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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준의 줌마저씨 敎육 공感] '정답사회'에선 99%가 피곤하다

중앙일보 2014.02.03 00:32 종합 32면 지면보기
강홍준
논설위원
#1. “수능 몇 점 나왔는데.” “대학은 어디로?” “아직 정시 발표가 다 안 났으니까….”



 온 친척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설 명절 자리에서 어김없이 이런 질문과 조언이 나왔다. 질문에 답해야 할 당사자보다 그의 부모가 더 좌불안석이었다. 아무리 가까운 피붙이 일가친척이라도 수능 몇 점 나온 거까지 알아야 할 권리는 없지 않나. 불쾌함과 짜증이 섞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그런 순간마저 남의 시선이 우선이다. “못난 놈이 성낸다”는 말을 들을까 봐.



 #2. 홈 커밍(대학 입학 25주년) 행사 준비를 하는 대학 동창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대학이나 학과에 애 보낸 사람 정말 없는 거야?” 동문당 몇 십만원씩 학교 발전을 위해 돈을 낸다는데 그 돈은 어느 집 자제들에게 가는 걸까. 동창 모임에 갑자기 모습을 감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답이 헛헛했다. “글쎄, 요즘 집안 분위기가 좀 그래. 알잖아. 참, 재수 학원 보내려면 어디로 가야 해?”



 요즘 페이스북 등에서 큰 인기를 모은 웹툰 ‘정답사회’는 정답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 루저로 전락한 사람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했다. 정답사회 구성원들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남에게 “이 정도는 해줘야지” 하는 표준화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스스로와 남을 한평생 옭아맨다. 설 명절 모임, 동창 모임은 우리가 사는 곳이 정답사회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줬다.



 사실 정답사회의 시작은 학교다. 학교에서 환영받는 공부와 성적은 언어 지능, 논리수학 지능과 긴밀하게 관련돼 있다. 한국의 1세대 간판 대안학교인 ‘간디학교’를 설립한 양희규 교장은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아이들에겐 100가지 이상의 지능이 있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우리의 교육은 온갖 지능을 가진 아이들을 규격화된 교실에다 주저앉혀 놓는 제도다. 또한 우리의 학교는 정답사회의 시작이자 확대 재생산 공장이다. 이런 교육과 학교에서 정답 인생을 사는 1%를 제외하고 99%는 피곤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걸까. 서울 공립 아현산업정보학교에 가보고 나서 이곳이 정답사회에 숨통을 터주는 곳이라고 자신하게 됐다. 이곳은 공부 재능을 찾지 못한 일반계 고3 아이들이 1년 동안 직업교육을 받아 패자부활하는 곳이다. 올해 810명 모집에 2000명이 몰렸다고 한다. 가수 휘성과 박효신이 이 학교를 만나지 못했다면 열패감에 평생 시달리며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강홍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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