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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에 가격 없다" 입회비 수억, 6700만원짜리 와인 마시기도

중앙일보 2014.01.25 00:14 종합 16면 지면보기
‘천금으로 집을 사고, 만금으로 이웃을 산다(千金買宅 萬金買隣).’ 남송(南宋)의 계아(季雅)는 좋은 이웃을 얻기 위해 집값의 10배를 지불했다. 예부터 중국은 인맥을 중시했다. 사람을 평가할 때 ‘취안쯔(圈子·서클)’부터 살핀다. 중국에서 인맥은 생활이요 사업이자, 비즈니스 기회이고, 가치관이며 지위다. 중국 상류층은 프라이비트 클럽(會所)을 좋아한다. 실력자와 ‘관시(關係·관계)’를 맺을 수 있어서다.


부패와의 전쟁 직격탄 맞은 중국 '사교클럽'
실력자와 관계 맺으려 클럽 활동, "추호도 새지 않는다" 비밀 보장
정상급 클럽 연회비 17억원 넘어

 유럽에 기원을 둔 사교클럽은 홍콩을 거쳐 1990년대부터 대륙에 뿌리내렸다. 하지만 최근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부패와의 전쟁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마카오와 인접한 주하이(珠海)시의 해안도로 인근 산중턱. 이웃들도 잘 모르는 고급 클럽이 숨어 있다. 탐사보도로 이름난 ‘남방도시보’가 지난여름 이곳을 취재했다. 회원카드가 없으면 입장할 수 없다. 정문을 통과해도 이중, 삼중 보안검사가 기다린다. 건물은 산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다.



 엘리베이터로 한 층을 내려가야 시야가 트인 식당이 나온다. 인테리어는 현대 중국 스타일이다. 한쪽 벽은 전면이 통유리다. 눈앞에 펼쳐진 산과 바다, 녹음이 덮인 정원은 한 폭의 풍경화 같다. 클럽 안은 조용했다. 오후 3시임에도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술 기운과 담배 향도 은은하게 퍼졌다.



 남방도시보 기자가 안내 받은 방은 천장에 중국 등을 계단식으로 걸어 놓았다. 종업원이 건넨 메뉴에는 1인분에 598위안(11만원)인 샥스핀, 2980위안(53만원)인 동충하초부레탕 등이 있다. 탕·생선회·전복 등 요리와 와인까지 주문하면 룸 최소 주문액인 1만 위안(176만원)은 거뜬히 넘길 수 있는 가격대다.



 메뉴에 없는 특별요리도 있다. 한 조각에 198위안(3만5000원)인 프랑스식 거위간, 마리당 2680위안(47만원)인 일본산 고급 전복을 추천했다. 클럽 회원인 한 와인 수입상은 이곳에 올 때마다 평균 3만 위안(530만원)을 결제한다.



베이징 도심의 전통가옥인 쓰허위안(위).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고급 클럽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황제의 요리로 알려진 ‘만한전석’ 전문 식당인 베이징 팡산판좡(가운데). 호화 음식점단속 여파로 최근 영업을 중단했다. 상하이 와이탄의 신흥 클럽 M1NT의 내부(아래). 창밖으로 푸둥의 마천루가 보인다. [사진 이미지차이나]
 하늘까지 치솟은 가격을 중국에서는 톈자(天價)라고 부른다. 미친 가격은 인맥의 힘이 만든다. “소비하는 돈에는 값이 있지만 그곳에서 얻는 인맥에는 가격이 없다”는 게 고급 클럽 회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그들은 “술상에서 만난 관리는 관료 티를 덜 낸다. 식사는 형식일 뿐 감정 투자와 관시 유지가 클럽의 정수”라고 말한다.



 광저우(廣州)의 최고급 아파트인 카이쉬안후이(凱旋會) 1층에는 ‘추웨후이·카이성(楚<7CA4>匯·凱盛)’이란 클럽식 바(bar)가 있다. 프랑스산 최고급 와인을 동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광고하는 곳이다. 대표 상품은 로마네콩티. 한 병에 38만 위안(6700만원)이다. 회원제 클럽인 이곳의 회비는 30만 위안(5291만원)이다. 회원에겐 개인별 소믈리에 서비스가 제공된다.



 이들 사교클럽 회원이 천정부지의 회비를 지불하는 이유는 비밀에 있다. 비밀 보장은 추웨후이 클럽의 모토다. 지난해 시작된 반부패 전쟁의 선봉엔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있다. 중앙기율위는 지난해 현대판 암행어사인 ‘중앙순시조(中央巡視組) 성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기에서 “회비 30만 위안의 클럽에서 간부가 베푸는 만찬은 ‘추호도 비밀이 새지 않는다’”고 썼다. 사정 당국이 오히려 고급 클럽의 비밀 보장을 홍보해준 셈이다.



권력의 요람 베이징이 클럽의 본산



 중국에서 클럽의 본산은 권력의 요람 베이징이다. 황제의 만찬으로 불리는 만한전석(滿漢全席)은 베이하이(北海) 공원의 팡산판좡(倣膳飯莊)이 유명하다. 방마다 용 조각과 봉황 그림, 황금과 옥 장식이 가득하다. “1인당 평균 800위안(14만원)부터 2000위안(35만원), 10인분 식탁에 2만~3만 위안(353만~530만원)이다.” 매니저가 말하는 만한전석 가격이다.



  주하이·광저우처럼 베이징 역시 고급 클럽은 회원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베이징 보통 클럽의 1년 회비는 수만 위안부터 수십만 위안까지 다양하다. 정상급 클럽은 1000만 위안(17억6350만원)인 곳도 있다고 업계에선 말한다. 베이징 제3순환로 동쪽에 자리 잡은 고급 비밀 클럽을 신화통신 기자가 잠입 취재했다. “일행 중 영도 간부가 있을 때는 관용차 대신 개인차를 이용하는 게 좋다. 지하 2층까지 차를 탄 채 내려올 수 있다.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다는 게 우리 클럽의 자랑이다.” 마케팅 매니저의 설명이었다.



 베이징의 클럽은 세계 럭셔리 브랜드의 마케팅 전쟁터이기도 하다. “세계 정상급 브랜드가 중국에 진출할 때마다 협력을 타진해 온다. 회원이 모두 잠재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한 클럽의 마케팅이사 말이다. 그는 “중국 비즈니스계의 VIP들은 기업의 발전, 정부와 교류, 2세 교육에 관심이 높다”고 말한다. 클럽은 그래서 자녀를 위한 다양한 클래스와 교류 캠프도 마련한다.



 상하이 클럽은 다채롭다. 와이탄(外灘) 27호 건물에 자리 잡은 루스벨트 클럽은 역사와 전통의 클럽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프랭클린 루스벨트 두 미국 대통령을 배출한 루스벨트 가문이 운영한다. “옛 친구를 만나는 곳이자 새 친구를 사귀는 곳”이 운영 취지다. 클래식 양식의 9층 건물 중 1, 2, 8층은 개방됐다. 3층이 회원 전용이다. 2층 바에는 2700여 브랜드 3만여 병의 술을 판매한다. 루스벨트 클럽은 입회 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현 회원은 60여 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진다.



 푸둥(浦東) 중국은행 빌딩 50층에 자리 잡은 상하이 뱅커스(銀行家)클럽은 금융정보의 집산지다. 홍콩 뱅커스 클럽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개인 입회비가 180만 위안(3억2000만원)에 이른다. 종업원을 대상으로 한 보안교육은 철저하다. “클럽에 이야기는 없다.” 종업원 대상 교육의 철칙이다. 회원들이 클럽에서 나눈 이야기는 절대 밖으로 새지 않는다는 뜻이다.



 회원을 클럽 주주로 참여시킨 M1NT는 신흥부호 2세들의 사교장이다. 최고급 호텔의 컨시어지 서비스를 통하면 외국인도 입장이 가능하다. ‘최고의 은둔은 도심에서(大隱于市)’라는 성어는 상하이 클럽에 꼭 들어맞는 말이다.



 중국 공산당은 이달 중순 부패 척결을 이유로 유명 관광지와 문화유적지에서 영업 중이던 클럽을 일제히 폐쇄했다. 베이징 베이하이 공원의 이스류위산탕(乙十六御膳堂)·상린위안(上林苑) 등이 철퇴를 맞았다. 항저우(杭州)의 명소 시후(西湖) 호반의 호화 클럽들도 된서리를 맞았다. 시후 인근 푸른 산과 호수가 만나는 풍수길지에 숨어 있는 강남회(江南會)는 항저우의 역대 선현들을 제사 지내던 선현당(先賢堂) 지척에 자리 잡고 있다. 처신이 남다른 강남회는 지난해 9월부터 내부 수리에 들어갔다. 고급 클럽 분위기를 벗고 소박한 기업인 교류센터로 변신 중이란 소식이다.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클럽도 있다. 저장(浙江)성 출신 그룹 총수들의 사교클럽인 강남회가 대표적이다. 사치와 부패의 장을 지양한다. 이 시대 중국의 상도(商道)를 세우겠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강남회는 2006년 중국 최대 인터넷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를 세운 마윈(馬雲)이 건립했다. 강남회의 정신은 청(淸) 말 관모를 쓴 홍정상인(紅頂商人)이었던 호설암(胡雪巖)의 부활이다. 19세기 장사치의 영광과 꿈을 계승하는 것이 사명이다. 호설암을 제외하고 강남에서 상업을 하나의 ‘도(道)’로 승화시킨 인물은 없었다.



 마윈이 일곱 명의 저장 출신 거상을 모았다. 푸싱그룹 궈광창(郭廣昌), 인타이그룹 선궈쥔(沈國軍), 완샹그룹 루웨이딩(魯偉鼎), 뤼청그룹 쑹웨이핑(宋衛平), 넷이즈 딩레이(丁磊), 성다그룹 천톈차오(陳天橋), 칭춘바오그룹 펑건성(馮根生)이 모였다. “저장 상인의 상도와 긍지를 후손에게 물려줍시다!” 마윈의 제안에 총수들은 찬동했다.



 강남회 일반회원의 입회비는 20만 위안(3600만원). 가입 첫해는 심사기다. 심사를 통과하면 종신회원이 된다. 강남회는 서도(書道), 다도(茶道), 금도(琴道·거문고), 화도(花道·꽃꽂이), 향도(香道)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강남회가 숭상하는 수행의 다섯 가지 도다. 중국 인문정신의 정수다.



단속 나서자 소박한 교류센터로 변신



 저장 출신 상인집단을 일컫는 저장상방(浙江商幇)은 이익과 의로움을 모두 중시했다. 비즈니스와 형제애는 별개로 여겼지만 형제에게 일이 생기면 팔을 걷어붙였다. 강남회는 이 전통을 이었다. 자신의 위급함을 동료에게 알려 도움을 청하는 강남령(江南令)이 그것이다. 강남령이 발동되면 회원들은 대동단결해 어려움에 처한 동료를 돕는다. 지난해 중국 10대 부동산 개발회사인 강남회 창립멤버 쑹웨이핑의 뤼청그룹이 자금경색에 빠졌다. 강남령이 발동됐다. 마윈은 알리바바 그룹 직원 내부 메일을 통해 뤼청의 부동산 구매를 독려했다. 뤼청 직원 내부가격을 적용해 8% 할인혜택을 줬다.



 그렇다고 강남회가 깨끗한 조직만은 아니다. 알리바바 그룹을 지배한다는 신비의 주주 29명이 강남회 클럽하우스에서 정기적으로 회동한다는 소문이다. 29명 중에는 정계 거물이 포함돼 있다는 보도가 중화권 매체를 통해 흘러나오기도 했다.



 최근 폐쇄된 클럽은 빙산의 일각이다. 중국의 클럽은 권력과 금전이 만나는 아지트다. 일종의 반부패 무풍지대다. 클럽 철폐는 시진핑 주석에게 시급한 과제다. 그렇다고 엘리트의 사교문화 자체를 뿌리 뽑을 수도 없다. 게다가 중국에서 중요한 비즈니스는 모두 식탁에서 결정된다. 중국 특색의 판쥐(飯局·연회) 문화다. 시진핑·왕치산 콤비가 펼치고 있는 반부패 전쟁의 진짜 상대다.



신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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