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 빵만으론 질식한다

중앙일보 2014.01.23 00:10 종합 28면 지면보기
신아연
재호주 칼럼니스트
무슨 비밀 조직이나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한 것 같았다. 그들은 거개가 서울 강남 한복판, 그러나 옹색하고 비좁은 지하에 골방 같은 ‘아지트’를 두기에 바깥세상의 흥청스럽고 은성스러운 분위기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무엇에 의한, 무엇을 위한 저항이자 항거인가. 우선 철학하는 농부 윤구병의 말부터 들어보자.



 <세상이 뒤집혔다. 2백 년도 안 된다. 이제 돈 없으면 못 사는 세상이 되었다. 돈이 재주를 넘어서 둔갑해 사람 행세를 하는 거다. 자본이, 돈이 없으면 사람 구실을 못 하는 허깨비 세상이다. 이 세상에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다고 믿는 미친 종자들은 인간밖에 없다. 그것도 가장 진보되었다고 저 잘난 체하는 현대인밖에 없다. 이 세상에 사는 다른 모든 생명체들을 붙들고 물어봐라. 강아지한테 물어보고, 지렁이한테 물어보고, 까막까치한테 물어봐라. 니네들 돈 없이도 살 수 있나? 있고 말고!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돈 없이는 살 수 없게, 생명체로 태어났으되 생명체 구실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원흉이 누구인가? 사람을, 하다못해 단세포 생물만큼도 떳떳하게 살아남지 못하게 한 탓이 누구에게 있는가?>



 감 잡았으리라. ‘무찌르자, 공산당’이 아니라 ‘기 막히고 코 막히게 둔갑해 사람 행세하는 돈, 돈 나고 사람 난 세상’과 맞붙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으로? 어떻게? 문화예술 활동을 살리는 것으로! 그래야 돈에 짓눌려 죽어가는 사람, 생명이 살아날 수 있다고 우리 ‘결사대’는 믿는 것이다.



 지난 연말 지인과 함께 역삼동 ‘가얏고을 풍류극장’을 찾았던 느낌도 그랬다. 그나마 모처럼 객석이 꽉 찼다. 어린이 관객들로 세대를 아우르니 잔치 분위기였다. 마침 예술단 이름도 ‘아우름’. 우리 소리 살리기를 위해 20년 가까이 시난고난 꾸려 왔단다. 단돈 만원으로 수준 높은 공연을 코앞에서 즐겼으니 영판 ‘염치없는 조 발막이’꼴이다.



 내가 아는 또 한 곳, 클래식으로 문화를 가꿔 가는 강남 개포동의 ‘한국가곡예술마을’. 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 등에서 공연이 예정된 연주자들의 음악회가 이곳에서 열린다. 그것도 무료로!



 그러면 뭐 하나. 그 좋은 공연, 그 수준 있는 무대의 객석은 거의 비어 썰렁한 것을. 기껏 돈 만원, 아니면 그도 말고 공짜라는 데도 외면을 당하니 서글프고 아프고 화난다.



 갤러리 같은 미술전시장도 경영난으로 허덕이고, 책은 또 얼마나 안 팔리는지 글 써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흔전대는 물질 속의 ‘타는 목마름’이랄까, 생활이 풍족해질수록 문화예술계의 갈증과 고갈과 소진과 탈진은 더해만 간다.



 한마디로 돈이 ‘웬수다’. ‘돈, 돈’ 하는 사이 우리 삶이 문화나 예술 활동과 담을 쌓게 되었으니. 돈에 지치고 치이면 생활 자체가 송두리째 자극적이고 감각적이 될 수밖에 없다. 돈의 속성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



 여가와 휴식, 주말이면 너도나도 뭘 산다. 아예 습관적이다. 글 한 줄 읽는 것도, 음악을 듣는 것도, 그림 감상도 다 싫고 귀찮고 번거롭고 의미 없고, 오직 먹고 소비한다. 그래 봤자 그때뿐, 갈증과 공허감은 여전하다는 것도 이미 잘 알면서.



 단언컨대 돈 욕심, 물건 탐심 줄이는 데는 문화예술만 한 게 없다. ‘미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을 살리는 최선의 방책이자 배타적이지 않은 유일한 길이다. 종교는 다른 차원이다. 너무 깊고 높아서, 혹은 배타적이라서 누구나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다간 주눅 들거나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지난해 12월, 본지에 범국민 문화예술 후원 캠페인인 ‘예술나무 운동’에 대한 글이 실렸다. 예술나무 운동(www.artistree.or.kr)은 한 그루(계좌)당 월 3000원의 후원금을 책정하고 있단다. 글쓴이는 고이고이 10그루를 심었다고 했다.



 지인도 술자리만 좀 줄이면 예술단체 몇 군데 후원하는 거야 별일 아니라고 했다. 마음이 중요할 뿐, 큰돈 안 든다는 소리다. 후원금이란 말이 내 귀엔 ‘군자금’처럼 들린다. 문화예술 지원은 이 시대의 적인 돈의 억압과 압제에서 인간성을 회복시키고 생명을 해방시키는 독립운동 버금가는 것이기에.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빵만 먹다간 질식한다.



신아연 재호주 칼럼니스트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