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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부실 공기업, 씨가 마를 때까지 ①

중앙일보 2014.01.23 00:10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내 이름은 낙하산 사장. 줄여서 ‘낙사장’이라 불러도 좋다. 나에 대한 관심이 요즘 유난히 뜨겁다. 이 정부가 올해를 공기업 개혁 원년으로 삼은 탓일까. 나를 척결대상 1호로 꼽는 이가 많지만 과연 그런가. 모든 건 오해다. 오해는 제대로 알고 나면 사라지게 마련, 들어줄 사람 없겠지만 그래도 하소연 한 번 해보련다.



 사실 낙사장, 아무나 못한다. 뛰어난 자질, 타고난 근성, 피나는 노력은 기본이요, 운(運)과 연(緣)이 맞아야 한다. (여기에 감투를 위해선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겨내는 의지, 자존심을 헌신짝처럼 팽개칠 줄 아는 용기까지 갖추면 금상첨화다) 이 자리에 오른 사람이라면 다 그런 실력과 운을 갖췄다고 보면 된다. 겉으론 손가락질하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속으론 나를 부러워한다는 것, 잘 안다. 그래서 특별히 이 자리에 비법을 공개한다. 무릇 낙사장을 꿈꾸는 이들은 새겨두시라.



 첫째 요령은 신분세척이다. 정치인이든 관료든 학자든 전문직이든 직업 불문, 일단 대선 캠프에 몸을 담가라. 이기는 쪽을 잘 고르는 게 핵심이지만, 한두 번 잘못 골라도 상관없다. 정권 바뀔 때를 기다리면 되니까. 찍는 캠프마다 실패라고? 그럴 땐 가끔 말을 바꿔 다른 캠프에도 들락거리는 철면(鐵面)을 동원하라. 워낙 거물 철새가 많은 나라라 우리 같은 졸개 철새는 눈에 띄지도 않는다. 굳이 열성적으로 운동할 필요는 없다. 아무 직함이든 명함에 한 줄 걸쳐만 놓으면 된다. 정권 잡은 뒤 낙하산 심사 때 최고의 검증 멘트는 바로 이것. “그 사람이 대선 때 뭐 한 게 있다고?”다. 여기에 걸리면 아무리 잘나고, 일 잘해도 소용없다. 그때, 명함 한 줄이 말을 한다. “우리 캠프 멤버입니다.”



 다음은 안면 비축이다. 중국 학자 이중톈은 “안면은 값은 나가지 않지만, 무한한 신통력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이다. ‘내 얼굴 봐서’ 한마디에 안 봐줄 수 없다. 대통령에게 ‘내 얼굴 봐서’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과 안면을 터놔야 한다. 최○환, 김○성이 달리 실세인가. 안면의 특징은 빌려 쓸 수 있고 양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내게 신세를 진 적이 있는 사람이 나 대신 부탁을 해주게 만들 수도 있다. ‘실력보다 안면’이란 말이 괜히 나왔겠나.



 어디 그렇다고 안면 비축이 말처럼 쉽나. 최고는 역시 자주 만나는 것이다. 만나야 친해지고, 흉금도 트게 된다. 안 보면 멀어진다는 진리도 있잖은가. 안면 비축엔 돈·시간·정성이 든다. 달리 ‘육(肉)보시’라고 부르는 이유다. 틈만 나면, 불러주기만 하면 몸 사리지 않고 달려가는 것, 몸을 던지는 보시란 뜻이다.



 셋째는 누울 자리 보고 발 뻗기다. 아무 자리나 들이대다간 헛심만 쓰고 몸 버리기 십상이다. 내가 가고 싶은 자리보다 갈 수 있는 자리를 골라야 한다. 혹 더 센 곳에서 먼저 찜했는지 살피는 건 기본이다. 이런 내밀한 정보는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2항 안면 비축의 내공이 강할수록 도움이 된다.



 넷째는 언론 활용이다. 언론은 양날의 칼이다. 어렵사리 한 자리 하기로 내정됐다면 언론 노출은 극도로 삼가야 한다. 반면 내가 불리할 땐 언론을 잘 써먹어야 한다. ‘누가 내정됐느니, 누가 낙하산이니’라고 흘려서 낙점자를 쫓아내는 것이다. 이 방법은 그러나 큰 효과는 없다. 내정자를 쫓아낼 순 있지만, 내가 그 자리에 앉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신 어부지리를 얻는 사람이 나온다. 덕분에 가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이들이 낙점을 받기도 하는데 얼마 전 권○자, 최○혜 등이 그랬다.



 어떤가.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이런 비법을 익힌 고수가 대한민국엔 넘쳐난다는 거다. “낙하산은 삼가겠다”던 박근혜 정부 1년간 공공기관 사장·감사 160명 중 92명이 정치인·관료 등 낙하산으로 채워진 것도 그 때문이다. 무릇 낙사장을 꿈꾼다면 나만의 비법 개발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노파심에서 뱀다리(蛇足) 하나. 행여 정부는 이 비법을 역이용, 공기업 낙하산 근절에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럴 일은 결코 없겠지만.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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