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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월정사 단기출가 1박2일 동행기

중앙일보 2014.01.25 00:18 종합 14면 지면보기
발우공양 전에 엎드려 절하고 있는 단기출가학교 한 참가자. 발우에 밥·국·반찬을 담아 먹는 걸 발우공양이라 한다. 밥알 한 톨 남기면 안 되고 헹군 물까지 마셔야 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당연한 일이란 없는 거였다.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나면 당연히 공기업에 입사하는 걸로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시험에 번번이 떨어졌다. 행정고시에도 실패했다. 문득 ‘공기업에 입사해서 뭘 하려는 거지’라는 의문이 생겼다. “남들이 좋다면 나도 좋은 줄 알았죠. 남의 생각에 날 맞추느라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몰랐어요.”

1을 버리면 1을 얻고 100을 버리면 100을 얻는다



 그녀가 강원도 평창군 월정사 단기출가 학교에 들어온 이유다. “학벌이나 직업이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생각했죠. 그게 없는 나는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힘들었어요.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살아왔는데, 이번에는 부모님과 친구들을 떠나 진짜 나와 내가 추구할 내 삶의 가치를 찾고 싶어요.”



 출가를 하며 그녀(25)가 받은 새 이름(법명)은 ‘심전(心田)’이다. 49명의 행자(학생) 모두 법명을 부여받았다.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계층과 연령의 남녀노소지만 이곳에선 모두 새로 태어나 0세가 된 친구, 도반(道伴)들이다. 외국계 회사 최고경영자(CEO)부터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중3 여학생까지 다양한 이들이 모였다.



 행자들은 한 달간 출가 승려의 생활을 하며 자신을 돌아본다. 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다. 전화를 사용할 수 없고, 외출·면회·음주·흡연도 안 된다. TV·신문·잡지도 못 본다.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108배로 하루를 시작한다. 예불, 공양(식사), 참선, 염불, 청소, 산행, 강의 등의 하루 일정을 마친 후엔 일기를 쓰고 밤 9시 잠자리에 든다. 남자들은 모두 삭발, 여자들은 원하는 사람만 삭발을 한다.



 밥(공양)을 먹을 땐 밥알 한 톨, 고춧가루 한 조각도 남기면 안 된다. 밥그릇(발우)을 물로 헹궈서 그 물까지 모두 마셔야 한다. 남보다 빨리 먹거나 늦게 먹어도 안 된다. 세탁도, 세면도 정해진 시간에 공동으로 하며, 세탁기는 사용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잘못도 함께 참회해야 한다. 참회는 108배일 때도 있고, 500배나 700배일 때도 있다.





"내 돈 내고 대체 왜 이 고생” 울컥하기도



맨 위부터 도량에 걸려 있는 두 단어 묵언(默言)과 하심(下心), 발우에 마실 물을 받고 있는 한 행자, 한 줄로 서서 전나무 숲을 산책하는 행자들의 뒷모습, 9층 석탑 형태로 배열된 금강경 5900여자를 쓰고 있는 모습. 한 글자 쓸 때마다 한 번씩 절을 해야 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세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절을 한 적이 있었어요. 너무 힘들고 지치고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건가’ 짜증이 났죠. 그런데 스님이 웃으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옆자리 도반이 환하게 웃는 거예요. 그때 깨달았죠. 힘들어서 짜증이 난 게 아니란 걸요. 인식을 바꾸면 마음도 바뀐다는 걸 알았죠.”



 묵언(默言)과 하심(下心)은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수행 방법이다. 스님의 질문에 답할 때와 몸이 아플 때를 제외하곤 말을 해선 안 된다. 기자가 월정사를 찾은 18일 포행(布行·산책) 중이던 한 행자는 “묵언을 통해 말이란 것이 얼마나 불필요한 것인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현직 교사로 올해 교감 승진을 앞두고 있다. “다른 이를 위해 조언을 한다지만, 그 조언이라는 게 오히려 바른 길을 찾는 걸 방해하더군요. 다시 세상에 나가면 꼭 필요한 말만 하려고 합니다.”



 단기 출가 학교의 실무를 총괄하는 법철 스님은 묵언이란 ‘마음속에 시시비비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하심은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뜻이다. 지금까지의 몸과 마음이 익숙했던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 타인을 이런저런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뭔가를 욕심내거나 시기·질투 등의 감정을 내지 않는 것이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이를 ‘마음의 빈자리’를 찾는 과정이라고 했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분노, 욕심, 질투 같은 감정을 밤하늘의 별이라고 해봅시다. 그 별들이 반짝이는 걸 무심히 바라보는 그 자리가 바로 마음의 빈자리입니다. 밤하늘엔 수많은 별들이 있지만 모두 아름답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욕망과 분노 같은 감정들도 밤하늘의 별들과 같습니다. 그런 감정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리고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빈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때론 어두운 세상을 고요히 비추는 달에 비유하기도 하죠. 시비와 판단을 벗어난 ‘마음의 달’을 띄우는 것이 수행의 과정입니다.”



 쉽지 않은 육체적 고행은 지금까지 당연시해온 몸의 습관을 버리는 과정이다.



 선각인(禪覺印·53, 이하 법명)은 “내 맘대로 먹고 자고 화장실 가고 하는 일상의 그 모든 일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커피 한잔, 과일 한 조각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고, 다리 한번 제대로 펴고 있을 수 없는 생활을 통해 자신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던 모든 것들에 감사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곳에 오기 전 그녀는 사랑을 잃고, 돈도 없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남편과 함께 호주로 이민 갔던 그녀는 풍족한 삶을 누렸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결국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할 때를 기다렸다가 이혼했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 옷 가게를 하며 아이들 학비를 댔다. 하지만 경기가 나빠지면서 가게 문을 닫아야 했고, 수중엔 한 푼도 남지 않았다. 헤어졌던 남편과 잠시 재결합했지만 결국 더 큰 마음의 상처를 받고 다시 헤어졌다. 그녀는 이곳에서 앞으로의 삶을 걱정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강의 시간에 배운 경허 스님의 말 중 ‘지혜로운 자는 과거를 아쉬워하지 않으니 아름답고, 현재를 붙잡으려 하지 않으니 자유롭고, 미래는 두려워하지 않으니 새롭다’라는 구절이 제 마음에 들어왔어요.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을 겁니다. 제게 닥치는 모든 일들을 새롭게 느끼며 살려고 합니다.”



 태고(太古·60)는 지난해 말 33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한 후 이곳을 찾았다. 남들은 하와이나 동남아로 퇴직 여행을 간다고 하지만 그는 ‘나’를 찾는 게 더 급하다고 생각했다. 삭발을 할 땐 기분이 묘했다. 머리털 한 올 없이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다른 행자들이 ‘어르신’이라고 부르기에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행자님이라 불러달라’고 말했다. 덕분에 나이 어린 도반들과도 친구처럼 지낸다.



 “제 인생을 돌이켜보니 참 잘못 살았구나 싶습니다. 회사 일에 바빠서 주변을 돌보지 못했어요.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고,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동료나 후배들에게도 많은 상처를 준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제 행동을 바꿀 겁니다. 밝게 살 거예요. 내가 밝고 행복해야 주변 사람들도 행복하게 느낄 테니까요.”



 다음 날인 19일 새벽 3시40분. 행자들이 머무르는 문수선원에서 108배가 시작됐다.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죄를 참회하며 절합니다. 나의 몸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살아온 죄를 참회하며 절합니다. 배울 수 있게 해준 모든 인연들을 잊고 살아온 죄를 참회하며 절합니다. 시기심으로 인해 악연이 된 인연들에게 참회하며 절합니다~.”



 법당에 울려 퍼지는 108가지 참회의 말에 맞춰 행자들은 108번의 절을 했다. 이어 예불을 올리기 위해 법당으로 줄지어 갔다. 새벽 하늘, 달은 말 없이 이동하는 행자들을 고요히 비추고 있었다. 월정사의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갑작스러운 한파에 수은주는 영하 17도를 가리켰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마음만은 행복”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행자들은 염불을 하며 불상 아래서 절했다. 법당 안은 고요하고 경건했다.



 6시40분부터는 공양이었다. 남녀 두 줄로 앉은 행자들은 자신들의 발우를 앞에 놓고 먹을 만큼의 밥과 반찬을 덜어 조용히 밥을 먹었다. 강의 시간에는 동국대 정각원의 마가 스님이 ‘자기행복창조’에 대해 강의했다. 저녁엔 한자리에 모여 그림을 그렸다. 5~6명씩 조를 짜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조각 그림을 색칠했다. 조각 그림들을 모으니 커다란 부처 형상이 됐다.



 월정사 단기출가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은 2004년. 올해로 10년째 봄 여름 가을 겨울 연 네 차례씩 단기출가 학교가 열렸다. 10년 전 단기출가 프로그램은 실제 출가 승려들의 교육과 동일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참여가 늘면서 일부 과정을 요즘 시대에 맞게 간소화하고 있는 중이다. 가령 예전에는 하루 세 끼 전부를 발우에 담아 먹는 발우 공양으로 했지만 이번에는 아침과 점심만 발우 공양을 하고 저녁엔 식당에서 먹도록 하고 있다. 여자 수행자들의 경우 스킨과 로션뿐 아니라 선크림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프로그램의 내용도 현대화되고 있다. 법철 스님은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 다양한 기법을 프로그램에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시작된 39기 단기출가 프로그램은 오는 28일 끝난다. 삭발과 삼보일배를 시작으로 초반에는 절하는 법, 걷는 법 등 출가자가 지켜야 할 예절을 몸에 익힌다. 제대로 못하면 불호령이 떨어지고 단체 기합을 받는다. 행자들 스스로 “특공대가 무색하다”고 말하는 그 수행 중 일부는 탈락한다. 이 단기출가 과정도 처음엔 49명으로 시작했지만 8명이 탈락해 현재 41명 남았다. 건강에 이상이 생긴 행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있다.



 방송에 소개된 단기출가 학교가 멋있어 보여서 참가했다는 보월(普月·44·사업)은 ‘초반엔 내가 내 돈 내고 와서 왜 이런 대접을 받고 있는 건가’라며 울컥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몸에 좋은 채식 먹고, 좋은 말씀 들으러 오는 힐링 캠프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육체적으로 힘들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견디기 쉽지 않아요.”



 법철 스님은 “3000배를 한다는 건 3000번 마음의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 않던 일들을 하고 따르지 않던 규율을 따르는 데서 갈등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프로그램 시작 후 열흘이나 보름이 지나면 고된 생활에 지친 행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가끔은 폭발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얻어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말기암 환자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법화(法華·46)는 “고통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고 했다. 그녀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은 언젠가 승려가 되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꿈을 이룬 그는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마음만은 행복하다”고 했다.



 그녀는 중학교 때 만난 ‘군인 아저씨’에게 반해 15년 동안 시장에서 막일을 하며 뒷바라지했다. 그녀의 희생으로 가난한 검정고시생은 한의사가 됐지만 그는 그녀를 떠나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두 딸을 낳았다. ‘군인 아저씨’와는 결국 이혼했다. 한때 100억원대 재산을 모으며 사업가로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기를 당해 모두 날린 후 다시 빈손이 됐다. 지금은 호스피스와 자원봉사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모두 용서할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그의 행복을 빌어요. 오히려 그와 헤어진 덕분에 호스피스와 자원봉사 활동으로 더 큰 행복을 얻게 됐어요.”



 행자들 가운데는 천주교 교인도 있다. 대입 실패 후 생활습관을 바로잡고 싶어서 왔다는 학운(鶴雲·19)은 “불교는 내가 나 자신을 다스리면서 내가 원하는 답을 찾아가는 종교로 신을 믿는 천주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외모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머리를 하고 있는 이곳에서 지내며 그는 내면의 개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수행 가운데 절하는 걸 가장 좋아한다. 가만히 있으면 잡생각이 들면서 나에 대해 생각하기 어려워지는데, 절을 하면 나를 더 잘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이다. “육체적 고행이 정신을 살피는 등불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3000배 하는 건 3000번 갈등 극복하는 것



 대학 졸업반 묘훈(妙焄·26)은 “친구들은 지금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울 때지, 단기출가 같은 거 할 때가 아니라고 만류했지만 나는 친구들에게 꼭 한 번 단기 참선을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웠다”는 그는 “남이 아닌 내가 중요하다. 후회 없는 삶을 즐겁게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월정사(月精寺)는 ‘달을 품은 절’이란 뜻도 갖고 있다. 실제로 월정사 앞마당엔 유난히 선명하고 밝은 달이 뜬다. 고도(650m)가 높고 습도가 낮아 하늘이 유난히 청명한 곳이다. 오대산 동쪽 만월산의 기운을 받아 달의 기운이 충만하다고 한다. 월정사가 건립된 것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월정사는 10년 전 단기출가 학교를 국내 최초로 도입했으며, 지난해 여성 단기출가 및 황혼기 단기출가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월정사 회주(會主·법회를 주관하는 법사) 현해 스님은 “세상을 사는 목적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함인 것처럼 세간을 떠나 출가하는 목적도 역시 행복을 찾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방법은 다르다. 한쪽은 욕망의 극대화를 지향하지만 다른 한쪽은 극소화를 지향한다. 나의 내면을 응시하려는, 진정한 삶에 대한 열망이 출가를 결심하게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월정사=박혜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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