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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엔 정년이 없다" 중동행 LNG선 모는 베테랑

중앙일보 2014.02.03 00:22 종합 4면 지면보기
남창영 기관장이 지난해 12월 카타르에서 한국으로 오는 현대상선의 LNG선 중앙집중조정실에서 주요 기관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는 1년 중 10개월을 바다에서 보낸다. [사진 현대상선]
2010년 겨울, 정년을 앞두고 마련된 환송회 자리에서 두산중공업 박동훈(60) 과장은 목소리에 잔뜩 힘을 줬다. “내 인생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강철이 강한 이유는 불에 달궜기 때문입니다. 미개척 세상으로 나가 나를 시험할 겁니다.”


해외 나가 일하는 6074

 그의 선택은 베트남이었다. 중부 해안가 쭝꾸엇(Dung Quat) 경제특구의 두산비나(두산중공업 현지 법인) 근무를 자원했다. 6개월만 있으려 했으나 두 차례 연장했다. 현지 직원들에게 트레일러 등의 중장비 관리·보수 기술을 가르치는 기술 고문이다. 그는 “옛날 노년과 우리는 다르다. 건강 연령이 늘어났다. 낯선 환경을 걱정하는데, 못 견딜 게 뭐가 있겠나”라며 “가족과 떨어져 있으면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 월 100만원 더 받는다”고 덧붙였다.



 은퇴한 뉴실버에게 국내 취업은 난공불락 요새와 같다. 보수와 상관 없이 일할 곳이 마땅찮다. 이런 현실을 깨고 해외로 눈을 돌리는 뉴실버가 증가한다. 뉴실버는 건강하고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경우가 많아 개도국에서는 대환영이다. 업종도 건설 위주에서 해운·컨설팅·기술지도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해외로 가는 뉴실버는 젊은 시절 한강의 기적을 일궜던 세대다. 일밖에 모르고 살다 보니 지금은 세계에서 뒤지지 않는 기술과 전문지식을 갖추게 됐다. 김종실 해양수산부 선원정책과장은 “외국 선사들이 한국 선원의 숙련된 기술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한다.



 남창영(64) 기관장. 현대상선의 15만t급(종합운동장 규모) LNG선의 엔진과 200여 가지 주요 기관을 책임진다. 4년 전 정년퇴직 후 계속 배를 탔다. 중동에서 LNG를 실어 나르느라 1년에 10개월은 바다 위에 있다. 남 기관장은 “억대 연봉을 받는데, 대기업 중역 부럽지 않다”며 “돈을 떠나서 이 나이까지 일하는 나를 친구들이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기술에는 정년이 없다는 뜻이다. 2일 한국선원복지고용센터에 따르면 외국 상선을 타는 뉴실버 선원은 2006년 584명에서 2012년 742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외항선 뉴실버는 318명에서 1529명으로 급증했다.



 뭐니뭐니해도 해외 취업 뉴실버의 대표는 건설 기술자다. 이들의 상당수는 20~40대에 중동·동남아 등지에서 근무한 베테랑들이다. 대우건설 여규환(64)씨는 나이지리아 비료공장 건설 현장에서 공정관리와 보수교육을 담당한다. 지금까지 18개 국가에서 해외 근무를 해왔다. 나이지리아 현장에는 한국에서 나간 뉴실버가 80여 명이다. 여씨는 “일본 건설사의 현장에는 70세 넘는 사람이 많다. 우리도 그리 가고 있다. 내가 그 선봉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류(韓流) 바람을 타면서 한국어 교육이 각광받는다. 황인수(74)씨는 10여 년 전 부산고 교장 정년퇴임을 석 달 앞두고 필리핀 한글학교장(교포 대상)을 지망했다. 황씨는 “한국전쟁 때 필리핀이 도와준 기억이 또렷하다. 그 빚을 갚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2011년 초 세종학당으로 자리를 옮겨 현지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지금까지 1만5000명을 가르쳤다. 시간당 수강료를 받는다.



 한국의 기술과 노하우는 국제기구도 인정한다. 김대성(63)씨는 2년 전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프리랜서 컨설턴트로 채용돼 몽골 건설 프로젝트에서 기술 컨설팅을 한다. 몽골 출장 갈 때마다 하루에 500유로(약 73만원)를 받는다. 김씨는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필요로 하는 나라가 많다”고 말했다.



 손유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퇴 후라도 자신만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숙련직이나 전문직의 해외 일자리 전망은 밝다”며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의 해외취업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장주영·김혜미·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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