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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외환 통제 역풍 … 페소 하루 새 13%↓

중앙일보 2014.01.25 00:42 종합 6면 지면보기
터키에 이어 이번엔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 비상벨이 울렸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는 23일(현지시간) 달러당 6.96페소에서 7.88페소로 하루 만에 13.2% 추락했다. 장중 한때 8.24페소까지 급락해 국가부도(디폴트) 사태를 맞았던 2002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 8페소 선을 넘었다. 암시장에선 이미 달러당 13페소가 넘어 올 들어서만 20% 이상 값이 떨어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이날 1억 달러 이상 풀며 페소화 방어에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 아르헨티나 외환보유액도 7년 만에 처음 300억 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페소화 추락으로 신흥시장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들며 터키 리라, 브라질 헤알, 칠레 페소,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 등 신흥국 통화도 일제히 급락했다.


해외 '직구' 연 2회 제한 치명타
외환보유액은 7년 만에 최저로
터키·남아공 등 통화 동반 급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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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헨티나 정부의 헛발질도 위기를 부채질했다. 2009년 이후 물가 급등으로 페소화 가치는 줄곧 평가절하 압력을 받아왔다. 그러나 정부가 환율을 인위적으로 누르자 암시장으로 달러 엑소더스가 일어났다. ‘블루 달러(El dolar blue)’란 용어까지 생겼다. 달러 유출을 우려한 정부는 ▶해외 신용카드 사용 제한 ▶기업 해외 송금 규제 ▶1인당 달러 환전 액수 제한 등 외환 통제를 더 바짝 조였지만 그럴수록 암시장만 커졌다. 22일 국세청(AFIP)이 주로 달러로 거래되는 온라인 쇼핑몰을 겨냥해 1년에 온라인 해외 직접 구매 2회 제한 등 초강경 정책을 발표하자 시장 불신은 극에 달했다.



 아르헨티나 국가통계청(INDEC)은 암시장의 ‘블루 달러’가 외환보유액보다 많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 돈이 국외로 탈출하기 시작하면 아르헨티나 외환시장은 2002년 사태에 버금가는 혼돈에 빠질 공산이 크다. 아르헨티나의 위기는 포퓰리즘 정책을 앞세운 페론주의자이자 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전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가 2003년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부터 잉태됐다. 2002년 경제난 속에 정권을 잡은 키르치네르는 정부 재정으로 서민층을 지원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밀어붙였다. 때마침 중국 경제가 비상하면서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콩·옥수수·쇠고기 등 농산물 수출국인 아르헨티나 경기가 살아났다.



 그 덕에 남편의 바통을 이어받은 페르난데스도 2007년과 2011년 연거푸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고무된 페르난데스는 정부 씀씀이를 계속 늘렸고 2009년부터 물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페소화가 평가절하 압력을 받자 페르난데스 정부는 외환보유액까지 동원해 시장에 개입했다. 지난해에만 59억 달러를 페소화 방어에 썼다고 WSJ이 전했다. 지난해 11월엔 페소화 방어에 소극적이었던 중앙은행 총재를 갈아치우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의 공식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2월 10.9%다. 그러나 실제론 20%가 넘는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단기외채를 마구 끌어다 쓰다 보니 국가부채는 2002년 국가부도 당시보다 36% 이상 많은 2000억 달러에 달한다. 반면 외환보유액은 내년 200억 달러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그럼에도 내년 10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페르난데스 정부는 포퓰리즘 정책의 수위를 더 높일 태세다. 그의 건강이상설도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머리 수술을 받은 뒤 40일 동안 자리를 비웠던 그는 지난해 11월 18일부터 업무에 복귀했다. 나라 밖 사정도 심상치 않다. 오는 28~29일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양적완화 규모 추가 축소 여부를 결정한다. 월가는 100억 달러 더 줄일 것으로 보고 있다.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의 달러 이동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다 중국에선 경기 둔화를 시사하는 지표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국제 원자재 시세가 반등할 가능성이 작다는 신호다. 아르헨티나로선 사면초가의 형세다.



정경민·조현숙 기자



◆블루 달러=아르헨티나 암시장에서 불법적으로 거래되는 미국 달러화. ‘검은(black)’은 불법 느낌이 강하다고 해 옅은 ‘파란(blue)’을 붙였다는 게 정설. 일종의 완곡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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