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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링, 표절과는 달라 … 국내 힙합 뮤지션도 법적 기준 만들어야

중앙일보 2014.01.23 00:20 종합 20면 지면보기
랩퍼 빈지노
랩퍼 빈지노(본명 임성빈·27)의 노래 ‘달리, 반, 피카소’가 논란이다. 처음에는 표절 의혹을 받았지만 표절이 아닌 샘플링으로 밝혀졌고, 이후 소속사가 샘플 클리어런스(허가)를 받지 않았음을 인정하면서 현재 법적으론 무단 샘플링 곡이 됐다. 그 과정에서 표절과 샘플링이라는 개념이 서로 뒤엉켜 비생산적인 논란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문화진단] 랩퍼 빈지노 논란을 보며

 처음 빈지노를 표절 도마에 오르게 한 곡은 독일의 랩퍼 피바 엠씨(fivaMC)의 ‘주트제언(Sud sehen)’이었다. 그러나 두 곡 모두 쳇 베이커의 ‘어론 투게더’를 샘플링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의 방점은 표절에서 샘플링으로 이동했다. 이 경우는 지난번 프로듀서 프라이머리(본명 최동훈·31)의 표절 논란과는 다르다. 표절은 흉내나 모방이 전제되어야 성립하는 개념으로 당시는 순수 창작곡 간 ‘유사성’ 논란이었다.



 샘플링은 ‘기존의 음악 일부분을 빌려와 자기 음악의 재료로 삼는 행위’를 뜻한다. 힙합은 샘플링 작법을 고유의 근간으로 삼는 장르다. 악기를 배울 형편이 안됐던 미국 흑인들이 궁여지책으로 레코드 플레이어를 음악 창작에 활용하면서 샘플링의 역사는 시작됐다. 레코드의 특정 부분을 반복해 틀며 그 위에 랩을 얹은 것이다.



 초창기엔 어떤 응용이나 재창조 없이 기존 레코드의 특정 부분을 그대로 따와 반복해 트는 행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많은 디제이가 자신의 철학을 녹이고 고도의 기술을 입히며 예술로 거듭났다. 샘플링은 순수 창작과 비교열위에 있지 않다. 원곡을 기가 막히게 재창조하기도 하고 심지어 어느 부분을 샘플링했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창작이 근본적으로 다다를 수 없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달리, 반, 피카소’는 좋은 샘플링 음악이다. 원곡에서는 그냥 흘러 지나가는 도입부의 짧은 부분을 영리하게 잡아내 속도와 순서를 바꿔 반복시켰고, 랩이 나오는 부분에는 특유의 이펙트를 가미해 원곡과의 차별성을 부여했다. 원곡에서는 지나가버리는 부분이 샘플링을 통해 빈지노의 노래에서는 핵심으로 기능 하며 새 생명을 얻었다.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빈지노와 피바 엠씨의 노래에 관해 해야했던 일은 샘플링의 수준에 대한 갑론을박이지 샘플링을 표절로 오해하는 일은 아니었다.



 물론 무단 샘플링은 문제다. 원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비용도 지불하지 않았으므로 현행법상 문제가 된다. 하지만 샘플링을 하나의 온전한 예술이자 창작기법으로 존중한다면 표절과 등식으로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한국의 힙합 뮤지션들도 더 이상 샘플 클리어런스에 대해 쉬쉬할 때는 지났다. 미국의 힙합 뮤지션들도 샘플링과 관련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90년대 초반 길버트 오 설리반이 자신의 노래를 무단 샘플링한 랩퍼 비즈 마키를 고소해 승소한 사건은 미국 힙합의 샘플링이 본격적으로 법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된 분기점이었다. 한국도 샘플 클리어런스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관련 기준과 합의를 만들어낼 시기가 왔음은 자명하다. 특히 대중적으로 성공한 힙합 뮤지션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법적 문제로 샘플링의 예술성마저 부당하게 폄하되는 일이 더 이상은 없도록 말이다.



김봉현 (대중음악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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