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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출판기념회, 교육감도 정치인 따라 하나

중앙일보 2014.01.23 00:10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그제 오후 6시 칼같이 퇴근했다. 오후 7시부터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자신의 출판기념회 때문이다. 이 자리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정몽준 의원, 이혜훈 최고위원 등 여당 실세들이 다수 참석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 모철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등 교육계 인사들도 보였다. 사실상 ‘재선 출정식’을 염두에 두고 온 듯 참석자들은 문 교육감에게 “또 교육감 맡으셔야죠”란 덕담을 건넸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교육감 후보로 거론되는 교육계 인사의 출판기념회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본수 전 인하대 총장(인천), 설동호 전 한밭대 총장(대전), 오광록 전 대전시교육감(세종), 윤두호 제주도의회 교육의원(제주) 등 줄잡아 20여 명이다. 공직선거법상 교육감 선거 후보는 지방선거 90일 전인 3월 5일까지 출판기념회를 열 수 있다.



 출판기념회는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모으는 수단이다. 사용내역 공개 의무도 없다. 이해관계로 얽힌 이들을 강제로 불러 모아 헌금을 내게 하는 폐습이란 지적도 숱하게 받아 왔다. 이날 문 교육감의 출판기념회에선 2000여 권의 책이 금세 동났다. 참석자들이 책값으로 10만~20만원씩 낸 점을 감안하면 최소 2억원 이상 모은 셈이다. 참석자 김모(48)씨는 “‘세금고지서’ 같은 초청장을 거절할 수 없었다”며 “교육을 책임지는 장(長)이 기존 정치권의 관행을 답습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감 후보들의 ‘어색한’ 출판기념회엔 그럴 사정이 있기도 하다. ‘한 다리를 묶어놓고’ 뛰어야 하는 현행 교육감 선거의 한계 탓이다. 교육감 후보들은 1인당 평균 11억6000만원을 선거비용으로 쓴다. 모두 자비(自費)다. 사실상 여야가 개입해 지원하는 선거인데도 불구하고 정당 지원이나 정치후원금은 받지 못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의 중립성 때문이다. 훌륭한 교육자라도 돈 없으면 출마하기 어려운 구조다. 문 교육감도 2012년 선거에서 4억원의 빚을 졌다.



 이런 교육감 선거를 놓고 개혁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16일엔 보수 성향의 교총과 진보 성향의 전교조가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교육감 선거 공영제 도입, 교육감 후보의 교육 경력 유지, ‘로또식’ 투표용지 개선 등을 주장했다. 이들이 “응답하라”고 요구한 대상은 28일 종료되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다. 정개특위는 선거 공영제 등 지금껏 나온 개선안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해 교육수장을 올바로 뽑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출판기념회가 줄 잇는 풍경은 여의도로 족하다.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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