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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책임지는 용기를 위하여

중앙선데이 2014.01.25 18:01 359호 28면 지면보기
소포클레스(Sophocles, BC 496~BC 406)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으로 꼽힌다. 아테네 인근 콜로노스에서 태어나 평생 130편의 작품을 썼다고 하나 전해지는 것으로는 『오이디푸스 왕』의 속편 격인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등 7편에 불과하다.
“아침에는 네 발로 걷다가 점심때는 두 발로 걷고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은?” 누구나 다 아는 간단한 수수께끼 같지만 옛날 테베에서는 이 문제를 풀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자 몸에 여인 얼굴을 한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길을 막고 이 수수께끼를 낸 뒤 풀지 못하면 잡아먹은 것이다.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52>『오이디푸스 왕』과 소포클레스

이 문제가 어려운 이유는 바로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당신의 운명에 대해서는? 결국 자신이 누구이고 자기 운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른 채 많은 사람들이 괴물 같은 인생에 잡아먹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이디푸스가 마침내 이 수수께끼를 풀어낸다. 테베 국민들은 스핑크스의 재난을 물리친 오이디푸스를 새로운 국왕으로 모신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전왕이었던 라이오스의 부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해 안티고네를 비롯한 네 자녀를 낳는다. 여기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나 이건 서곡에 불과하다. 진짜 비극은 이제부터다.

갑자기 역병이 온 나라를 휩쓸고 온갖 재앙이 닥친다. 신탁을 받아보니 전왕을 죽인 자가 바로 재앙의 원인이라고 한다.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국민을 끔찍이 사랑하는 자비로운 왕인 오이디푸스는 그 살인자를 반드시 잡아 국가를 평안히 하겠다고 다짐한다.

『오이디푸스 왕(Oedipus The King)』은 이 장면에서 시작된다. 지금부터 오이디푸스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맨 처음의 수수께끼처럼, 알고 보면 너무나도 쉬운 것 같지만 결국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자신의 본모습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진실을 얘기해준다. “당신이 찾아내려는 사람, 라이오스 왕을 살해한 자를 밝혀내겠다고 위협하고 외치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자기 자식들의 형제이자 아비, 자기 어미의 아들이자 남편, 아비의 잠자리를 뺏은 자, 그리고 아비를 살해한 자임이 밝혀질 것입니다.”

오이디푸스는 그러나 믿지 않는다. 오히려 눈이 멀어 앞도 못 보는 예언자가 나라를 구한 자신을 비웃는다며 쫓아내 버린다. 사실 테이레시아스는 처음부터 오이디푸스에게 이롭지도 않은 일을 알려고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지혜가 아무 쓸모도 없을 때 안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왕비 이오카스테도 진상을 먼저 알아차리고 범인 탐색을 중단하라고 간청한다. “인간에게 운명이란 절대적인 것이어서 무엇 하나 앞일을 분명히 모릅니다. 그저 그날그날 아무 걱정 없이 지내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러고는 이천 년 뒤 프로이트라는 심리학자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이름 붙일 유명한 대사를 덧붙인다. “어머니와의 결혼이라는 것도 무서워할 것이 못 됩니다. 꿈에 어머니와 동침했다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멈추지 않고 유일한 증인인 늙은 양치기를 불러 마침내 자신의 진실을 알아낸다. 눈먼 테이레시아스가 말했던 모든 것을 눈뜬 자신은 하나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오오, 빛이여, 다시는 너를 보지 못하게 해다오! 이 몸은 죄 많게 태어나 죄 많은 혼인을 하고 죄 많은 피를 흘렸구나!”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선의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끝까지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집념 때문에 그는 파멸해버린 것이다. 추방자 신세가 돼 지팡이를 짚고서 세 발로 조국을 떠나는 오이디푸스를 향해 코로스가 마지막으로 노래한다.

“조국 테베 사람들이여, 명심하고 보라. 이이가 오이디푸스시다. 그이야말로 저 이름 높은, 죽음의 수수께끼를 풀고, 권세 이를 데 없던 사람. 온 장안의 누구나 그 행운을 부러워했건만 아아, 이제는 저토록 격렬한 풍파에 묻히고 마셨다. 그러니 사람으로 태어난 몸은 조심스럽게 운명으로 정해진 마지막 날을 볼 수 있도록 기다리라. 아무 괴로움도 당하지 말고 삶의 저편에 이르기 전에는 이 세상 누구도 행복하다고 부르지 말라.”

나는 묻는다. 오이디푸스가 차라리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더라면, 아니 그 답을 알았더라도 그냥 지나쳤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그랬다면 테베의 왕도 되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의 어머니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비극도 없었을 것이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해결함으로써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인물이 됐지만 막상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책임을 다른 누구에게도 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력한 인간이기에 운명의 신이 정해놓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그런 삶을 산 것은 나 자신이므로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오이디푸스는 그래서 자기 손으로 눈을 찔렀다. 앞을 볼 수는 없어도 책임질 용기는 가졌던 것이다.

아,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하나가 더 있었다고 한다. 언니와 동생이 있는데, 언니가 동생을 낳고 동생이 언니를 낳는다. 이 자매는 누구인가?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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