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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예술 부적 … 선과 선 사이로 기운 꿈틀

중앙선데이 2014.01.25 17:21 359호 14면 지면보기
1‘LOVE ∞’ Digital Generated Print on Metal Plate, 남녀의 사랑과 해로를 기원하는 부적들에 등장하는 그림문자들을 모티브로 했다.
서울과학기술대 오영재 교수(사진)가 2012년 받은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부적(符籍)의 (재)발견’이다. 그래픽 아트로서 부적의 의미를 짚었다. 부적을 연구한 박사 논문은 흔치 않다. 그는 오래된 부적에서 길상(吉祥)과 벽사(辟邪)의 상징을 추출해 디지털 영상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갑오년 설을 맞아 오 교수로부터 부적에 숨겨진 상징의 의미를 들었다. 편집자

‘부적(符籍) 박사’ 오영재 교수의 21세기 디지털 부적 이야기

이미지 자체가 어떤 마법적 힘을 발휘한다는 주술적 성격 때문에 부적(符籍)은 술수나 미신으로 경시되어 그 미적 세계에 대한 온당한 조명을 받지 못해 왔다. 막연한 끌림과 흥미 덕분에 부적에 대한 조형적 연구를 진행하면서 나는 부적 속에 커다란 우주가 통째로 들어 있음을, 그것도 지극히 정제되고 아름다운 미적 소재로 구현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부적은 힘의 강약 조절이 자유로워 다채로운 표현이 가능한 동양의 붓을 표현 도구로 삼고 있는 선(線)의 예술이다. 그 선의 움직임은 ‘필단의연(筆斷意連·선과 선 사이로 매서운 기운이 거침없이 꿈틀댐)’과 ‘기운생동(氣運生動·생기를 불어넣어 생명의 움직임을 환기함)’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라즐로 르게자라는 학자는 이 ‘선’을 설명하면서 “곡선 스타일은 음(陰)을 나타내는 것으로 구름의 형상에서 유래했다. 직선 스타일은 양(陽)을 나타내며 단단하고 각진 돌 모양의 표상으로 나타냈다”고 말한다. 모여드는 구름과 안개, 파도 치는 물결, 솟아오르는 연기와 같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자연 현상의 변화와 그 기운의 흐름을 선으로 형상화한 것이 부적인 것이다.

부적에서는 목판화적 표현 또한 자주 보인다. 조각 칼로 나무를 파낸 듯한 딱딱하고 각진 형태다. 목판화를 모방한 가는 선의 교차지점이나 양 끝점에는 작은 원으로 마무리한 듯 표현되는 ‘혈흔(血痕)’이 있다. 이는 마법적 기호로서의 표현으로 도가의 신선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2‘Knocking on Heaven’s Door’ Digital Generated Print on Metal Plate, 무병장수와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부적들에 등장하는 그림문자들을 모티브로 했다.
3‘九福’ Digital Generated Print on Metal Plate, 복(福)을 상징하는 100가지 변형의 불사백복부(不死百福符)를 모티브로 했다.
그래픽 아트로서 부적에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율동성이다. 한자 궁(弓)과 같은 구부러진 형태의 그래픽들은 가장 오래된 상징적 그래픽이다. 이런 기호들은 꺾인 횟수에 따라 또 반복되어 쓰인 기호들의 개수와 위치에 따라 시각적 운율을 지닌다. 부적 그래픽 중 시각적으로 가장 율동성을 띠고 있는 기호는 우주의 에너지를 형상화한 소용돌이 모양이다.

두 번째는 균형성이다. 부적은 대부분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음과 양의 균형을 뜻한다. 형태와 의미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문자가 영(靈)과 천(天)이다. 방사형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도 있는데 주로 우주나 자연현상을 표현한 것들이다. 태양이나 방위를 상징하는 방사형 구조는 끊임없이 확산되는 생명력과 함께 율동성과 방향성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그렇다면 부적은 어떤 조형적 원리로 구성돼 있을까. 이는 종종 사람의 몸에 비유된다. 각각의 신체기관이 모두 중요하듯 부적을 이루는 각 요소 역시 어느 하나 무의미하거나 하찮은 것이 없다. 오현리의 『부적대사전』에 따르면 부적에는 5대 요소가 있다. ‘부두(符頭·부적의 두뇌로 모든 내용 총괄)’ ‘부담(符膽·간과 쓸개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이루고자 하는 내용을 하늘에 알림)’ ‘부복내(符腹內·부적의 용도)’ ‘부각(符脚·뜻한 바를 실행하는 구체적인 방법)’, 마지막으로 ‘주사신불(朱砂神佛·이루고자 하는 일을 수행)’이다.

‘부두’에 등장하는 그래픽 기호들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 무병장수, 가정과 사회의 평안을 상징하는 한자나 그림문자가 주로 등장한다. 길상의 의미가 있는 동물들의 형상을 기상천외한 모양으로 만든 것이 많다. ‘부담’에는 소망하는 바를 하늘에 고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 주로 쓰이는 한자가 봉(奉)이다. 이는 팔괘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덟 명의 신선을 의미하며, 막강한 힘을 지닌 신들에게 고함으로써 강력한 영적인 힘을 빌려 소망을 성취하고자 한다는 염원이 담겨 있다.

‘부복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한자는 승(昇·오르다), 래(來·도래하다), 거(去·물리치다) 등이다. 부복내에는 부적의 효험을 증대시키기 위해 다양한 상징기호를 사용하는데, 천둥과 번개 같은 원형적 상징은 악령을 세게 내리쳐 물리친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1부터 12까지의 숫자, 원형 이미지, 기호 만(卍), 별자리 사상에 근거한 성수(星宿)신앙, ‘주역’의 음양오행사상에 기초한 기호, ‘빌다’ ‘기도하다’는 뜻의 축(祝)이나 행복을 의미하는 희(喜) 같은 문자 역시 구복의 기원이 담긴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부적은 수천 년을 내려오며 풍성한 상징의 이미지들을 간직하고 있다. 부적의 조형적 탐구는 고유한 문화적 정서를 담아내면서 깊이 있고 섬세한 이미지로 탈바꿈하는 새로운 시도다. 다양한 매체와의 융합을 모색하며 부적 이미지의 새로운 통합을 향한 창조적 도전은 그래서 또 다른 시계(視界)를 발견해 나가는 즐거운 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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