로 떨어진 5만6600명의 평균 연소득은 거의 제자리(2540만→2920만원)인데 빚만 급증했다(1130만→3150만원). 그만큼 저신용 늪에서 헤어나기란 쉽지 않다. 이장연 과장은 “저신용자가 느는 건 금융회사뿐 아니라 정부에도 큰 부담”이라며 “청년층과 자영업자의 소득을 늘리는 정책 노력을 강화하고, 자칫 고금리 대출에 눈 돌릴 수 있는 중간 신용등급(5~6등급)이 쓸 만한 10%대 신용대출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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