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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리의 중국 엿보기] 한국 다루는 법 중국은 안다

중앙선데이 2014.01.26 02:27 359호 29면 지면보기
중국이 ‘D데이’를 밝히지 않았던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 소식을 며칠 일찍 알게 되었다. 신화통신사 기자가 연락을 취해왔기 때문이다. 국가기관 소속인 그의 질문에는 한·중 우호 증진 측면보다는 중국의 동북아 전략적 관심이 다분히 투영돼 있었다. 중국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 건립에 대해 한국 정부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최근 동북아 정치를 고려할 때 이번 조치는 중국 정부의 어떤 태도를 반영하는가, 일본 정부는 어떻게 반응할 것이라고 보는가….

한·중 우호의 모양새를 갖춘 행사지만 전체 맥락에선 정작 이 행위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대상은 한국이 아닌 일본임이 분명해진다. ‘안중근’은 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중국이 선택한 바둑돌(棋子)이었다. “솔직히 최근 악화된 중·일 관계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안중근이 누구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한 중국인의 시원솔직한 관전평이다.

최근 부쩍 가까워진 한·중 관계에 대해 성신여대 김흥규 교수는 “우리의 외교가 잘해서라기보다는 새로운 안보 환경과 중국 스스로의 외교전략 조정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분석한다. 중국이 세계에서 미국과 패권경쟁을 하고, 아시아에서 ‘일본 때리기’를 하면서 ‘바둑돌’로서 한국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제고되었다는 것이다.

‘바둑돌’은 게임에서 필요할 때 잠시 사용하는 수단이다. ‘바둑돌’ 본연의 가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방과 벌이는 게임에서 전략적 필요에 따라 어떤 바둑돌에 더 무게를 두기도 한다.

한국도 순진하지 않다. 한국 역시 북한 문제에 있어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내려고 최근 중국에 더 가까워지려 하는 면도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시점은 서로가 서로를 전략적으로 상대하고 있던 상태에서 어느 한쪽이 상대방의 전략을 ‘진실’이라고 믿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한쪽의 방어기제가 풀리면 게임은 다른 한쪽이 원하는 방향으로 급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한국이 완전히 중국의 ‘도구(tool)’가 돼버렸다.” 요즘 일본이 미국 인사들에게 ‘고자질’하는 내용이란다. 보는 시각에 따라 한국이 중국에 ‘찰떡 공조’를 하는 것처럼 비쳐질 개연성도 있다.

과연 최근 중국의 엄청난 매력 공세에 한국은 옷매무새가 조금 흐트러진 모습도 감지된다.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때 중국이 보인 너무 깍듯한 의전은 베이징 현지에서 보기에도 놀라웠다. 오죽했으면 중국 관방 내부에서 ‘우리가 한국 지도자한테 이렇게까지 극진한 대접을 할 필요가 있나’ 하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한국에 그 효과는 상당했다. 중국이 보인 의전 외교의 감동 여운은 아직도 한국 외교가에서 감지된다.

한국이 중국의 환대에 무척 고무된 것에 비해 정작 환대를 베푸는 중국은 침착하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중국의 ‘일본 때리기’에 한국이 확실히 동참해주기를 요청했다. 중국이 ‘안중근 의사 기념관’까지 설립해준 마당에 한국이 이제 와서 발을 빼기도 힘들 것 같다.

중·일 관계 악화와 미·중 관계 긴장 속에서 한국이 어부지리 반사이익을 얻는 것을 ‘외교 업적’으로 칭찬 들으려 하는 것은 조금 억지감이 있다. 이웃 갈등 사이에서 한국이 이번에 뼘수를 넓힌 방공식별구역(ADIZ)도 마찬가지다. 외교부 고위급 인사가 사석에서 “새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대응하기 어려운 고차방정식 같은 사건이었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한국 외교는 체력을 많이 길러야 할 것 같다. 게임은 이제 겨우 초반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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