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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서의 종횡고금<1>소신 바탕으로 반대를 포용하라

중앙일보 2014.01.25 00:40 종합 23면 지면보기
혼돈과 갈등의 시대다. 중국 고전에 담겨있는 지혜로 오늘을 비쳐보는 ‘정재서의 종횡고금(縱橫古今)’을 연재한다. 세계질서의 강자로 떠오른 중국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창도 된다. 현재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로 있는 필자는 중국 신화집 『산해경(山海經)』 전문가로 유명하다.


난세에 살아남은 선인들의 지혜

세상을 살아가는 두 가지 방식을 제시하는 대표적인 고전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논어』와 자연의 본질을 우선하는 『도덕경』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중국 역사상 최악의 난세에 이 대조적 입장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삶을 산 두 사람이 있다.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대에 각기 도교와 유교를 대표했던 갈홍(葛洪·283~343)과 안지추(顔之推·531-590)다.



 먼저 갈홍을 보자. 신비주의자 갈홍은 불로장생 비법을 말하고 있는 『포박자(抱朴子)』를 썼다. 그는 가족과 함께 동란에 빠진 중원을 떠나 나부산(羅浮山)에 은거하여 수련을 했고 나중에 신선이 됐다는 전설을 남겼다. 도교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그의 수련법은 자손과 제자들에게 계승돼 중요한 교파를 형성했다.



 다음으로 안지추는 현실주의자다. 그의 『안씨가훈(顔氏家訓)』은 예법·학문·언어 등 처세에 필요한 소양과 지혜를 자손들에게 전하고 있다. 그는 전란 시기에 양(梁)나라에서 북제(北齊)·북주(北周)·수(隋)나라 등에 이르기까지 왕조마다 중용됐다. 그가 남긴 가훈을 잘 지켰는지 당(唐)나라에 들어와 집안이 크게 일어나 대학자 안사고(顔師古), 명필 안진경(顔眞卿) 등 뛰어난 인물을 배출했다.



 단순히 생각하면 두 사람은 각기 도교와 유교를 바탕으로 명철보신(明哲保身)에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행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생각은 피상적임을 알 수 있다.



 갈홍의 『포박자』는 내편·외편으로 구성됐다. 내편에서 ‘족함을 아는 자는 은둔하여 세상에 쓰이지 않는다(知足者, 則能肥遁勿用)’고 갈파하고 있지만 외편에서는 현실에 대한 짙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실제로 갈홍은 유적(流賊)이 고향에 침입했을 때 의병을 일으켜 물리친 적도 있다.



 안지추는 어떠한가. 『안씨가훈』은 ‘학문과 기예를 지니고 있는 자는 어디서든 안주할 수 있다(有學藝者, 觸地而安)’는 처세의 의지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양생(養生)’편과 ‘귀심(歸心)’편에서는 불로장생과 내세에 대한 관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바로 이런 입장이 소중하다. 난세를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비결은 자신의 한 가지 소신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정반대의 다른 것을 수용하는 데 있다. 이런 깨달음은 한 개인을 넘어 한 국가의 삶, 곧 역사에도 적용된다. 조선시대를 돌이켜 보면 전기만 해도 성리학자들이 도교·불교를 넘나들 만큼 회통적인 자세를 지녔다. 그 역동성이 임진왜란 같은 엄청난 전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경직된 주자학으로 인해 탄력을 잃으면서 대응능력을 잃고 구한말의 격랑(激浪)을 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오늘이 어려운 시절임을 느낀다면 두 사람의 대조적인, 그러나 어딘가에서 만나고 있는 삶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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