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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베이식 … 최고 요리, 기교 아닌 기본에서 탄생

온라인 중앙일보 2014.01.26 02:30
프랑스 정부로부터 ‘요리 명장’으로 선정된 필리프 고베(왼쪽) 셰프와 그의 요리에 딱 맞는 와인을 찾아내는 소믈리에 올리비에 푸시에(오른쪽). 고베 셰프 조리복의 목 부분 칼라에 있는 프랑스 국기의 삼색(적·백·청)은 정부 인증 요리 명장에게만 주어진다. 20년 가까이 고베 셰프와 호흡을 맞춘 푸시에 소믈리에는 "한국 레스토랑의 와인 셀렉션이 꽤 인상적"이라 평했다. 조용철 기자



한국서 요리 레슨한 프랑스 요리 명장 필리프 고베

필리프 고베(52)는 어머니가 주방에서 갓 부친 크레이프(프랑스식 메밀 전병)가 몇 장인지 세면서 숫자를 배웠다. 남프랑스 리옹에서 기계공인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사이의 아홉 남매 중 하나로 자란 그는 아버지가 취미로 가꾼 2만여㎡의 과수원에서 뛰어놀다 “저녁 먹자”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이끌려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저녁 식탁엔 새의 간과 푸아그라(거위간)를 콩피(살짝 조리는 것)한 요리가 메인으로 올랐다.



 그런 그가 1993년 ‘프랑스 요리명장(Meilleur Ouvrier de France·MOF)’으로 선정돼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에게 상을 받은 건 자연스러운 인생의 흐름이었다. 당시 MOF 자리를 놓고 경쟁한 사람들은 알랭 뒤카스, 조엘 로부숑 등 미슐랭(세계적 미식 평론지) 최고점 레스토랑을 여럿 거느린 쟁쟁한 셰프였다. 고베의 이름이 새겨진 조리복 칼라엔 프랑스 국기의 세 가지 적·백·청색이 띠로 둘러져 있다. MOF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프랑스 역사를 통틀어 지금까지 100명이 채 안 되는 셰프가 MOF 호칭을 받았다. 프랑스 셰프들에게 MOF는 인생 최후의 목표다.



 하지만 고베에겐 그렇지 않았다. 그는 계속 정진했고 2010년엔 프랑스 요리사 그랜드 금메달을 땄다. 유명 요리학교인 에콜 르노트르(l’ecoles Lenotre)의 교장이 된 그는 보퀴즈 도르(Bocuse d’Or) 같은 수준 높은 요리대회에서 최고점을 받는 제자들을 길러냈다.



 고베의 어린 시절 꿈은 아버지를 따라 엔지니어가 되는 거였다. 10대 후반엔 엔지니어 양성 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다 형이 요리사의 길을 걸으며 문득 요리에 호기심을 느꼈다고 한다. 형은 결국 와인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고베는 요리에 더 빠져들었다. 그리고 31세 때 MOF가 됐다. MOF가 되기엔 매우 어린 나이여서 프랑스에서 꽤 화제가 됐다고 한다.



 에콜 르노트르는 콧대 높기로 유명해 프랑스 이외엔 분교를 내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아 왔다. 그러던 고베 원장이 그 고집을 꺾고 한국 SPC그룹과 손잡고 정규 교육과정을 최근 서울에 열었다. 그의 요리에 딱 맞는 와인을 선별해내는 올리비에 푸시에(51) 소믈리에와 함께 방한한 그를 23일 서울 한남동에서 만났다.



고베 셰프가 선보인 갈라 디너 코스 중 갖은 향신료에 감귤 젤리를 얇게 저며 곁들인 카르파치오(냉채 일종, 왼쪽)와 푸아그라와 함께 졸인 송로버섯·무를 곁들인 라비올리와 안심구이. 이날 디너엔 소믈리에인 푸시에가 각 요리와 궁합이 맞는 다섯 가지 블렌디드 와인을 내놨다. [사진 SPC그룹]



요리는 재료에서 최상의 맛 추출하는 과학

뭉툭하지만 깨끗하게 다듬어진 그의 손엔 곳곳에 흉터가 보였다. 영락없는 셰프의 손이다. 고베는 서울의 프렌치 레스토랑과 전통시장을 둘러봤다. 23일 저녁엔 주한 외교사절과 기업인을 위한 갈라 디너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고향 남프랑스의 맛에 충실하되, 아뮤즈부슈(한입에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전채요리)·가니시(곁들이는 음식)엔 한국의 배추 등을 사용하는 파격도 시도했다. 여섯 가지 코스로 진행된 갈라 디너의 세 번째, 바닷가재 요리엔 ‘김치 루아얄(royale·잘게 다져 계란 등과 함께 오븐에 구운 요리)’이 곁들여졌다.



 -가락동 시장 등을 둘러봤다고 하던데.



 “펄떡펄떡 뛰는 생동감에 놀랐다. 당장 주방에서 요리하고 싶은 재료들이 넘쳐났다. 다양한 해산물을 싱싱하게 산 채 구입할 수 있다는 데 눈이 휘둥그래졌다.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살아 있다’는 느낌이 생생했다. 요리는 자연이 준 재료에서 인간이 최고의 맛을 추출해내는 과학이다. 호기심 많고 실험정신이 투철한 한국인 셰프를 많이 아는데, 그들의 저력엔 이런 배경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프랑스 특산품인 송로버섯을 제외하고 모든 식재료는 한국에서 신선한 것으로 골라 썼다. 즐거웠다.”(고베)



 -김치를 갈라 디너에 활용했는데.



 “여러 종류의 김치를 맛봤다. 외국인들에게 매운 건 사실이지만 맛은 습관이자 훈련이다. 백김치의 경우 외국인들도 거부감이 전혀 없다. 올리비에(소믈리에)와 함께 맛의 ‘마리아주(궁합)’를 고민하며 골랐다.”(고베)



 “김치의 산미가 있기 때문에 와인은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걸로 골랐다. 매운맛을 외국인이 못 먹을 거라는 건 오해다. 오히려 나는 미각을 섬세하게 훈련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매운맛을 찾아서 맛본다.”(푸시에)



 -한국에선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한식 세계화가 주춤해졌다.



 “한식의 아이콘이 뭔지 떠오르지 않는다. 김치만으론 부족하다. 전통성 있는 문화 아이콘을 지정해 세련된 방법으로 널리 알려야 한다. 일본 하면 스시가 떠오르면서 ‘스시는 먹기도 편하고 소화도 잘되고 건강에도 좋다’는 좋은 이미지가 이어진다. 김치 등 한국 식자재는 프랑스에서 구하기도 어렵다. 희망은 있다. 이미 많은 한식당이 선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파리 16구에 있는 한국 식당의 단골이다.”(푸시에)



 “한국도 올림픽·월드컵 같은 국제행사를 치르며 한식을 알리는 좋은 계기를 맞았다. 아쉬운 점도 보이는데, 디저트 부분이 그렇다. 전통을 무시하고 모던만 강조하는 경향이 보여서다. 한국의 ‘가토(gateaux·디저트)’는 단 것만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 가토라는 건 그 식사의 마무리를 해준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피로를 풀어주는 산뜻한 맛일 수도 있고, 그 식사를 좋은 기억으로 마무리하게 돕는 게 가토인 것이다. 개념의 재정립부터 할 필요가 있다. 그 후엔 한국의 전통 맛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답은 가까운 곳에 있다.”(고베)



 고베는 일본 스시 얘기가 나오자 “한국에도 사시미가 있느냐” “어떤 생선을 주로 먹느냐”고 질문했다. 프랑스어에선 ‘h’가 묵음(默音)이어서 ‘회’를 잘 발음할 수 없다며 몇 번이고 큰 목소리로 ‘회’를 따라 해보기도 했다.



세계 곳곳 다니며 새로운 재료 찾아

푸시에 소믈리에는 한식과 와인의 궁합에서도 다양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중해의 열기를 간직한 남프랑스 와인과 새콤매콤한 김치는 의외로 잘 어울릴 수 있다”며 “불고기는 물론 한국의 다양한 채소 요리를 보면 레드 와인보다는 화이트 와인, 그중에서도 입안에 부드럽게 감기는 종류가 한식과 잘 어울린다”고 했다.



 프랑스 요리는 이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한식에 세계화에 성공한 선배 격이다. 서울에도 프렌치 레스토랑이 늘어나고 있고, 프렌치와 한식을 접목한 셰프들도 각광받고 있다. 고베는 “서울 방문 때마다 프렌치 레스토랑을 꼭 둘러본다”며 “프렌치 스타일을 아주 잘 표현한, 파리의 여느 훌륭한 레스토랑과 견주어 손색없는 곳이 많다”고 했다. 예컨대 서래마을에서 오세득 셰프가 운영하는 줄라이 레스토랑은 “프랑스의 정신이 살아 있었다”고 했다. “서울의 이름난 레스토랑들을 둘러보면 가족·연인들이 섬세한 공간에서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주로 여성들이 그런 문화를 주도하는 것 같은데, 곧 남성들도 적극적으로 미식 경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미식이 하나의 문화로서 뿌리내리는 과정인 것 같다.”



 -일본의 요리학교 쓰지조의 쓰지 요시키(?芳樹) 원장은 ‘미식은 테크놀로지’라고 주장하는데.



 “맞는 말이다. 테크닉이 아니라 테크놀로지라는 표현을 쓴 부분에 주목하라. 요리사의 손을 거치기 전에 무는 그저 무일 뿐이다. 그러나 칼질을 거치고 올바른 조리법을 거치면 그 무는 훌륭한 요리로 탄생해 최고의 수프가 되고 육수가 된다.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는가. 기본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고급 테크닉부터 배우려고 달려든다. 요리에 지름길이란 없다. 스키 탈 때 누가 처음부터 고난도 코스로 가나. 그런 선택은 비상식적일 뿐 아니라 위험하다.”



 실제로 고베에게 요리를 배운 임석 셰프는 “기본 칼질은 물론 각 야채에 따라 소금 넣는 양의 차이와 같은 기본부터 철저하게 단련했다”고 했다. 고베가 높게 평가한 줄라이 레스토랑에서 근무했던 그가 또 하나 에콜 르노트르에서 배운 게 있다. 요리사로서의 자긍심이다. 임 셰프는 “고베는 ‘너는 에콜 르노트르의 대표’라는 자긍심을 갖고 요리사로서 살아가라고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고베에게 물었다.



 -요리사로서 어떤 자긍심을 갖고 있나.



 “요리의 역사는 기원전 3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전에도 물론 인류는 요리를 했겠으나 기록에 남은 건 기원전 300년, 꿀을 어떻게 다뤄야 맛이 좋은지에 대한 것이다. 역사가 오랜 직업엔 예를 갖춰야 한다. 셰프들이 결국 고전 요리책으로 돌아가는 이유가 있다. 누구나 훌륭한 요리사가 될 가능성은 있다. 실제로 그 가능성을 실현해내는지 여부는 그 사람의 끈기다. 기본을 파고들어 자기 것으로 만드는 끈기 말이다. 주방은 혹독하다. 그 과정을 견뎌낸 이들만이 셰프가 된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지금은 어떤 노력을 하나.



 “최고란 없다. 끝이란 없으니까. 좋은 식재료를 찾아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동료 셰프들과 함께 토론을 한다. 매일 조금이라도 새로운 채소를 찾아 조리해보고 먹어보려고 노력한다. 모든 일상이 요리에 대한 훈련이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전수진 기자 suji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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