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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인의 풍자시 … 시름과 시간 흐름 잊게 하는 힘

중앙선데이 2014.01.26 02:18 359호 28면 지면보기
스웨덴 출신 영국 화가 마이클 달(1659~1743)이 그린 포프의 초상화(1727년께·런던 국립초상화갤러리 소장).
종교나 정치적 입장을 초월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가톨릭 교회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현재까지 딱 한 명이다. Pope Alexander(알렉산데르 교황)는 7명이다. 초급 수준 영어 학습자는 Alexander Pope(알렉산더 포프)를 교황이라고 자칫 착각하기 쉽다. 알렉산더 포프(1688~1744)는 18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신고전주의 시인이다. 영국 문학사에서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양대 산맥이라 할 만한 대문호다.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25> 알렉산더 포프의 『詩選』

이름이 포프라서 그런지 포프의 인생을 아로새긴 것은 그의 가톨릭 신앙이었다. 성공회가 국교인 영국은 가톨릭을 탄압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큰일 날 일이지만 형법상으로 가톨릭 신자는 영국에서 대학을 비롯해 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고 공직자가 될 수도 없었다. 런던에서 10마일 이내에 사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포프의 집안은 가톨릭이었다. 할아버지는 성공회 신부였는데 직물도매상이었던 아버지가 포르투갈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이다. 포프는 불법으로 운영되는 가톨릭계 학교, 가정교사로부터 초·중등 교육을 받았다.

키 1m37cm, 척추장애인 … 독학으로 고전 익혀
게다가 포프는 어렸을 때 포트병(Pott’s disease)를 앓아 불구가 됐다. 척추장애인이 됐다. 성장에 지장이 생겨 키가 1m37cm였다. 고열, 두통, 심한 기침, 복부 통증, 눈이 붓는 증상으로 고생하고 숨이 탁탁 막히는 때가 많아 평생 고생했다. 마사(Martha)라는 여인과는 아마도 연인 관계였고, 아미카(Amica)라는 이름의 유부녀와 사랑에 빠졌지만 평생 독신이었다.

포프는 사회환경적·신체적 악조건을 이겨냈다. 13세부터 독학으로 고전을 공부했다. 라틴어·그리스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를 홀로 익혀 구사했다. 여섯 살 때 호메로스를 처음 접한 그는 1715~26년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를 영어로 번역해 부자가 됐다. 인공동굴(grotto)이 있는 대저택도 구입했다. 포프는 긍정의 아이콘이었다. 장애인의 성인이었다. 경구(quotation) 사전을 찾아보면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많은 그의 의미심장한 말들이 수록됐다. 영미 세계의 언어생활을 살찌우기도 하는 이런 말들이다.

-“화를 내는 것은 남의 잘못에 대한 보복을 우리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사람다운 것이다. 용서하는 것은 신성(神性)한 것이다(To err is human; to forgive is divine).”
-“최악의 광인(狂人)은 미친 성인(聖人)이다.”
-“백성의 목소리는 이상하다. 백성의 목소리는 하느님의 목소리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이 말은 민심즉천심(民心則天心)에 대한 포프의 유보적 견해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절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현명하게 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좌파에서 우파로, 우파에서 좌파로 입장이 바뀔 때 정당성을 부여하는 말이다.
-“어설프게 아는 것은 위험하다.” 이는 식자우환(識字憂患)에 대한 포프적 관점이다. 완벽하게 알면 위험하지 않다. 어설프게 아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응당 인류가 연구해야 할 대상은 인간이다(The proper study of mankind is man).” 인문학의 본질, 가야 할 길을 밝혀주는 말이다.

『시선(詩選)』의 우리말(왼쪽·김옥수 교수 역·2010), 영문판(옥스퍼드 월드 클래식·2009) 표지.
사실 영미권에서도 포프의 시를 읽는 독자는 소수다. 영문학도들도 교과 과정에 포함되니까 마지못해 포프를 읽는다. 그렇다면 오늘 포프의 『시선(詩選)』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시선』은 시의 세계에 입문하고 싶지만 자연보다는 세상사에 대한 관심이 많은 독서인들에게 권할 만하다. 18세기 영국의 사회사를 탐구하려는, 뭔가 ‘진지하게 삐딱한 독자’에게도 포프의 풍자시·철학시는 안성맞춤이다. 시의 본문과 주석을 왔다갔다하다 보면 온갖 시름이나 시간의 흐름을 잊을 수 있다. 힐링의 영감을 그에게서 얻을 수 있다.

편집자의 취향에 따라 『시선』에 나오는 내용은 다르다. 반드시 포함되는 포프의 시가 몇 개 있다. 우선 ‘인간론(Essay on Man)’이 포함된다. ‘인간론’에서 포프는 “무엇이든 있는 것은 옳은 것이다(Whatever is, is right)”라고 말했다. 포프는 프랑스의 대문호 볼테르와 친했지만 세상의 본질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던 것이다.

포프는 이상적인 비평가가 곧 이상적인 인간이라고 믿었다. ‘비평이란 무엇인가’ ‘비평가의 자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이 궁금하다면 한번쯤 읽어야 할, ‘비평론’의 대표적 경구는 이것들이다. “진정한 위트(wit)는 돋보이게 치장한 자연이다. 사람들이 자주 생각은 하지만 제대로 표현된 적은 없는 것. 그게 진정한 위트다.” ‘비평론’에서 이런 말도 했다. “글을 쉽게 쓰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갈고 닦은 기예(技藝)에서 나오는 것이다. 춤을 배운 사람들이 수월하게 움직이듯 말이다.” “고전의 법칙에 대해 정당한 존경을 표하라. 자연을 모방하려면 고전 법칙을 모방해야 한다.”

‘머리타래의 겁탈(The Rape of the Lock)’도 꼭 『시선』에 포함된다. “미인은 머리카락 한 올로도 남자들을 끌어당긴다”는 말의 주인공인 벨린다라는 미인을 꼬시려는 구혼자(suitor)가 벨린다를 너무나 갖고 싶은 나머지 벨린다의 머리칼을 한 움큼 자른 후 벌어진 일을 그린 시다.

어렸을 때 포프는 순진무구했다. 목소리가 아름다워 별명이 ‘작은 나이팅게일’이었다. 성격이 점점 못되게 됐다. 어른이 된 포프는 새 친구를 사귀는 데도 원수를 만드는 데도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걸리버 여행기』의 스위프트 등 당시 문학·정치계의 명사들과 ‘절친’이었지만 척도 많이 지었다. 특히 『시선』의 ‘우인열전(The Dunciad)’ 때문에 한때는 집을 나설 때 장전한 권총 두 개를 준비했다.

가톨릭 신앙 고수 … 묻힌 곳은 성공회 묘지
포프는 시를 써서 얻은 수입만으로 생활한, 적어도 영국에서는 최초의 전업 시인이었다. 최초의 명사(celebrity)이기도 했다. 예컨대 파티 장소에 그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고 “포프다! 포프가 왔다”고 수군거렸다.

사는 데 여러 가지 불편이나 울분이 있었지만 포프는 가톨릭 신앙을 고수했다. 당시 영국 사회는 가톨릭에 대해서는 가팔랐지만 가톨릭 신자인 시성(詩聖) 포프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중년 이후에는 이신론(理神論)에 가까웠다. 포프는 기독교 에큐메니즘, ‘종교통합주의’를 표방한 선구자다. 『시선』에 나오는 “여호와, 주피터 혹은 하느님이시여!”라고 외치는 ‘보편적 기도문’이라는 신앙고백을 발표하기도 했다.

통계는 통계고 인생은 인생이다. 물론 수많은 예외가 있지만 소설가·극작가·시인·기자 등 글을 쓰는 게 직업인 사람들은 일반인에 비해 단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서도 시인들이 제일 먼저 세상을 뜬다. 2004년 4월 22일 BBC보도에 따르면 시인들의 평균 수명은 62세다. 포프는 56세에 먼 곳으로 떠났다. 마지막 날 하루 전 신부를 불러 병자성사를 받은 그는 1744년 5월 25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하게 세상을 떴고 성공회 성당 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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