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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날은 한국판 밸런타인데이 아닌가…

중앙선데이 2014.01.26 00:37 359호 14면 지면보기
천진기
한국인에게 ‘돼지꿈’은 소중하다. 꿈을 꾼 날 몰래 로또 복권을 산다. 『삼국사기』에 ‘제사의 제물인 돼지가 달아났다. 돼지를 잡은 장소인 국내성으로 고구려의 수도를 옮겼다. 그 돼지를 잡아 준 처녀와 고구려 산상왕이 결합해 동천왕을 낳았다’고 기록돼 있다. 『고려사』엔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이 서해 용왕을 도운 뒤 선물받은 돼지가 송악산 남쪽 기슭의 터를 잡아 줬다고 나온다.

서양 풍습에 밀려나는 세시풍속

예부터 봄 농사 시작과 가을의 농사 마무리에 지내는 제사에서 돼지는 가장 중요한 제물이었다. 음력 10월 상달의 제사, 이사·개업 고사에서도 돼지머리는 필수다. 그게 없는 고사상은 헛방이다.

요즘 개업식엔 화환을 보내지만 얼마 전까지 ‘돼지 가족 액자’에 ‘축 개업, 친구일동’이라 써 보냈다. 돼지는 돈·재복의 상징이다. 봄 시산제 때도 돼지머리는 꼭 쓴다. 전통대로 돼지머리 편육도 쓰지만 요즘엔 돼지머리 사진·그림도 등장한다. 휴대전화나 컴퓨터 모니터의 돼지 사진으로 간편한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고대와 현재,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계에서 돼지는 다양하게 표현되지만 재복과 행운을 부른다는 문화적 의미는 동일하다.

이는 세시풍속이 다양한 시대와 현상들이 복합돼 전승함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것, 유입된 것, 새로 만들어 진 것들이 어우러져 현재의 것이 된다. 10월 고사의 돼지머리처럼.

그런 의미에서 젊은이들의 새 풍속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청춘 사이엔 매월 14일 선물을 주고받는 ‘14일 포틴데이’가 유행이다. 관련 업계는 ‘데이 마케팅’으로 이날 매출을 올린다. 밸런타인데이는 이미 최대 특수가 됐다. 그런데 ‘14일의 기념일’ 행사를 매도하고 기업의 상혼과 청소년의 태도를 나무라기만 할 것인가.

따지고 보면 우리의 전통 세시풍속에도 ‘연인들의 날’이 있었다. 신라 때부터 정월대보름의 탑돌이는 남녀의 만남이 이뤄지는 축제날이었다. 조선 세조 때는 추문이 심해 서울 원각사 탑돌이를 금지시킬 정도였다. 벌레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양력 3월 6일)도 연인의 날이었다. 『사시찬요』엔 ‘은행 껍데기가 세모난 것이 수은행이요, 두모난 것이 암은행’이라며 서로 보고만 있어도 사랑의 결실이 오간다고 썼다. 누구나 아는 칠석날도 있지 않은가.

전통 세시풍속의 의미와 가치는 계승하면서 새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뿌리도 없는 날을 흉내내기보다 고유 명절의 의미를 발전시켜 계승하자는 것이다. 세시풍속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지만 전체 틀과 기능엔 큰 변함없다. 미래는 현재와 과거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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