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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털고 일어서라 … 벽을 넘어야 별이 된다

중앙일보 2014.02.03 00:35 종합 3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강일구]


주철환
PD
샌안토니오 경기장. 날씨는 쾌청. 축구팬들에겐 오늘 별도의 관전 포인트가 있다. 초롱이 이영표의 해설자 변신. 결과는? 한마디로 책 읽는 소년. 그러나 신기하다. 반감이 안 생긴다. 초보 해설자를 응원하는 이 심리상태는 뭐지? 일찍이 내가 ‘이영표 각도’라고 이름 붙인 게 있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겸손의 각도. 잘난 체하지 않으려는 마음, 절제의 향기가 우러나는 각도다. 실력과 인품은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난다. 억지로 안 된다. ‘잘남’을 치장하다가 ‘못남’의 분류항으로 귀속된 자, 부지기수다. 시청자는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됨됨이를 가늠하는 촉수를 지녔다.



승리의 여신은 그날 멕시코 편이었다(‘그날’이라고 한 건 또 다른 날들이 새털처럼 많기 때문이다). 이영표의 입에서 “저게 뭐죠. 한심하네요.” 이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후에야 본성이 소리를 냈다. “저도 5대0으로 져봤잖아요.” 그러면서 당부했다. “후배들 힘낼 수 있도록 좋은 기사 좀 써주세요.” 부당한(?) 청탁이지만 밉지가 않다. 건성으로, 빈말로 했다면 이 부탁은 기사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진실함은 반발이 아니라 분발을 부른다.



아픔을 어루만지려면 먼저 아파보는 게 좋다. 하지만 아파본 자들이라고 다 고난에 처한 자들을 위로할까. 아니다. 져 본 자들이 모두 실패를 교훈 삼지는 않듯이. 초롱이의 처신에서 미래 리더십의 한 유형을 보는 까닭은 간결하다. 이른바 ‘다모’ 리더십. 많이 아프냐/ 어디가 아프냐/ 진짜 아프냐. 이 정도 질문으론 선수들을 이끌지 못한다. 불후의 명대사를 기억하는가.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게 공감이고 소통이다.



아팠던 때를 기억하며 그는 고백을 이어간다. “그때는 내 실력을 자책하게 되고 커다란 벽을 느끼게 되더라.” 자책도 자만도 인생의 레슨에 포함된 과정이다. 다만 그걸 길게 갖느냐, 짧게 갖느냐, 거기서 멈추느냐, 이게 관건이다. 구구단에만 머물면 인수분해는 못 배운다. 프로를 꿈꾸는 자들에게 말한다. 인생의 벽은 쌍벽인데 그들의 이름은 완벽과 결벽이다. 살다보면, 아니 살아남으려면 넘어질 수 있고 흙이 묻을 수도 있다. 숨기고 탓하기에 급급해하지 마라. 웃으며 털고 일어서라. 벽을 넘어야 별이 된다.



공항에서 만난 이영표는 자신의 해설점수에 대해 “4대0으로 진 것보다 더 형편없었다”며 쑥스러워했다. 이런 사람을 미워할 수 있나. 축구 해설은 결국 인생 해설이다. 서른일곱 살에 인생을 해설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쌓다 보면 그가 수비해 온 역경들이 오늘 그를 이 자리에 앉게 해주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해설자는 단점을 돋보기로 보는 사람이 아니다. 장점을 살리고 기를 살려주는 해설. 살아온 삶이 본보기가 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역할이다.



글=주철환 PD

일러스트=강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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