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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신흥국보다 IMF가 더 큰 위기다

중앙일보 2014.02.03 00:34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미국 워싱턴DC의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국제통화기금(IMF)은 단체 방문객들의 성지순례 코스다. IMF 본부(HQ) 건물은 두 개다. 한국 관광객들도 대개 HQ1보다 더욱 화려한 HQ2 앞에서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유리로 화려하게 치장한 이 건물에는 눈물겨운 사연이 있다. 2002년 지은 HQ2는 아시아 외환위기 때 고금리로 떼돈을 벌어 세웠다. 서울대 윤택 교수는 “한국인의 피와 눈물이 배인 건물”이라고 했다.



 IMF는 경제위기를 먹고 사는 조직이다. 1980~90년대엔 68건의 구제금융으로 큰 재미를 보았다. 오히려 ‘골디락스’였던 2002~2007년이 암흑기였다. 누구도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아 이자수입 고갈로 손가락만 빨았다. IMF는 직원 15%를 자르고, 보유하던 금 403t을 팔고, 해외 사무소도 대폭 폐쇄했다. 여기에다 스트로스 칸 총재의 성추문과 “경제위기를 오래 전에 감지했으나 이를 은폐했다”는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내부 고발로 만신창이가 됐다.



 그런 IMF가 다시 신이 났다. 이머징 국가들의 외환위기 조짐 때문이다. 지난 주말 IMF는 “많은 신흥국이 펀더멘털과 정책 신뢰를 개선하는 긴급 조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아마 통화가치가 폭락한 아르헨티나와 기준금리를 4.5%에서 10%로 확 올린 터키를 지목한 듯싶다. IMF는 “외환위기 당시 과도한 처방으로 아시아에 필요 이상의 고통을 줬을 수도 있다”던 고백을 까맣게 잊은 것 같다.



 돌아보면 IMF는 선진국에는 천사, 신흥국에는 저승사자였다.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진압은 완벽히 미 연준(Fed)의 몫이었다. 유럽 재정위기 때도 철저히 유럽은행(ECB)이 주도했다. 상식과 다른 초저금리와 양적완화 카드에도 IMF는 침묵했다. IMF는 일본의 아베노믹스도 방관했다. 이에 비해 신흥국들이 불안해지면 여지없이 고금리와 긴축재정의 전통적 처방을 꺼내들고 있다.



 IMF의 이중잣대는 기축통화국이냐 아니냐가 분수령이다. 달러·유로·엔화 등 강력한 통화를 가진 나라들은 수술대에 오르는 법이 없다. 자체적으로 윤전기를 돌려 돈을 더 찍어내면 그뿐이었다. 그 외 나라들은 외채·경상수지·외환보유액·재정수지에서 골고루 합격점을 받지 못하면 언제 희생양이 될지 모른다. 순채권국은 안전하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브라질은 500년 만에 순채권국이 됐지만 헤알화 가치가 급락했다.



 이번 사태는 미 연준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으로 촉발됐다. 미국은 “미 경제의 정상화 과정”이라며 “신흥국들의 불안은 내부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미 언론도 “이머징 국가들의 불안은 경제문제가 아니라 정치위기”라고 몰아가고 있다. 앞으로 미 연준이 테이퍼링의 속도를 높일 게 분명하다. 테이퍼링이 끝나면 금리 인상이 남아 있다. 미국·유럽·일본은 자국 이익이 우선이지 결코 자비를 베푸는 나라가 아니다.



 돌아보면 우리보다 큰 규모의 브라질(7위)·러시아(8위)·인도(11위)·멕시코(14위)는 주기적으로 외환위기가 반복되고 있다. 모두 달러·유로·엔화권이 아니라는 게 공통점이다. 다행히 한국은 순채권국에다 경상수지 흑자, 외환보유액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원화의 서글픈 처지를 감안하면 외환위기는 피하고 보는 게 최선이다. 더구나 금리가 오르면 상황은 달라진다. 언제 각각 10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와 국가부채(공공기관 포함)가 뇌관이 될지 모른다.



 냉정하게 보면 신흥국보다 그동안의 이중잣대로 IMF 자체가 더 큰 위기에 직면한 느낌이다. IMF의 이론적 리더십은 치명상을 입은 지 오래다. 최후의 대부자가 아니라 글로벌 고리대금업자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예전처럼 살인적인 고금리와 긴축재정을 고분고분 받아들일 나라도 많지 않다. IMF부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동일잣대를 들이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반자본주의 운동의 표적이 될 수 있다. HQ2 건물을 보면서 눈을 흘기는 한국처럼 말이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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