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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먼저 간 기형도를 추억하며 …

온라인 중앙일보 2014.01.26 02:32
눈 내리는 겨울밤 장례식장에서 이어진 언덕길을 홀로 걸어 내려갔다. 이승의 변방은 어항 속의 풍경처럼 아무 소리도, 아무 의미도 없는데 먼저 작고한 이들을 멍하니 떠올리다가 문득 깜짝 놀라고 만다. 그들 가운데 몇몇의 마지막이 지금의 나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것이다. 서른 살의 시인 기형도는 종로의 한 심야극장 좌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뇌졸중. 나는 어느새 그보다 15년 가까이 더 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나보다 일곱 살 위인 시인 함성호가 형님으로 모시던 시인 진이정은 폐병으로 요절했는데 나는 그보다 10년 넘게 더 살고 있다.



이러한 경우들은 앞으로 내가 오래 삶을 버텨갈수록 차곡차곡 늘어갈 터다. 쉰 살을 지날 즈음 나는 마흔아홉 살에 간암으로 돌아가신 문학비평가 김현을 떠올릴 것이고, 마흔여덟 살을 지날 즈음에는 그 나이에 여름밤 버스와 부딪혀 숨을 거둔 시인 김수영을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30대 초반에 영면하신 아버지를 회상하면 그보다 훨씬 나이 들어버린 자신이 너무 낯설게 느껴진다는 고백 아닌 고백을 하던 한 친구의 묘한 표정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내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쉰다섯 살에 돌아가셨는데 그중 10년을 앓았다. 내가 내 어머니보다 하루라도 더 살게 되는 날 내 기분은 어떨까?



더 많은 삶이 주어졌으니 더 보람 있는 삶이어야 하는 건 아닌가라는 의무감 내지는 뭔지 모를 미안함 대신에 죽음이라는 거대한 혼돈 앞에서 무작정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쓸쓸함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까, 아니면 삶에 대한 경각심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에서는 2분마다 한 명꼴로 어디선가, 누군가, 어떤 이유로든 죽고 있다. 그야말로 모든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사형수인 셈이다.



우리가 스스로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듯 우리가 아무리 거부한들 죽음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온다. 나는 우리 삶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평소 우리는 왜 죽음을 잊고 사는 것일까? 토마스 만은 장편소설 ?마의 산?에서 “죽음을 종교적으로 다루는 단 하나의 방법은 죽음을 인생의 안목이라고 생각하고, 또한 인생의 신성을 범해서는 안 되는 요건으로서 이해와 감동을 가지고 주시하는 데에 있다”고 썼다. 진정한 종교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죽음 그 자체일 것이다. 죽음은 무자비할 뿐 삶처럼 야비하지는 않다.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보석은 바로 죽음이다. 죽음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빛나지 않는다.



영생을 누리는 희랍의 신들이 나약한 인간을 질투하는 것은 인간에게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소멸하지 않는 인간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마네킹에 불과하고, 그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지루함뿐일 것이다. 죽음은 삶을 값어치 있게 하고 절망 앞에서 희망을 각오하게 한다. 몽테뉴는 ?수상록?에 썼다. “죽음을 예측하는 것은 자유를 예측하는 일이다. 죽음을 배운 자는 굴종을 잊고, 죽음의 깨달음은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우리들을 해방한다.”



자기 혁명은 고사하고 죄만 짓고 살다 보면 문득 공포가 밀려온다. 그런데 막상 삶과 죽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궤변이 아니다. 우리는 반편으로 살아서도 안 되고 반편으로 죽어서도 안 된다. 삶도 죽음도 단 한 번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 시간은 저마다의 심리와 실존 속을 다르게 흘러간다.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갈까, 나는 언제나 늙을까라는 상념에 젖어 있던 어린 시절의 내가 기억난다. 나중에야 알게 됐는데,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은 매일 보던 것만 보고 듣는 것만 들어 인생이 빤하기 때문이란다.



인생을 길게 사는 법은 순간 순간을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것일 게다. 소포클레스는 말했다. “가끔은 죽음을 생각하라. 그리고 곧 죽을 것이라 생각하라.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아무리 번민할 때라도 밤이면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번민은 금방 해결될 것이다. 그리하여 의무란 무엇인가, 인간의 소원이란 어떤 것이라야 할 것인가가 곧 명백해질 것이다.”



새해다. 죽음이란 단 하나의 단어로 된 경전을 들고서 우리는 오늘이라는 새로운 날 위에 다시 서 있다.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 죽음이 인간을 대하듯 삶을 이겨내야 한다. 눈 내리는 겨울밤 장례식장에서 이어진 언덕길을 홀로 걸어 내려가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이응준 소설가



이응준 1990년 계간 문학과 비평에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온다’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국가의 사생활』과 시집 『애인』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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