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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생각하는 한국적 vs 외국인이 생각하는 한국적

중앙선데이 2014.01.25 17:49 359호 25면 지면보기
4년 전 패션 디자인 전공 대학생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매달 한 번씩 학교를 정하고, 참여 학생들에게 다른 주제를 정해줬다. 단 공통점은 한국의 정체성을 담은, 그렇지만 현대적으로 변모된 작품을 만드는 것. 여기서 학생들의 고민은 시작됐다. 과연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정의부터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회를 지나다 보니 신기하게도 답이 대동소이했다. 넉넉함, 곡선, 부드러움…. 한복이나 한옥의 기와 등을 떠올리면 수긍이 가는 단어들이었다. 당연히 작품들도 그런 실루엣을 지닌 디자인이 많았다. 당시엔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을 한 번도 제기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진행 기자 입장에서나 만드는 학생 입장에서나 ‘가장 안전한 선택’을 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기모노 모티브의 옷을 보면 ‘재패니즈 스타일’이라고 못박을 수 있는 선례가 있었으니 말이다.

스타일#: ‘한국적 디자인’을 다시 묻다

이후에도 ‘한국적 디자인’은 여전히 아리송한 키워드였다. 패션 한류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적 디자인’이란 표현이 자주 쓰였는데, 디자이너들마다 생각이 달랐다. 한복의 전통 소재를 이용하거나 한글을 모티브로 하는 옷을 한국적 디자인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한국인이 만들면 뭘 해도 당연히 한국적 요소가 가미된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스펙트럼이 참으로 넓은 개념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말았다.

이번 ‘피티 워모’에 참가했던 F.N.B.C by Instantology의 재킷. 격식 있는 정통 재킷 스타일에 변형을 꾀했다.
그러다 최근 다시 ‘한국적 디자인’이 흥미로운 주제가 됐다. 피렌체의 남성복 박람회인‘피티 워모’ 취재 중 들은 한마디 때문이었다. 당시 행사에는 한국 신진 디자이너 여럿이 참가했고, 그들에게 사업 컨설팅을 해 줬다는 카를로 디 세그리아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글로벌 비즈니스 어드바이저로서 휴고 보스나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 세계적 브랜드들의 판매 전략을 짜 온 인물. 국내 대기업에도 조언을 해 준 적이 있다고 했다.

당연히 그에게 국내 디자이너들의 강점에 대해 물었더니 답이 이랬다. “전통적 테일러링 서양식 기법에 한국적 디자인을 가미할 줄 알죠.” 이어지는 말에도 몇 번이나 한국적 디자인이 언급됐다. 아무리 연관성을 찾아보려 해도 박람회 참가 디자이너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멘트였다. 그들이 만든 재킷과 점퍼에서 무슨 곡선과 여유로움을 느꼈단 말일까. 대체 그에게 한국적 디자인이 뭘 말하는지 물어야 했다.

“내게 한국적 디자인은 혁신적인 무언가예요. 뭔가를 기발하게 만드는 힘이요. 한국 하면 떠오르는 게 휴대전화·컴퓨터·자동차 이런 것들 아닌가요. 이미 강대국인 나라들을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는 혁신과 속도, 그게 내가 생각하는 한국적 디자인이에요.”

순간 아, 하는 감탄사가 나왔지만 이런 이방인의 시선을 처음 듣는 건 아니었다. 루이뷔통의 여행가이드북 사진을 찍었던 티에르 아르두앵도 인터뷰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다. 서울을 오기 전 이미지는 오직 ‘삼성’, 정확하게는 ‘삼성의 휴대전화’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작 와서 보니 “다들 역동적으로, 그리고 열심히 사는 나라 같다”면서.

어쩌면 이제 ‘한국적 디자인’의 의미를 다시 정의 내려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우리의 전통 문화와 역사를 알려 주고, 거기에서 파생된 디자인을 알리면 정석이자 최고의 방법이겠지만 그들이 이미 갖고 있는 이미지를 굳이 모른 척할 필요도 없다. 이방인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그리고 꽤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한국의 이미지를 활용해 보는 거다. 혁신을 사전에서 찾아 보니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라는 뜻이었다. 패션 디자인에서만큼은 미국이 실용을, 영국이 실험을 하나의 이미지로 내세우듯 “한국적 패션이요? 한마디로 혁신이죠!”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어떨까. 설날을 코앞에 두고 든 ‘한국적’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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