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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설계도 38가지 … 사람·갑오징어 눈 구조 왜 비슷할까

중앙선데이 2014.01.26 01:55 359호 25면 지면보기
갑오징어와 사람의 눈은 구조적으로 비슷하다. 이는 재료와 용도가 같을 때 생기는 수렴 진화의 결과다.
갑오징어와 사람의 눈은 구조적으로 아주 비슷하다. 갑오징어와 사람 사이엔 어떤 직접적인 진화론적 관계가 없는데 어찌된 일일까? 이를 두고서 소위 창조과학자들은 ‘디자이너가 같기 때문’이라고 쉽게 대답한다. 디자이너가 같더라도 디자인이 다르게 나올 수 있고, 다른 디자이너들이 같은 디자인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진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겉모습이 비슷하면 생물학적으로 가까운 사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함정에 종종 빠진다. 하지만 비슷한 재료로 유사한 용도의 물건을 만들다 보면 판박이 디자인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를 수렴 진화라 한다.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4> 생물 눈의 기원

다른 문에 속해도 환경 같으면 모습 비슷
생명의 설계를 문(門)이라 한다. 종-속-과-목-강-문-계의 바로 그 문이다. 그런데 동물의 설계, 즉 문을 결정하는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부 구조다.

서로 다른 문에 속하는 동물도 같은 환경에 산다면 겉모습이 비슷할 수 있다. 겉모습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유전자들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비슷한 겉모습을 만들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겉모습이 같더라도 내부 구조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내부 구조를 결정하는 유전자들이 훨씬 많아서다. 같은 내부 구조를 가지려면 모든 유전자가 동시에 돌연변이를 일으켜야 하는데 그럴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세상에 동물이 많은 것 같아도 설계도는 38가지뿐이다. 이는 서로 다른 내부 구조를 탄생시킨 중요한 진화 사건이 46억 년의 지구 역사 동안 단 38번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유전자를 이용해 연대를 추정하는 생물학자들은 모든 문의 내부 체제는 10억 년 전에서 6억6000만 년 전 사이에 순차적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내부 설계를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동물은 몸이 부드러운 벌레 모습으로 수억 년 동안이나 바다 밑바닥에서 헤엄을 치거나 굴을 파고 살았다.

38가지 동물 문 가운데 35가지는 5억4800만 년 전부터 단 500만 년 동안에 새로운 겉모습을 선보였다. 그 이전 동물의 조상에선 보이지 않던 딱딱한 껍질을 지닌 동물 화석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아주 오랫동안 아무 일 없다가 단 500만 년 만에 그렇게 된 것이다. 500만 년은 지질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불과하다. 그 시기는 바로 고생대의 초입(初入)인 캄브리아기(期)다.

어째서 선(先)캄브리아기엔 각 동물 문의 겉모습이 진화를 거듭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마도 굳이 진화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딱딱한 껍질이란 도약을 하게끔 이끌어낸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왜 하필 이때였을까?

1km 얼음에 덮였다는 ‘눈덩이 지구’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이에 대해 해답을 무수히 내놓았다. 해답이 많다는 것은 모두 조금씩 부족하다는 뜻이다. 첫 번째 해답은 캄브리아기에 들어서자 진화하기 좋은 환경 조건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캄브리아기 해파리의 알은 현생 해파리의 알보다 더 크다. 이는 캄브리아기 배아(알)들은 미숙한 유생(幼生) 단계를 거치지 않고 완전히 준비된 상태에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다시 말해 캄브리아기 시절의 세상살이가 그다지 녹록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캄브리아기 직전에 산소가 증가하고 이산화탄소는 감소했으며 골격을 발달시키는 재료인 인(燐, P)을 동물들이 얻게 됐다는 가설이다. 순환계가 내부 설계의 중요한 부분인 것은 맞지만 겉모습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생물의 외피(겉껍질)를 구성하려면 인과 산소 외에도 여러 재료가 필요하다. 또 그 이전에도 산소와 인의 수치가 비약적으로 증가한 시기가 여러 차례 있었다.

세 번째 가설은 8억5000만 년에서 5억 9000만 년 전 사이, 즉 선캄브리아기 말기에 지구 전체가 1㎞ 두께의 얼음으로 뒤덮였다가 캄브리아기 직전에 녹았다는 것이다. 이를 ‘눈덩이 지구’ 가설이라 한다. 하지만 그때도 진화가 일어날 수 있는 정상적인 바다 환경이 어느 정도 존재했다. 또 눈덩이 지구 사건과 캄브리아기 사이엔 3200만 년이란 긴 시간 간격이 있다.

이 밖에도 캄브리아기에 대륙붕이 넓게 형성됐다, 캄브리아기에 동물의 뼈·연골·근육·비늘을 구성하는 교원질(콜라겐)이 많이 생겨났다는 등 여러 이론이 등장했다. 하지만 내부 설계와 달리 외부 설계가 캄브리아기에 들어서야 이뤄진 이유를 잘 설명하지 못했다. 생물 외부의 원동력이 이 질문에 대한 궁극적 해답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프로토헤르트지나의 먹이 잡아먹는 기관을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마틴 브레이저가 재구성했다. 프로토헤르트지나는 현생 화살벌레의 친척으로 최초의 포식자로 추정된다. 화석의 지름은 1~5㎜.
최초 포식자와 같이 등장한 갑주동물
대규모의 진화는 틈새(niche)가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학의 제임스 밸런타인과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마틴 브레이저는 캄브리아기에 대규모의 다양화가 일어날 수 있는 틈새가 생겼는데 ‘포식성(飽食性)’이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했다.

캄브리아기 이전에 존재하던 벌레 같은 동물들은 느릿느릿 움직이는 단백질 덩어리 같았다. 이때는 포식성이란 틈새를 채울 만한 동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동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몸에 난 구멍으로 들어온 플랑크톤을 소화해 그 구멍으로 배설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캄브리아기에 식물들이 크게 늘어났으며 이것이 동물들의 생존경쟁을 불러일으켰다. 즉 식물에게서 우수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동물들이 자연 선택됐다. 포식성이란 새로운 틈새가 생긴 것이다. 이 틈새를 차지하기 위해선 헤엄쳐서 식물에게 다가가 먹이를 쥘 수 있는 튼튼한 다리와 깨물 수 있는 단단한 주둥이가 필요했다.

프로토헤르트지나는 캄브리아기가 시작될 무렵인 5억4200만 년 전 암석에서 발견된 골격 화석이다. 화석 기록 연구에 따르면 프로토헤르트지나는 최초의 육식(肉食) 동물이다. 캄브리아기에 이르러서야 생태계는 비로소 먹이사슬을 스스로 짜 맞추기 시작했다. 이전엔 표면을 기어 다니는 데 만족하던 선캄브리아 시대 동물들은 캄브리아기가 시작되자 퇴적층 깊숙이 굴을 파고 들어가야만 했다. 프로토헤르트지나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전 세계의 해양 퇴적층에선 이 시기에 벌레가 꿈틀거린 흔적이 남은 화석이 발견된다.

누군가가 창과 칼로 무장하면 다른 누군가는 방패와 투구로 맞서야 하는 법이다. 최초의 포식자와 거의 같은 시기에 최초의 갑주(甲胄, 갑옷 같은 껍데기) 동물이 등장했다. 그런데 프로토헤르트지나처럼 먹잇감을 보지도 못하는 동물의 이빨이 그렇게 위협적이었을까?

지구 최초로 눈을 가진 생물인 삼엽충. 방해석(석영)으로 이뤄진 겹눈을 지녔다.
동물의 눈은 100만 년의 진화 결과
갑오징어의 피부엔 다양한 색상을 띠는 색소세포가 빽빽하게 들어 있다. 갑오징어는 환경에 따라 색을 바꾼다. 빛에 대한 적응엔 색깔뿐만 아니라 생김새와 행동도 포함된다. 포식자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철저히 위장과 엄폐를 해야 하며 여기엔 전기 배선, 두뇌 공간, 특수한 세포의 생산, 근육, 감각기 등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진화와 행동에서 빛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이를테면 진화는 생물이 햇빛에 절묘하게 적응해 온 결과다.

5억4400만 년 전에서 5억4300만 년 전의 100만 년 사이에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동물 하나가 눈을 떴다. 눈이 달린 최초의 삼엽충이 출현한 것이다. 시각이란 어마어마한 장치가 동물의 몸에 달리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 아니냐고? 옥스퍼드대학의 고생물학자 앤드루 파커는 각 세대마다 0.005%의 변이가 있어서 물고기 눈이 진화하기까진 40만 세대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각 세대가 1년이라고 할 때 50만 년이면 효율적으로 상을 맺는 눈이 생기는 데 이론상 가능하다. 100만 년이면 눈이 진화하고도 남을 시간이란 것이다. 캄브리아기 이전엔 눈이 없어서 빛은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일단 눈이 생기자 눈이 가장 중요해졌다. 자연계에서 먹잇감이 되는 동물들의 첫 번째 생존 법칙은 잡아먹히지 않는 것이다. 먹잇감이 되는 동물들은 대개 눈이 양쪽에 있다. 선명한 상을 맺지는 못해도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포식자의 첫 번째 생존 원칙은 먹는 행위를 최우선시하는 것이다. 이들의 사냥에서 정확한 거리 측정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이들은 한 쌍의 눈을 모두 앞쪽에 배치했다.

눈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무엇보다 모든 동물은 빛(햇볕)에 적응해야 했다. 벌레 같았던 동물들은 자신을 보호할 ‘갑옷’을 입기 시작했다. 상대를 속이기 위해 위장 색을 띠거나 추적하는 적을 따돌릴 수영 실력을 갖춰야 했다. 입은 그 다음이었다.

원시 삼엽충에겐 먹이를 잡을 튼튼한 다리도 물어뜯을 단단한 턱도 없었다. 원시 삼엽충은 자기 주변을 유유히 떠다니는 이웃들을 보면서 몸에 딱딱한 부분을 갖는 명실상부한 삼엽충으로 진화했다. 다른 동물들 역시 ‘갑옷’을 갖추기 시작했다. 캄브리아기에 갑자기 나타나서 다윈을 곤혹스럽게 했던 수많은 화석 생물의 등장은 결국 눈의 탄생으로 촉발된 것이다.

눈의 조상은 누구일까?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눈은 하나의 조상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려면 눈을 가진 모든 동물이 진화의 계통수(樹)에서 갈라져 나오기 전에 눈이 먼저 진화했어야 한다. 눈을 처음 가졌던 동물은 삼엽충(절지동물)이나 갑오징어(연체동물)나 사람(척삭동물)처럼 눈이 있는 모든 동물의 조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동물의 눈은 캄브리아기가 시작되기 수억 년 전에 이들 동물이 갈라설 때 진화했어야 한다.

일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먹장어와 사람은 모두 척삭동물에 속한다. 먹장어처럼 원시적인 척삭동물에겐 눈이 없는데 그보다 훨씬 늦게 생긴 사람에게 눈이 있다면, 척삭동물 최초의 눈은 진화 계통수의 척삭동물 가지 안에서 진화했다는 얘기가 된다. 눈의 기원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인 것이다. 삼엽충이나 갑오징어나 사람의 눈은 각각 별개로 진화한 것이다.

어쨌든 눈의 탄생이야말로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사건임이 틀림없다. 빛은 137억 년 전 우주의 탄생과 함께 생겼다. 그리고 5억4300만 년 전 마침내 삼엽충이 눈을 떴다.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본 대학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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