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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야스쿠니 참배 잘못 … 그래도 척져선 안 돼"

중앙일보 2014.01.23 00:07 종합 10면 지면보기
에즈라 보걸
덩샤오핑(鄧小平·1904~97) 출생 110주년인 올해, 미국의 아시아 전문가 에즈라 보걸(84)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쓴 평전이 서울에서 출간됐다. 이를 계기로 방한한 보걸 교수를 본지 김영희(위 사진) 대기자가 21일 만났다. 덩과 박정희 대통령,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논하고, 20세기와 21세기를 넘나드는 대담은 약 두 시간가량 영어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덩샤오핑 평전 쓴 에즈라 보걸, 김영희 대기자와 대담

 김영희 대기자(이하 김)=덩샤오핑 평전은 덩의 일생을 보여주는 통찰력 있는 파노라마다. 도광양회(韜光養晦·어둠 속에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뜻. 중국의 1980년대 대외정책)를 실시한 덩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중국은 없었을 것 같다.



박정희 미시적, 덩은 거시적 리더십



 보걸 교수(이하 보걸)=그렇다. 덩이 중국의 변혁 과정에서 살아남아 호된 시련을 거친 후 지도자가 된 것은 중국에 큰 행운이었다. 때론 미시적인 리더십을 보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다른 거시적 리더십을 보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많은 시련을 견뎌냈다. 덩 이후 중국의 리더들 중 덩만 한 인물은 없다.



 김=제5세대 지도부 핵심인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덩샤오핑을 비교해본다면.



 보걸=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을 ‘차이나 1.0,’ 덩의 중국을 ‘차이나 2.0’이라 한다면 시진핑의 중국은 ‘차이나 2.3’ 정도로 부르고 싶다. 시 주석은 덩과 전혀 다른 중국이 아닌, 덩이 구축한 기반 안에서의 변혁을 모색할 것이다. 덩이 창업자였다면 시는 덩이 만든 길을 가면서 개혁·부패 척결로 안정을 이룬 뒤 변혁을 모색할 것이다. 지도자의 길에 오르기까지 덩은 수십 년 동안 경제뿐 아니라 정치·외교 전반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지만 시 주석은 그렇지 못하다는 약점이 있다.



김영희 대기자
일본의 군국주의화는 없을 것



 김=시 주석이 덩에 비해 자격(credential)이 모자란다는 뜻인가.



 보걸=(잠시 생각하다) 시 주석은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이 부총리였던 덕에 인맥을 쌓을 수 있었고, 이후 산시(陝西)성으로 좌천당한 이후엔 고된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교 분야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며 특히 서방과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은 상태에서 지도자가 됐다.



 김=덩이 오늘날 중국 지도자라면 도광양회를 접고 대국굴기(大國<5D1B>起)를 할까.



 보걸=덩의 외교 전략은 ‘세계 모든 주요 국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자’로 요약된다. 그렇기에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 핑퐁 외교가 가능했다. 이는 중국의 발전을 위한 영리한 포석이었다.



 김=중·일 관계는 어떻게 진단하나.



 보걸=시 주석의 경우 덩의 외교 기조와는 달리 세계 주요국인 일본과 척을 지고 있다. 지금 중국엔 현대적 일본이 아닌 예전 제국주의적 일본에 대한 선전성 영화·책 등만이 넘쳐나고 있어 문제다. 물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잘못이다. 그렇다고 일본과 아예 적이 되는 건 현명하지 못하다. 이는 한국에도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 말이다.



 김=한·중은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우려하고 있다.



 보걸=일본인들은 과거 군국주의가 파멸을 가져왔다는 점을 잊을 수 없으며, 중·한과 각각 맺고 있는 경제·통상 관계를 생각할 때, 그런 일은 없을 거라 본다.



 김=최근 동북아 상황은 미국의 아시아 담당자들을 궁지로 몰고 있다.



 보걸=옳은 지적이다. 문제는 상황이 더 꼬여만 간다는 점이다. 미국이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을 선언하면서 중국 일부 지도층은 이를 자국에 대한 압력으로 받아들였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도 얘기하고 싶다. 미국은 단지 (한·일과 같은) 동맹국에 ‘우리가 아시아를 떠날 일은 없다’고 강조하고 싶었던 거다. 그러나 미국이 서해에서 군사훈련을 강행하는 것은 실제로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 내 중국인 친구들은 내게 ‘중국이 하와이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하면 기분이 어떻겠느냐’고 따진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지만 중국과 척을 졌다. 반면에 존 케리 현 장관은 비교적 매끄럽게 중국과 관계를 맺으려 한다고 본다.



 김=중국이 아태지역에서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는 뭔가.



 보걸=그에 대한 답은 누구도 갖고 있지 못하다. 중국이 경제규모에서 일본을 제쳤을 때, 중국 지도부 내 일부는 ‘이제 대국굴기를 할 시점’이라고 느꼈을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목표로 한다고 반복해 얘기한다. 앞으로 20~30년 후, 중국이 군사적으로도 미국과 대등해지면 어떨지 지금부터 찬찬히 분석해야 한다.



 김=덩은 89년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질 때 은퇴했다. 그는 충격을 받은 것인가.



힐러리보다 케리가 친중국적



 보걸=덩은 일기를 남기지 않았다. 속마음이 어떤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당시 덩이 중국으로 초청했던 친구(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독재 끝에) 총살형으로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는 걸 보고 느끼는 바가 있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김=중국 사회주의 체제의 안정성이 잘 유지될 거라고 보나.



 보걸=서구의 정치학자들은 ‘중산층이 두터워지면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는 가설로 중국을 보려고 들지만 찬성하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은 인민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이 점에서 북한과 중국이 다르다. 경제성장률이 둔화해도 경제에 대한 불만 때문에 정치 시스템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중국의 공직자들 중 비교적 진보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드는 매체가 있는데, 이들은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중국의 정치 발전을 이끌어 갈 수 있다. 이들에게서 난 중국 정치의 희망을 본다.”



전수진 기자, 사진 김경빈 기자



◆에즈라 보걸=하버드대 명예교수로 미국의 동북아 전문가. 하버드대 아시아센터 소장 역임. 저서로 『박정희 시대:한국의 전환』(2011), 『일본은 아직도 넘버원인가?』(20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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