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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베르베르의 묵시록, 인류는 자멸할 것인가

중앙일보 2014.01.25 00:41 종합 24면 지면보기
제3인류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2월의 주제 - 익숙한 세상, 다시 보기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1~3권 448·336·333쪽

각 권 1만3800원




“거인들은 폭력적이다. 그들은 힘과 전쟁만을 존중한다. 그들의 모든 문명은 그런 식으로 건설되었다. 그들의 국경선은 그렇게 생겨났다.”(3권 128쪽)



 베르베르가 신간 『제3인류』에서 인간의 습성을 묘사하는 한 대목이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우리네 인간을 무척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인류가 자본과 권력의 노예이면서 자연의 순리를 얼마든 거스를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한다면 그것은 베르베르가 도달할 인류의 최후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저자 스스로 “지금까지 집필한 작품 중 가장 대규모 프로젝트”라고 소개한 것처럼 『제3인류』는 스케일이 남다르다. 태초에 1000년을 사는 신장 17m의 제1인류가 있었고, 이들은 자신들이 창조한 평균 키 170cm의 제2인류, 인간에 의해 괴멸된다. 그리고 인간은 다시 키 17cm의 초소형 인간인 제3인류 ‘에마슈’를 만든다.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53)의 작품에는 한국인이나 한국산 제품이 자주 나온다.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신작 『제3인류』에도 현대자동차가 등장했다. [중앙포토]
지난해 나온 1, 2권은 자연재해·원전사고·핵 전쟁 등으로 위기에 처한 인류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마루타로 ‘에마슈’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그렸다. 뛰어난 면역력을 갖춘 ‘에마슈’는 원전 사고 처리반에 투입되는 등 인간의 대체제로 이용된다. 이들은 이름대신 번호로 불리고, 무참히 살해당해도 살해자에게 죄를 묻지 않는다. 문제는 ‘에마슈’도 점차 인간처럼 사고하고 느끼며 판단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두 집단간의 거대한 전쟁은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최근 출간된 3권 ‘초소형 인간’(부제)은 인간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에마 109’가 반란군을 모집하고 전복을 도모하는 이야기다. 이쯤에서 지난해 내한한 베르베르의 일성을 떠올려보자.



 “예전엔 우리가 진화를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진화를 선택할 수 있어요. 우리는 환경오염과 산업화 인구문제를 스스로 통제할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건 굉장한 책임을 요하는 현상이고 우리는 양심의 모험에 봉착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3인류』가 보여주는 혼돈의 세계는 만약 우리가 지구의 위기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을 때 펼쳐질 디스토피아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초소형 인류라는 완벽한 상상의 세계를 설득력있게 직조해냈다는 점이다. 이는 『개미』 『신』 등에서 익히 본 베르베르의 특장점이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는 증거다. 또 1,2권에서 다소 방만했던 이야기가 3권에 와서 잔가지를 쳐내 몰입도를 높힌 것도 읽는 이를 즐겁게 한다. 다만 직접적인 은유로 가득찬 이 세계가 문학적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은 아쉽다.



 3권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에마슈’를 만든 생명과학자 다비드 웰즈가 바티칸의 교황을 찾아가 "에마슈를 마음대로 죽여도 되는가. 이들은 인간과 다른가”라고 묻는 장면이다. 교황은 “에마슈를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한다면 그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해야 하고 시민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너무 일찍 옳은 생각을 하는 것은 그릇된 생각을 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대목 앞에서 다비드 웰즈가 그랬던 것처럼 응어리가 치밀어 올라 목이 메고 만다. 베르베르는 이 책을 8권으로 마무리할 예정이다. 그는 이 책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 우리는 자멸할 것인가. 아니면 지속가능할 것인가.



김효은 기자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2월 주제는 ‘익숙한 세상, 다시 보기’입니다.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일상의 변화를 새롭게 성찰하고, 변화하는 세상에 대비하기 위한 지혜를 전해주는 신간 세 권을 골랐습니다. 다가오는 설 연휴, 이 책들과 함께 한 해를 구상해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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