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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집 아들 실제 모델? 난 아니다"

중앙일보 2014.01.23 00:16 종합 16면 지면보기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부림사건 당사자인 박욱영(57) 구의원, 송병곤(56) 사무장, 이진걸(55) 노무현재단 부산지역 공동대표(왼쪽부터)가 22일 부산시 거제동 법무법인 부산 사무실에서 옛 얘기를 나누고 있다. 법무법인 부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일했던 곳이다. [송봉근 기자]


개봉하기를 고대하다 첫날 달려갔다. 50대 중반 장년의 남자가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 반쯤은 억울했던 생각에, 나머지 반쯤은 자신들을 변호해 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각에서였다고 했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변호인’의 소재인 ‘부림사건’ 당사자 송병곤(56) 법무법인 부산 사무장 얘기다.

영화 '변호인' 부림사건 당사자 3명
"개봉 첫날 달려가 영화 보며 울어"
"영화 속 고문장면 보며 힘들었다"



 송 사무장을 비롯한 부림사건 당사자 22명 중 11명은 지난 21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를 만났다. 고호석(58·부산 거성중 교사)씨가 “우리 얘기를 갖고 만든 영화를 1000만 명이 봤다는데, 변호했던 노 전 대통령께 인사드리러 가자”고 제안해 묘소에 모였다.



 묘소 앞에 줄 지을 때는 “형량 순서대로 서자”는 농담이 오갔다. 묘소 앞에서 고씨는 “저희에겐 대통령이기보다 변호사시다. 함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고 말했다.



 이날 참배한 11명 중 송 사무장과 이진걸(55) 노무현재단 부산지역위원회 공동대표, 박욱영(57) 부산 해운대구 의원은 22일 송 사무장이 일하는 법무법인 부산에 다시 모여 옛 얘기를 나눴다. 법무법인 부산은 노 전 대통령이 변호사로 소속돼 있던 곳이기도 하다. 이들은 “‘빨갱이’로 살았던 한을 풀어준 영화감독과 배우들이 정말 고맙다”며 “기회가 되면 만나 보답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송 사무장은 부산대 법대를 졸업하고 군 입대를 기다리면서 노동 현장을 경험하고자 공장에 다니다 연행됐다. 그는 “대학 선후배끼리 독서모임을 했는데, 경찰에 가자마자 받은 첫 질문은 ‘평양에 갔다 왔지’였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영화 속 국밥집 아들인 ‘진우’의 실제 모델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송 사무장은 “부림사건으로 재판을 받은 22명 중 하나일 뿐 노 전 대통령이 외상으로 밥을 사 먹었던 국밥집 아들은 아니다”고 밝혔다.



 이진걸 대표는 영화가 개봉하고 약 일주일 뒤 부모와 함께 봤다고 했다. 집에서 아들이 잡혀 가는 것을 지켜봤던 부모였다. 경찰은 이 대표의 부모에게 “대질할 게 있어 데려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때 이 대표는 23세로 부산대 기계설계학과 학생이었다. 그는 “생각하기도 싫은 고문의 기억이 떠올라 영화를 보기가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16명의 변호인단이 우리를 변호했는데, 노 전 대통령이 검사와 충돌하면서 제일 격정적으로 변론했다”고 당시를 되돌아봤다.



 박욱영 의원은 부산공전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부산 사상공단에서 야학을 하다 연행됐다. 그는 “영화에는 부림사건 당사자들이 읽은 책 중에 운동권 서적이 포함된 것으로 나오는데, 사실 책이 없어 읽지 못했다”고 했다. “경찰 조사를 받은 뒤 검사 앞에 가서는 한마디도 못했습니다. 딴소리하면 다시 대공분실로 와서 조사받아야 한다는 경찰 엄포 때문에요. 고문을 또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전부 시인했습니다.”



 이들은 “당시 시대 상황을 감안하면 검찰·경찰의 행동을 이해할 수는 있다”며 “그렇지만 ‘직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정도라도 사과의 말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김상진·위성욱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부림(釜林)사건=1981년 9월 공안 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부산지역 학생과 회사원 등 22명을 끌고 가 고문 수사한 뒤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노무현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맡았다. 5명이 징역 5~7년 등 중형을 선고받았으나 83년 12월 전원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직전에 일어난 공안 사건인 서울 ‘학림다방 사건’과 판박이라고 해서 ‘부림사건’이란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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