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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보다 동네 규제 더 무섭다

중앙일보 2014.01.23 00:10 종합 8면 지면보기



규제, 대통령이 풀어라
대규모 점포 제한, 법으론 3000㎡ 이상인데 … 광주 동구선 500㎡만 넘어도 '족쇄'
현장 숨통 조이는 조례·지침, 정부가 파악한 것만 80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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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통상업보존구역 내에서는 500㎡ 이상의 ‘대규모 점포’를 개설할 수 없다.”



 광주광역시 동구가 2011년 1월 제정한 조례의 일부분이다. 이에 따르면 전통시장에서 매장 규모가 500㎡를 넘어서는 점포는 업종을 불문하고 문을 열 수 없다. 또 대기업 관련 점포라면 규모가 이보다 작아도 상인회 동의가 없으면 사실상 점포 개설이 어렵다. 이뿐 아니라 대규모 점포의 기준이 유통산업발전법에서 규정한 3000㎡보다 한참 작아 점포 규모가 500㎡만 넘어도 영업시간 제한 같은 의무가 뒤따른다.



 이 조례에 따라 입점이 제한되는 것은 물론 점포 규모를 늘리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최근 일부 상인이 제기한 민원을 통해 비슷한 조례가 광주 북구·광산구·남구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중앙정부는 펄쩍 뛰고 있다. “중앙정부가 제정한 법령을 지방자치단체가 자의적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소관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박영삼 유통물류과장은 “지방의회에서 (중앙정부) 법령에도 없는 규제를 임의로 만든 것”이라며 “지자체가 명백하게 불법행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2. “도축·염색업 등 27개 업종은 우리 관내에 공장을 설립할 수 없다.”(2013년 2월 경북 성주군 공장설립 등의 제한 지역 지정고시)



 “환경 오염이 우려되는 공장에 대해서는 입지를 제한한다.”(2010년 8월 충남 논산시 친환경개발을 위한 업무처리 지침)



 각각 경북 성주군과 충남 논산시가 내부 고시와 내부 지침을 통해 시행하고 있는 산업단지 규제 내용이다. 이들 지자체는 환경보호를 위해 민간 개발업자의 산업단지 개발과 특정 업종의 입지를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고시와 지침은 규제 혁파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정부가 지난해 기업인들로부터 받은 투자 애로사항 가운데 ‘법령상 근거가 없는 규제’의 대표적인 사례다.



 상위 법령보다 강하거나 법령에도 없는 과도한 기준을 적용해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지방 규제’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지고 있다. 역대 정부가 끊임없이 규제 증가를 억제해 왔지만 자고 일어나면 국민이 체감하는 규제는 가중되고 있는 이유다.



 문제는 정부 공식 규제는 1만5067개로 집계되고 있지만, 전국 244개 광역·기초 지자체가 조례·고시·지침·내규를 통해 쏟아내는 ‘보이지 않는 규제’는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다는 점이다. 이상빈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아무리 규제를 개선해도 지자체가 조례에 반영하지 않거나, 중앙정부도 모르는 사이 법령보다 강화된 조례를 만들면 국민의 체감 규제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지자체를 전수조사한 결과 이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제활동의 숨통을 조이는 지방 규제는 문제가 명백한 경우만 802건으로 집계됐다. 상위 법령 규정 사항을 반영하지 않거나 상위 법령에서 위임한 사항을 소극적으로 규정한 경우가 많았고, 상위 법령에 근거가 없는 규제·절차를 적용하기도 했다. 강은봉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은 “상위 법령에도 없는 조례가 남발되면서 국민이 체감하는 규제는 겉으로 드러난 숫자보다 훨씬 많고 강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와 안전행정부는 지방 규제의 부작용이 갈수록 커지자 규제통합정보시스템(rims.go.kr)에 지자체 규제 정보를 연계시키기로 했다.



배지철 기재부 지역경제정책과장은 “지자체 규제의 90%는 상위 법령 위임에 따른 규제”라며 “앞으로는 완화된 규제가 자치법규에 바로 반영되는지를 면밀히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정부 간 알력이 규제의 부실성을 키우기도 한다. 자동차관리법의 경우 안전이 강화되면서 안전을 전문화한 ‘자동차안전법’과 관리를 전담하는 ‘자동차법’으로 나누는 내용의 입법예고가 나온 지 2년여가 됐지만 산업부가 자동차라는 이름을 국토교통부가 써서는 안 된다며 제동을 거는 바람에 아직 차관회의도 거치지 못한 상태다. 특별한 내용이 아닌데도 양쪽 다툼에 업체는 불똥이 어디로 튈지 불편하다.



김진국 배재대 아펜젤러국제학부 교수는 “중앙이든 지방이든 규제가 줄면 공무원의 할 일이 줄어들고, 권한도 약해지니까 관할권 다툼이 생긴다”며 “국민 이익을 외면한 규제는 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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