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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 36% 상민 출신, 조선은 역동·개방적 사회

중앙일보 2014.01.23 00:23 종합 23면 지면보기
“조선 왕조 정치 이념의 핵심은 민본(民本)사상이었습니다. 백성들을 중앙 정치무대로 끌어들이려 했는데 과거제도는 그 통로였습니다. 신분이 낮은 사람도 얼마든지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어요.”


『과거, 출세의 사다리』 4권 완간 한영우 교수

 한영우(76) 서울대 명예교수가 200자 원고지 1만2000쪽을 4권으로 묶은 역작 『과거, 출세의 사다리』(지식산업사)를 최근 완간했다. 조선 왕조가 통념과 달리 관직이 세습되는 양반 중심의 폐쇄 사회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담았다. 서자·중인·평민 등이 신분 상승의 사다리였던 과거 제도를 통해 관직에 진출함으로써 조선사회의 역동성과 개방성이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22일 “조선 왕조의 500년 이상 장수 비밀을 캐다 보니 이 책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양반·상민의 구별이 철저했던 조선시대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한 교수의 주장은 낯설다. 하지만 그는 “실증적인 자료”라며 신분 낮은 급제자 비율을 제시한다. 조선시대 전체 문과 급제자 1만4615명 중 5221명, 즉 35.7%가 낮은 신분 출신이었다는 내용이다. 한 교수는 족보를 활용했다. 문과 급제자 명단을 수록한 『방목(榜目)』만으로는 출신성분을 명확히 확인할 수 없어서다. 6권짜리 『청구씨보(靑邱氏譜)』, 3권짜리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 등 방대한 족보와 대조작업을 벌였다. 이 작업에만 5년이 걸렸다.



 한 교수는 “조선시대 신분제도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40년 전”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책이 40년 관심의 결과물이라는 얘기다. 또 “무거운 족보 책을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씩 서가에서 꺼내보다 보니 오른팔이 마비될 정도였다”고 했다.



 한 교수는 전주이씨·안동권씨 등 199개 성관(姓貫·성씨와 본관)에서 급제자의 90%가 나왔다는 점을 근거로 조선이 불평등 사회였다고 보는 기존 학설도 반박한다. 전주이씨 등의 숫자가 많아 급제자가 많이 나온 것 뿐이지 성씨별 인구 수를 감안하면 공평하다는 얘기다.



 한 교수는 “조선을 개방사회로 볼 것이냐 폐쇄사회로 볼 것이냐는 전혀 다른 얘기”라며 “조선에 대한 시각 자체가 달라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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