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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과 절제, 맺고 끊음 … 우리는 세시풍속으로 철이 들었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4.01.26 08:19
전통 농촌사회에서 ‘돌 들기’는 성인식의 중요한 방식이었다. 돌을 들면 성인이 됐는데 농사 지을 힘과 지식이 있다고 봤다. 그 지식은 세시풍속에 ‘철’, 즉 계절의 변화를 아는 것이었다. 성인식은 ‘철 들었음’을 보는 의식이었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 철은 의미가 없어졌다. 거창의 한 마을에 팽개쳐진 들돌(오른쪽 사진)은 ‘철듦’을 우습게 여기는 현대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2011년 촬영)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곧 설(구정)이다. 차례를 지내고 세배하며 조상과 만나고 친지들과 정을 나눈다. 예전엔 확실히 그랬다. 그러나 설을 정점으로 하는 세시풍속은 의미와 지위를 잃어가고 있다. 세시풍속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반복돼온 주기전승의례(週期傳承儀禮). 오랫동안 이 땅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 끈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풍속이 크게 변모했다. 서구나 동서양 문화 접변에서 온 이색 풍속도 끼어든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인들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시풍속도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인가.

연중 기획 한국문화 대탐사<4>기로에 선 세시풍속



1950년대 전라남도 보성군 노동면 한 마을의 음력 2월 초하루. 청년들이 큰 돌 앞에서 웃통을 벗고 서 있다. 마을 어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명이 커다란 돌을 든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 온몸의 힘줄이 불거진다. 어영차 소리에 돌이 번쩍 들린다. 청년은 이제 성인 대접을 받는다. 절반만 받던 품삯도 성인 품값을 온전히 받고 장가도 갈 수 있다. ‘들돌’로 성인식을 제대로 치른 셈이다. ‘성인의 자격’을 요구하는 조상의 풍습은 전북 임실, 경남 거창 같은 곳에서도 80년대까지 계속돼왔다.



들돌 시험에 담긴 의미는 뭘까. 전통적 농경 사회에서는 농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면 필요한 지식도 있다고 본 것이다. 지식의 요체는 세시풍속이었다. 언제 씨앗을 뿌려 수확하며, 무슨 의례가 필요한지를 아는 것이었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흔히 ‘철들었다’고 하는 것은 세시풍속의 계절(철) 변화와 농사의 이치를 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만태 동방대학원대학교 교수도 같은 견해다. 능숙한 농사꾼이 돼 농사의 계절 감각이 몸에 배면 ‘철들었다’ 했고, 아니면 ‘철없다’‘철 모른다’고 했다는 것이다. 사리분별을 못하는 어린이를 철부지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들돌로 치렀던 성인식은 ‘세시풍속을 마스터해 철들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그러나 현대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시간만 흐르면 자동으로 성인이 됐다. 거창과 임실에 팽개쳐진 들돌(오른쪽 윗 사진)은 ‘철’을 팽개친 현대를 상징한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2013년 2월 14일 풍속을 보자. 인터넷에는 밸런타인데이 광고가 화려하다. 80년 중반 일본에서 유입된 이날은 어느덧 젊은 층의 풍속이 됐다. 여성이 좋아하는 이성에게 초콜릿 선물을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 30년간 되풀이되는 이 유행도 세시풍속일까.



전국 세시풍속 콘텐트 2200여 가지

전통 세시풍속의 콘텐트는 풍성하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세시풍속사전』에 따르면 1월엔 595개 풍속 콘텐트가 있다. 전국과 지역을 합한 것이다. 1년엔 2200여 개다. 그중 ‘이름 있는 날(명절)’은 온 나라가 기념했다. 음력 13개 명절과 24절기 중 입춘·한식·동지, 복날 같은 날들이다. 나머지는 알고 지나가거나 적당히 챙겼다. 각종 날들엔 의식(儀式)과 음식·놀이가 세트처럼 따랐다.



풍성함은 1000년 넘는 세월이 만들었다. 『삼국사기』엔 추석·단오·유두가 나온다. 『고려사』에도 속절(명절)로 음력 정월 초하루, 정월 보름, 한식, 삼짇날(3월 3일), 단오, 중구(9월 9일), 동지, 팔관(11월), 추석 등 9개 날이 나온다. 조선시대 『동국세시기』에는 설날·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로 삼고 동지는 국가 명절로 추가한 것으로 나온다.



입춘을 알리는 입춘첩(立春帖). 명절은 아니었지만 이날은 세시풍속의 중요한 날이었다.
세시풍속은 농경사회의 질서였다. 추수 뒤 이듬해 2월까지는 설·대보름처럼 쉬는 풍속이 이어졌다. 농사는 2월 1일 기지개를 켰다. 이날 농사일에 나가는 머슴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위로했다. 조선 순조(純祖) 때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엔 ‘2월 초하루가 노비일이며 송편을 나이 수대로 준다’고 했다. 다음 큰 세시는 음력 5월 5일 단오. 겨울 보리를 수확해 보릿고개를 간신히 넘는 시기다. 진짜 수확은 8월 15일 추석에 기념했다. 햇곡식을 천지신명에 바쳤고 큰 놀이를 즐겼다. 추수를 끝낸 뒤 열리는 서양의 추수감사절(생스기빙 데이)과는 다르다. 10월은 상달(으뜸달·上月). 천지신명에 감사하는 고사와 제례의 시즌이다.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도 10월 제사이며 현대의 개천절 10월 3일은 음력이 양력화된 것이다. 집마다 고사를 지냈고 굿, 문중제사, 마을제도 열렸다.



세시풍속엔 기다림과 절제, 감사, 끊고 맺음 같은 가르침도 들어 있다. 세시풍속의 3요소는 ‘시절 음식’과 ‘민속놀이’ ‘빔(새옷)’. 음식은 시즌 재료로 만든 절기 음식이었고, 빔은 설·단오·추석에만 입었다. 때가 아니면 못 얻는 것들에서 기다림과 절제를 배웠다. 끊고 맺음의 예로 5월 단오가 있다. 청춘의 맘을 애끓게 한 그네 줄을 1주일 뒤 잘라낸다. 적당히 놀았으면 일할 때는 일하라는 뜻이다.



산업 사회에서 이런 지혜는 끊겼다. 농경사회 ‘철’의 의미를 다 따르기 어려웠고 ‘절제와 감사, 맺고 끊음’의 가르침은 풍요로운 물질문명사회에서 의미를 잃었다.



2008년 4월 경남 의령군에서 벌어진 세계 최대 줄다리기. 1800년부터 의령현에서 열렸던 정월 대보름날 행사를 확대한 것이다. 2만 명이 참여했다.
60년대 세시풍속은 도농에서 지켜졌지만 70년대부터 맹공을 받았다. ‘근대화=서구화’라는 생각에 전통을 천대했다. 풍속 저장소인 농촌도 붕괴됐다. 50년 도시화 비율은 18.4%, 60년 28.3%였으나 2007년 90.5%로 치솟았다. 양력이 정착돼 ‘15일-삭망(朔望)’의 휴일 주기가 ‘7일-1주(週)’ 주기로 바뀐 것도 결정타였다. 고려시대 관리들은 최대 93일을 쉬었는데 세시풍속의 명절날이었다. 토요 휴무가 정착된 현대엔 130일쯤 쉰다. 그러나 세시풍속과 관련 없다. ‘1주 주기’와 ‘15일 주기’의 불일치 때문에 ‘쉬지 못하는’ 세시풍속은 내몰렸다.



상상 못했던 요인들이 1000년 연륜의 세시풍속을 난타한다. 온난화는 겨울 풍속을 몰아냈다. 서울 출신 배정철(56)씨는 대보름 달맞이와 쥐불놀이를 기억한다. 밝은 보름달 아래 쥐불을 열심히 돌리며 늦게까지 놀았다. 그러나 지금은 추억 속 풍속이다.



그 결과 세시풍속에 대한 의식이 희미해졌다. 김만태 교수의 논문 「세시풍속의 기반 변화와 현대적 반응」엔 85년 중소도시 국민학교 3~6학년 529명을 대상으로 한 14개 세시풍속에 대한 설문조사가 나온다. 설·대보름·추석은 다 알았지만 동지(65%), 한식(61%), 복날(44%), 단오(43%), 삼짇날(40%)은 잘 몰랐다. 반드시 지킬 세시는 추석(80%), 설날(76%)뿐이었다. 당시 아이들이 지금은 40대 장년층. 그들의 자식들에게 세시풍속은 더 낯설 것이다.



삼짇날 화전 부치기.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휴가 여행은 챙겨도 명절 귀향은 꺼려

그나마 ‘명절 2강’인 설·추석도 흔들린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귀성하느냐’는 질문에 설은 97년 40.8%, 2002년 41.5%로, 추석은 93년 31.1%, 2003년 36.2%로 나왔다. 그런데 ‘여름휴가 때 여행가겠다’는 비율은 94년 56%, 2002년 59.6%였다. 최고 세시풍속 자리에서 설·추석이 여름휴가에 밀리는 것이다. 게다가 설·추석을 반기지도 않는다. “즐겁지 않다”는 답이 2002년 조사에서 설은 35.5%, 2003년 조사에서 추석은 48.2%였다. 교육·소득이 낮을수록 부정적이었다. 김 교수는 “차별 없이 함께 즐긴 세시풍속이 사회적 혜택을 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불평등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망은 아직 이르다. 세시풍속은 사라지지 않고 다만 진화하는 것일 수 있다.



#장면1=1950년대 말 4월의 따스한 봄 날. 경북 의성군·안동군의 아낙들이 인근으로 산행을 한다. 진달래를 따다 찹쌀가루에 버무려 화전을 부친다. 고소한 기름내가 깔깔거리는 아낙의 웃음에 실려 산으로 퍼진다. 남자들도 산에서 시를 짓고 놀았다. 음력 3월 3일 삼짇날의 풍경이다. 『동국세시기』에도 ‘충청도 진천에선 3월 3일부터 4월 8일까지 매년 여자들이 연못가로 와서 기도하는데 장을 이룬 것 같다’고 쓴 기록이 나온다.



1970년 4월 20일자 중앙일보 7면엔 ‘19일(일요일) 전국에 65만 상춘객이 봄을 즐기러 산야로 몰렸다’는 기사가 실렸다. 1971년 4월 26일엔 ‘창경원에 11만5000여 명, 서울의 우이동·정릉·뚝섬 유원지엔 22만7000여 명의 상춘객이 몰렸다’고 했다. 그로부터 42년 뒤인 2013년 4월 서울 근교의 산엔 소풍을 나온 초중고생, 상춘 인파가 북적댔다. 조선시대, 1950년대, 1970년대, 2010년대는 ‘꽃피는 봄 4월의 상춘객’이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장면 2=1929년 음력 6월 15일. 서울 종암동에 살던 당시 7세 김정희 할머니(92)는 어머니와 갓 시집 온 큰 언니, 동네 아주머니와 정릉의 청수장 계곡으로 갔다. 폭포 아래 너른 소에 젊은 여성들은 몸을 담갔고 어른들은 폭포수로 마사지했다. 때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 중순, 음력 6월 15일 유두(流頭)날. ‘물맞이’라 불리는 세시풍속 장면이다. 김 할머니 가족 중 아버지와 오빠 같은 남성은 동네 사람들과 인근 개울로 천렵을 갔다. 김명자 안동대 명예 교수도 “이날 서울 모래내로 물놀이를 갔다”고 했다.



『동국세시기』엔 “고려 명종 때 김극기가 쓴 문집에 유두잔치(流頭宴)가 나오는데 조선도 이어받아 속절로 삼았다”고 썼다.



정월 대보름의 대표 풍속인 쥐불놀이.
2013년 8월 4일 경북 동해안 4개 해수욕장엔 하루 동안 62만 명 피서인파가 몰렸고 11일엔 부산시내 7개 해수욕장에 158만 피서인파가 몰렸다. 바캉스 인파다. 음력 6월, 양력 7월 더위를 피해 물가로 인파가 몰리는 유두와 바캉스는 비슷하지 않은가.



김 명예교수는 “세시풍속이 변해 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꽃놀이를 했던 삼짇날의 ‘행락 정신’은 산업사회에서 봄 소풍·벚꽃 놀이 같은 ‘도시 세시, 현대 세시’로 변화됐다는 것이다.



풋구(풋굿)는 또 다른 예다. 경북 안동시 풍산읍 수동 마을은 80년대 초반까지 음력 7월 중순, 술을 담그고 전을 부쳐 먹으며 놀았다. 그러다 사라졌는데 2000년 양력 7월과 추석 1주일 전 공동으로 풀을 베고 청소한 뒤 부녀회가 마련한 음식을 먹는 방식으로 부활했다. 김 교수는 “4~5년 전까지 양력 8월 15일 풋구를 하는 현상이 관찰됐다”고 말했다. 민속 연구가들은 매년 동해안 정동진에 모이는 해맞이 인파는 정월 대보름 달맞이의 변형으로 본다. 5월 1일 노동절은 음력 ‘머슴날’의 의미가 발전된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 세시풍속에는 주요 4대 기능인 휴식, 오락·축제, 종교 의례, 공동체 통합 가운데 휴식만 두드러지게 남았다. 기념·축원 기능은 성인의 날, 근로의 날, 조세의 날, 부부의 날 같은 것으로 분화됐지만 의미를 갖지 못한다. 세시풍속 대부분의 콘텐트는 무형문화재나 지역축제라는 틈새에서 목숨을 부지하거나 사라진다. 휴일로 지정되지 못하면 사라지는 세시풍속. 그렇다면 한 세대 뒤 뭐가 남을 것인가.



온라인 중앙일보·안성규 중앙선데이 기자

김석근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중앙SUNDAY-아산정책연구원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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