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 묻을 오리 5만 마리, 농민 얼굴을 어찌 보나"

온라인 중앙일보 2014.01.26 00:35



충남 부여까지 번진 AI … 첫 발생지 전북 부안 방역현장 동행취재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남 해남의 종오리(씨오리) 농장에서 AI 의심신고가 들어왔고, 24일에는 충남 부여에서도 H5N8형 항원이 검출됐다. 25일 경기도 화성 시화호의 철새에서도 AI 의심 혈청이 검출됐다.



지난 16일 전북 고창의 종오리 농장에서 AI 의심신고가 첫 접수된 지 10일 만이다.



전북 부안에 급파된 농림축산식품부 위성환(54) 동물약품관리과장의 시선을 따라 지난 23일 하루 동안의 방역작업을 지켜봤다. 위 과장은 2003년부터 전국 AI 발병 지역을 누비며 방역작업을 지휘한 ‘한국 AI 방역의 산증인’이다.



경기도 시화호 철새도 AI 의심 혈청

“오늘은 줄포면 내 오리농가 7군데에서 살처분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각자 맡은 대로 처리해 주세요.”



살처분 진행 상황과 방역계획을 설명하는 김동수(60) 상황실장의 표정이 굳어 있다. 오늘로 AI가 발생한 지 8일째. 2010년 전남 영암에서 139일 동안 AI가 발병했던 걸 생각하면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AI 방역 일을 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AI 방역에 대해선 눈 감고도 A부터 Z까지 줄줄 욀 수 있을 정도다. 이번 AI는 그래도 초기 방역에 성공했으니 사람이나 차량으로 인한 확산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철새다. 가창오리의 북상에 따라 경기도 지역까지 AI가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기권은 우리나라에서 가금류 농가가 가장 많은 곳이다. 전국적 확산은 막아야 한다.



22일 전북 부안군 줄포면의 한 오리농장에서 방역요원들이 AI 감염이 의심되는 오리들을 살처분하고 있다. 25일에는 경기도 시화호의 철새에서 AI 의심 혈청이 검출됐다. [뉴스1]



군.경까지 동원해 입체 작전

오늘 하루 동안만 5만 마리가 넘는 오리가 구덩이 속에 파묻힌다. 수도 없이 겪어 온 일이지만 농민들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다. 농민들이 자식처럼 애지중지 길러 온 오리들이 살처분되는 걸 지켜보는 건 방역 관계자들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굴착기를 동원해 구덩이를 파고 오리들을 파묻었다. 감염되지 않은 오리라도 최초 발생지 반경 3㎞이내라면 ‘예방적 살처분’ 대상이 된다. 안타깝지만 AI의 확산을 막기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다. 차단 방역작업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 군과 경찰까지 동원돼 초소를 설치하고 방역작업을 진행 중이니 일단 급한 불은 끈 셈이다.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자율방제단이 다행히 자신들의 역할을 잘해주고 있다.



16일 AI 의심보고가 들어온 이후 한 번도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상황실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겨우 옷만 갈아입고 나오면 다행이다. 모두 조금씩 지쳐가는 것 같다. 하루빨리 AI 발병 상황이 끝나야 한다.



22일 전북 부안군 줄포면의 한 오리농장에서 방역요원들이 AI 감염이 의심되는 오리들을 살처분하고 있다. 25일에는 경기도 시화호의 철새에서 AI 의심 혈청이 검출됐다. [뉴스1]




살처분 끝난 마을선 소독작업

“축산시설을 방문하였습니다.”



방역지휘조 차량에 설치된 내비게이션에서 자동 음성안내가 들려온다. 지난해부터 도입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잘 작동되고 있다. 방역 및 축산 관련 전 차량에는 GPS 수신기가 장착돼 있어 이동 경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AI 확산 단계에서 가장 위험한 건 차량이다. 고속으로 움직이는 차량이 감염될 경우 확산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이미 살처분을 끝낸 줄포면내 한 마을에선 자율방제단의 현장소독이 이뤄지고 있다. 자율방제단은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일종의 ‘의용군’이다. 발병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방역작업에서 자율방제단은 큰 힘이 된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죠. 지역 주민들이 힘을 합치면 AI도 곧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소독차량을 이용해 소독약 살포작업을 하던 자율방제단원 김영권(55)씨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문제는 시간이다. 지금 같은 상황이 길어지면 방역작업에 동원된 인력들의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다. 지금도 일손이 부족해 방제단원들은 12시간씩 2교대로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AI가 네 번 발병했지만 가장 짧게 지속됐던 건 2008년의 42일 동안이었다.



철새 도래지에도 소독차량 투입

점심식사를 마치고 찾은 3방역초소에선 소독약 희석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소방차와 소방관들이 나와 있었다. 방역초소는 AI 바이러스의 확산을 차단하는 통제선 역할을 한다.



소방관들은 소방차에서 호스를 연결해 소독분말을 희석시키는 작업에 한창이었다. 오가는 차량과 장비를 소독하기 위해선 초소마다 수십~수백t톤의 물이 필요하다. 소방관들은 소방차로 3시간에 한 번씩 물을 공급하고 있다.



바로 옆 외포마을에선 농협이 보유한 ‘광역살포기’로 소독작업을 하고 있었다. 광역살포기는 반경 50m 구역을 한꺼번에 소독할 수 있는 특수차량이다. 부안에는 이런 광역살포차량이 모두 4대 있다. 소독제 발사력이 너무 세 축사나 차량 소독보다는 철새 도래지 소독에 주로 사용한다. 소독차량을 운전하는 은진영(36)씨는 “내 이웃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별로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상황실로 돌아오는 길. 이번 AI는 어디까지 확산될까. 전북 군산 금강호와 충남 당진 삽교천에서 폐사한 가창오리도 AI 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된다는데…. 걱정이 앞선다.



설 연휴가 AI 확산 여부 중대기로

30일 시작되는 설 연휴는 이번 AI 확산의 중요한 기로가 될 전망이다. 연휴 기간 직후 AI 잠복기가 끝나는 데다 전국적 이동이 많아지면서 AI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AI 감염경로로 의심되는 철새들의 이동에도 관심이 쏠린다. 최초 발생지에 인접한 전북 고창 동림저수지에서 월동하던 가창오리의 개체수는 줄어든 반면, 이보다 북쪽인 금강하구의 가창오리 개체수는 늘어나는 추세다. 충북 서천 금강하구의 가창오리 수는 23일 현재 22만여 마리까지 늘었다. 가창오리들이 금강호를 넘어 삽교호 등으로 북상할 경우 AI의 추가 확산 가능성도 높아진다.



실제로 25일 경기도 화성 시화호에서 채취한 철새 분변(糞便)에선 고병원성으로 의심되는 H5N8형 AI 혈청이 검출됐다. 농식품부는 주요 철새 도래지를 중심으로 ‘철새 경보시스템’을 구축해 철새들의 이동경로를 면밀히 관찰키로 했다.



AI가 오리에서 닭으로 확산되면 농민들의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충남 부여의 한 종계장에서 폐사한 닭에서 H5N8형 AI 항원이 검출됐다. 고병원성 여부는 26일 오후께 판별될 것으로 보인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초동방역팀을 부여에 급파해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의심신고가 들어온 농장 중심으로 반경 10㎞ 이내에는 339개 농가에서 235만 마리의 가금류를 사육 중이다.



이동현 기자, 박성의 인턴기자 offramp@joongang.co.kr



오피니언리더의 일요신문 중앙SUNDAY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아이폰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아이패드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 폰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 탭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앱스토어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마켓 바로가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