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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 50대 남성 고위 법관 … 또 그들만의 리그

온라인 중앙일보 2014.01.26 00:32



“다양성 부족” 비판 받는 대법관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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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의 남자가 있다. 나이는 53~57세. 모두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법조인으로 30년 가까이 살아왔다. 4명은 판사 출신이다. 지법부장, 고법부장을 거쳐 법원행정처 차장 혹은 현직 법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1명은 검사 출신이다. 법무·검찰 요직을 거쳐 검사장급으로 승진했다. 현직 지검장을 지낸 뒤 지난 인사에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 5명은 지난 16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신임 대법관 제청 대상 후보자로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추천한 인물들이다. ‘서울대 법대, 50대 남성, 판검사 고위직’. 이름표만 떼면 지나온 삶의 궤적이 크게 다르지 않기에 이들을 ‘후보자A’로 통칭해 보자.



양 대법원장은 25일 후보자A 중 한 명을 신임 대법관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선택 받은 이는 조희대(57) 대구지법원장이다. 대법원이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양 대법원장이 조 법원장을 신임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한 이유가 장황하게 적혀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희대 대법관 후보자는 1986년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한 이래 27년간 각급 법원에서 다양한 재판업무를 담당하면서 해박한 법 이론과 엄정하고 공정한 재판으로… 신뢰받는 사법부를 만들어가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됨.”



법원 내 평판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법원행정처의 한 부장판사는 “경상도 출신이어서 무뚝뚝하지만 잔정이 많은 분이다. 배석판사들에게도 격의 없이 대해 다들 좋아했다”고 전했다. 서울고법에서 함께 근무한 다른 판사도 “후배들이 힘들어하는 이른바 ‘벙커’(깐깐한 선배 판사)는 아니셨다”고 말했다.



조 후보자를 ‘후보자A’ 혹은 ‘서울대 법대를 나온 50대 남성 법원장’으로 뭉뚱그려 판단하는 건 온당한 걸까.



법조계에선 “조 법원장이 대법관이 될 사람이기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의 말이다.



“대법관이 제대로 법을 적용하려면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이해해야 합니다. 14명 대법관이 각 분야를 모두 경험하는 건 물론 불가능하죠.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분들이 시각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모두 비슷한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란 말이에요. 국민의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다 보니 수긍하기 어려운 판단들이 나오는 거죠.”



한국법학교수회장으로 오랫동안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 참여했던 성낙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대법원의 다양성 부재’를 지적한다.



“한 분, 한 분 따져보면 다 훌륭한 분들이죠. 그걸 누가 모르겠어요. 외적인 다양성이 꼭 중요하냐고 하는데, 외형이 내면을 규정할 수 있습니다. 대법관은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를 반영해서 발전적 변화를 추구하고 동기를 부여해야지요. 대법관후보추천위원 하면서 법학 교수 출신 대법관을 늘리고 공인된 법과대학 조교수 이상에겐 법관 자격을 주자고 했더니 ‘당신이 하고 싶어 그런 것 아니냐’고 해요. 이런 인식하에선 엘리트 법관만 계속해서 대법관으로 승진하는 거죠.”



양 대법원장은 2011년 9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대법원의 외형적 다양성이 필요하지만 연간 3만6000건 넘게 사건을 처리하는 상황에선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보단 전문성에 무게를 둔 발언으로 풀이됐다.



양 대법원장이 처음 대법관 임명제청을 한 것은 취임 한 달 만인 2011년 10월.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던 김용덕 대법관과 함께 변호사로 재직 중이던 ‘싱글맘’ 박보영 대법관을 선택하면서 “양 대법원장도 ‘다양성’을 의식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1년 뒤인 2012년 임명 제청한 4명의 대법관은 모두 고위 법관 출신이었다. 검찰 출신 김병화 전 인천지검장이 최종 후보로 낙점됐지만 자격 논란 끝에 낙마했다.



현재 재직 중인 14명의 대법관은 이번 신임 대법관 후보자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양 대법원장과 3월 퇴임하는 차한성 법원행정처장을 포함해 법원행정처 차장 출신이 5명이다. 법원행정처는 행정조직이지만 인사·예산권을 쥐고 있어 사법부의 ‘정점(頂點)’으로 불린다. 대법관인 법원행정처장 밑에서 실무를 총괄하는 법원행정처 차장은 ‘대법관 직행 코스’로 불리기도 한다.



한양대 출신인 박보영 대법관과 고려대 출신인 김창석 대법관을 제외하면 모두 취임 당시 ‘서울대 법대를 나온 50대 남성’이었다. 비(非)서울대 출신인 김 대법관도 고법부장, 법원장, 법원도서관장 등 요직을 거친 정통 엘리트 법관이다. 서울대 법대 74학번 동기가 4명(민일영·이인복·이상훈·고영한 대법관)이나 된다.



여성 대법관은 2명이지만 모두 판사 출신이다. 대법관 중 최연소 여성인 김소영 대법관은 오래전부터 ‘차기 대법관’ 후보로 꼽혔던 엘리트 판사 출신이지만 김병화 전 대법관 후보자의 낙마로 ‘급조된 여성 대법관’이란 평가도 받는다. 학자 출신은 올 9월 퇴임하는 양창수 대법관이 유일하다.



양 대법원장은 왜 ‘후보자A’를 고집하는 걸까.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하태훈 교수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양 대법원장의 스타일’에서 이유를 찾는다.



“양 대법원장 말대로 대법원이 처리해야 할 사건 수가 너무 많다 보니 효율적으로 빨리 해결하는 능력을 갖춘 대법관을 중시하는 거죠. 이런 조건이라면 엘리트 법관 출신을 선호할 수밖에 없어요.”



장영수 교수는 “일종의 보상심리가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대법관 후보까지 오르는 분들은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촉망 받던 인재들이다. 대우 받는 자리를 마다하고 수십 년간 일한 사람들에게 뭔가 보상해야 한다는 시각이 법원 내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위원회 부위원장인 이재화 변호사는 “대법원은 사회 발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우리 사회가 다양한 의견과 가치관이 공존하는 다원사회로 바뀌었는데 대법원은 이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양 대법원장 취임 이후 오히려 다양성 측면에서 퇴보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요즘 대법원이 조용해졌다는 말이 들린다. 비슷한 시각을 가진 대법관들로 구성되다 보니 대법관들 사이에 다양한 가치관과 시각을 두고 격론을 벌이는 문화가 사라졌단 의미”라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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