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사 불만·지역 민원 봇물 … “현장 와보니 감이 다르네”

중앙선데이 2014.01.26 00:09 359호 10면 지면보기
지난 23일 강원도를 찾아 민생 간담회를 연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춘천 막국수 박물관에서 북한 이탈 주민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정동 기자
“충남이 너무 홀대받고 있다. 우리가 원래 온순하고 데모를 안 해서 그러는 거냐?”(서경옥 충남여성단체협의회장)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의 민심청취 동행해보니

 “강원도는 원래 무대접이었는데 이번 정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차라리 나라의 막내를 자처하며 특별자치도 지위라도 따낸 제주도가 낫다. 강원도도 제주도처럼 특별자치도로 지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달라.”(변용환 한림대 교수)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대통합을 공약했지만 지난 1년간 정부의 인사 결과를 보면 영남 지역에 편중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엔 다른 지역 눈치를 봐서였는지 호남이 인사에서 역차별을 받았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약자들을 품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김주헌 전남기독교총연합회 부회장)

 지난 23일 오후 2시 강원도 춘천의 강원도청 대회의실.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과 대통합위 관계자들의 손이 메모지 위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지난해 11월부터 한 위원장이 ‘지역소통 공감 릴레이’란 이름으로 전국을 돌며 열어 온 민생 청취 간담회 현장이다.

 충남(지난해 11월 12일)에서 시작해 전남(11월 29일)과 경북(12월 5일)에 이어 네 번째로 열린 이날 간담회에서 참석자 20여 명은 박근혜 정부에 쓴소리를 토해냈다. 앞서 열린 세 차례 간담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전남에선 인사편중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고, 경북에서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생활 격차가 크다는 하소연이 잇따랐다. 충남과 강원도에선 “영·호남에 비해 우리는 아예 내놓은 자식들”이라며 “홀대를 해소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인터넷에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글이 부쩍 많아진 데 대해 전남과 경북에서 똑같이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요즘 SNS에 들어가보면 ‘홍어’ 같은 막말을 써가며 호남을 비하하는 발언이 봇물을 이룬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사이트는 정부가 국가적으로 관리·감독해야 한다.”(이송자 전남 분쟁조정위원)

 “‘일베(일간베스트)’의 발언 수위가 도를 넘은 지 오래다. 영·호남 갈등이 자녀 세대까지 이어질 것 같아 걱정스럽다. 정부가 대통합 차원에서 소수의 극우 인사들에 대해 대책을 강구하라.”(경북대 학생 윤영기씨)

 강원도 간담회 참석자들에게 박근혜 정부의 지난 1년간 통합 노력에 점수를 매겨달라고 하자 “100점 만점에 30~60점”이란 답이 돌아왔다. 상지대 박정원(강원도 분쟁조정위원) 교수는 “정부·여당이 대선 공약을 지키지 않는 데다 전교조의 사소한 잘못을 트집 잡아 탈법 단체로 만드는 등 소통과 관용의 자세가 너무 부족하다”며 “30점밖에 못 주겠다”고 말했다. 반면 “아직은 지켜봐 줘야 할 때로 섣불리 점수를 매길 시점이 아니다”는 응답(원행 월정사 부주지, 김완식 대한노인회 강원도연합회장)도 있었다.

 전남과 경북에선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들도 나왔다.

 “전남노총과 경북노총이 매년 합동행사를 하고 영·호남 학생들이 공동으로 독도를 찾거나 상대방 지역에서 군복무를 한 결과 서로에 대한 고정관념이 풀렸다. 이런 교류를 더욱 늘리자.” (이신원 한국노총 전남의장)

 “호남 지방에 가면 사람들이 뭔가 벽을 두고 말하는 느낌이 든다. 아직 호남인들 마음에 앙금이 있는 것 같다. 대통합법을 제정해서라도 영·호남 갈등 해결에 속도를 내달라.”(예병옥 대한노인회 경북회장)

 민심을 듣자는 자리임에도 지역 민원이 폭주했다. 간담회가 열린 4군데에서 모두 40여 건 넘게 요구사항이 쏟아졌다. 정부의 ‘공약 위반’을 성토하는 목소리도 컸다. “금강하구 수질 오염을 막기 위해 갯벌을 메워주겠다던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충남), “원자력발전소 건립에 13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정부 말만 믿고 자체 예산 30억원을 조기 집행했는데 정부가 돈을 내려 보내지 않고 있다”(경북).

 대통합위 관계자는 “이 밖에도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와 철도노조·의사협회 파업 사태 등도 대통합위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대표적 갈등”이라며 “민청련·전노련 의장을 지낸 한경남 갈등예방조정분과위원장 등 재야 출신이 시위대나 노조 측과 물밑에서 대화하며 접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합위는 4개 간담회에서 제기된 민원에 대해 14건은 자체 검토키로 하고 25건은 관계 부처에 해결을 요청하도록 통보했다. 특히 호남에서 집중적으로 제기된 인사 불만과 목포 지역 빈곤 아동 184명이 만든 ‘드림오케스트라’의 청와대 연주 요청은 청와대에 직접 전달했다. 간담회 참석자들은 “위원회가 즉석에서 속시원한 해결책을 내주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경청하는 모습 자체가 전 정부 시절엔 없던 일”이라며 “대통령이 위원회에 힘을 실어줘 구체적 성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한 위원장은 “현장을 직접 찾아 생생한 목소리를 들으니 감이 다르다. 발품을 팔아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온다는 걸 실감했다”며 “남은 13개 시·도도 올해 안에 모두 방문해 애로사항을 경청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인사 불만과 공약 파기 논란과 관련, “박 대통령의 임기가 1년도 안 지난 시점에서 그렇게 평가하긴 이르다. 박 대통령이 강조해 온 대통합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는 지역 균형발전과 인사 균형을 반드시 실천해나갈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합위 관계자는 “정부가 지방에 미리 의견을 구한 뒤 정책을 세웠으면 불필요한 갈등이 발생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상반기 중 대통합위가 장관 개개인에게 갈등조정 기법을 가르치는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간담회엔 북한 이탈 주민들도 참석해 정부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춘천에 거주하는 김칠구(45)씨는 “5년 전 함께 사회로 나온 하나원 동기 60여 명 중 80%가 차디찬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캐나다·영국·미국으로 떠났다. 이탈주민 사이에선 ‘한국이 감시자만 없을 뿐 중국과 다를 게 없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고 했다. 한국 생활 7년째라는 이희숙(55·여)씨도 “북한에선 쓰지 않는 ‘고스톱’이란 말을 못 알아듣자 ‘아줌마, 한국에 왜 왔어?’라고 면박을 당했을 땐 죽고만 싶었다”며 “4대 보험급여를 비롯해 대한민국 국민이면 쉽게 받는 권리를 얻기까지 넘어야 할 벽이 너무 많으니 간소화해 달라”고 호소했다.

 대통합위도 이탈 주민 처우 개선을 위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대통합위 관계자는 “매년 2000여 명씩 입국하는 20대 남성 탈북자 상당수가 군 입대를 희망하지만 현행법으론 불가능하다”며 “국민으로서의 정체성과 형평성 부여 차원에서 입국 5년이 지난 징병검사 대상자에게 보충역이나 사회복지요원 등의 형태로 병역을 이행하도록 관계법령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 1400여 명 선인 북한 이탈주민 대학생의 졸업률을 높이기 위해 특례입학 최저학력 기준 설정과 같은 방법도 검토된다. 대통합위 관계자는 “대부분의 북한 이탈 주민 대학생이 특례입학으로 서울과 수도권 상위 대학에 입학하고 있지만 수학 능력이 떨어져 탈락률이 남한 학생의 세 배에 달한다”며 “쉽게 공부할 수 있고 취업 기회도 많은 산업계나 야간대학으로 입학을 유도하는 게 개선책의 골자”라고 말했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