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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해쳐놓고 "난 근사해" 쾌감 … 내 주위에도 혹시?

중앙일보 2014.01.25 00:08 종합 19면 지면보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냉혈한 이재경 역으로 나오는 배우 신성록. 그는 극중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사진 SBS]


“제가 좋아하는 것 아시죠? 건강 잘 챙기세요.” 들으면 따뜻함이 느껴지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상대방에 대한 살해를 암시하는 소시오패스(sociopath·사회병질자)의 말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소시오패스역 이재경이 여주인공 천송이한테 던진 말이다. 이재경은 이 말을 남긴 사람을 모두 살해한다.

공감 능력 없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정신의학선 사이코패스와 동일, "살인 못 끊어" 연쇄 살인범이 대표적
리더십·경제력 갖춘 고위직도 있어 …
감성에너지 고갈시키는 피로사회, 누구나 일시적 인격장애 가능성



 드라마 인기 덕에 소시오패스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똑같이 반사회적 성향을 일컫는 사이코패스(psychopath·정신병질자)나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혼돈이 생긴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중에서도 심한 경우를 사이코패스라 부르기도 하고, 선천적인 경우를 사이코패스, 후천적으로 환경에 의해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경우를 소시오패스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정신의학에서는 두 단어를 구분해서 쓰지 않고 통일해서 반사회적 인격장애란 진단명을 사용한다.



 성격은 나와 내 주변에 일정하게 반응하는 관계의 패턴이다. 성격장애는 강한 관계 맺기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는 건강한 관계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반사회적 행동을 통해 쾌감을 얻고 ‘난 근사해’란 느낌을 가진다. 내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과 타인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핵심 정신병리는 공감능력의 결여다. 공감은 소통의 기술이 아닌 생물학적인 상호작용이다. 공감은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실제로 타인이 고통당하는 것을 볼 때 내 뇌 안의 통증센터에 스위치가 켜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진짜로 아픈 것이다. 공감능력도 태어날 때부터 사람마다 차이가 많이 난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이 공감능력이 결여된 것이다. 타인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좋지 않게 이용하고 거짓말하고 폭력적 행동으로 신체적 손상을 입혀도 아프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일반인이 보기엔 끔찍한 범죄를 태연하게 저지를 수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관심이나 걱정이 전혀 없으며, 사기를 일삼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일부는 달변의 매력을 갖추어 다른 사람을 매혹하고 착취하기도 하고, 타인의 고통에서 가학적인 즐거움을 얻는다. 마약, 도박, 알코올 중독 등 자신을 망치는 위험 행동도 쉽게 저지른다.



 발병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모르나 유전적인 요소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의 기능적 문제 탓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감정 반응과 연관된 변연계-전전두엽 회로 기능의 이상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읽을 수 없고 충동적으로 위험한 자극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이어진다는 거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학대·착취 등의 환경적인 요인도 원인으로 꼽힌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라 하면 연쇄 살인범 같은 범죄자가 먼저 떠오른다. 실제 연쇄 살인범의 심리에는 죄책감이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13명을 연쇄 살인했던 정남규는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끊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의 쾌감을 위해선 사람이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닌, 자기 쾌락을 취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정남규는 사형이 확정된 뒤 수감 중 자살했다. 죄책감으로 목숨을 끊었다고 볼 수는 없다. 스스로를 살해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연쇄 살인범만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는 아니다. 반사회적 성향을 가진 사람 중 리더십과 능력을 갖춘 듯한 인물도 있고 실제 사회경제적 성취를 이룬 이도 있다. 공감능력이 좋은 사람이 소통능력도 좋고 성공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가 않다. 남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세세하게 느껴지니 인생사가 더 힘든 경우도 많다. 공감능력이 좋은 최고경영자(CEO)라면 직원을 해고하려고 할 때 가슴 아파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 모습이 자본주의 눈에는 사업적으로 우유부단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공감능력이 결여된 반사회적 성향의 CEO는 어제까지 ‘우리는 한 형제다. 회사를 위해 희생하고 달려가자’고 한 직원에게 싸하게 웃으며 해직 통보를 할 수 있다. 마음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주식 브로커 버나드 매도프는 다단계 금융사기 시스템을 만들어서 타인에게 650억 달러의 손실을 입혔다. 피해자가 무려 72만 명이었다. 미 연방수사국 범죄심리분석관은 “매도프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파괴적 특징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매도프 역시 금융사기극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성공한 경영자처럼 보였다.



 사이코패스는 치료하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꾸준한 심리치료와 약물복용을 통해 반사회적인 성향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은 결코 병원에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이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고 스스로를 환자로 여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를 피로사회라고 한다. 뇌가 피로하다는 얘기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달리다 보니 따뜻한 감성에너지가 과도하게 소진되어 버린 것이다. 웃기 싫어도 웃어야 하는 감성 노동 탓이다. 따뜻한 사람도 소진 증후군이 찾아오면 일시적인 소시오패스 경향을 보일 수 있다. 소진 증후군은 감성에너지가 바닥나는 것이기에 공감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된다. 공감은 외로움이란 본능에서 시작된다. 외롭지 않았다면 사람은 혼자 지냈을 것이고 지금의 사회 문화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시오패스도 사실은 변질된 외로움의 합병증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남에게 해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다.



 뇌 과학 연구를 보면 외로운 상황일수록 남을 배려할 때 느끼는 쾌감(helper’s high)이 큰 것으로 돼 있다. 우리 뇌는 이기적인 방법으로 성취를 이룰 때보다 남을 배려하고 함께 기쁨을 나눌 때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됐다. 윤리적인 차원을 넘어 뇌 과학 차원에서 반(反)소시오패스적인 삶을 사는 것이 원래 내 뇌에 내재돼 있는 행복 시스템을 가장 활성화하는 방법인 셈이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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