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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성희롱만 해도 해임 … 한국은 유죄 확정돼야 퇴출

중앙일보 2014.01.22 02:30 종합 12면 지면보기
지난해 5월 전북 무주의 한 고등학교. 22년차 체육교사 박모씨는 학교 축제날 1학년 남학생 2명을 관사 앞으로 데리고 가 대낮부터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한 박씨는 갑자기 두 남학생의 성기를 주무르고 머리와 뺨을 8차례 때렸다. 경찰은 그를 성폭력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전북도교육청은 징계위원회를 열고 박씨를 해임했다.


학교에 남아 있는 성범죄 교사들 <하>
미 아동포르노 소지 교사 200년형
한국 성매매 적발돼도 견책 처분
"대다수 선량한 교사들 사기 떨어져
극소수 문제 교사 즉각 내보내야"

 박씨는 매년 성 관련 사건을 일으키는 ‘문제 교사’였다. 그는 2012년 정읍의 한 고등학교에서 핸드볼부 여학생을 성추행해 해임처분을 받았다가 소청 심사를 통해 정직 3월로 감경받았다. 그 전해에는 학생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해 견책 처분을 받기도 했다. ‘견책→정직→해임’으로 처벌 수위가 높아지는 동안 박씨는 학교를 옮겨다니며 여러 학생들을 계속 성추행했던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이 사태를 키워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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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가 최근 5년간 성범죄로 징계를 받은 전국 교사의 징계의결서를 분석한 결과, 상당수 교사는 박씨처럼 ‘전력’이 있었다. 그때마다 견책 등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다른 학교로 옮긴 뒤 또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견책은 과오를 반성하게 하는 것으로 사실상 불이익이 없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박모씨도 2008년 성매매한 사실이 적발됐지만 견책에 그쳤다. 박씨는 이듬해 같은 비위를 저질러 정직 2월에 처해졌다. 그는 여전히 교편을 잡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재연되는 이유는 교육부가 교사들의 ‘성범죄’ 범주를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 교원정책과 담당자는 “엄밀히 말해 현재 교단에 성범죄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성폭력법에 열거된 죄에 해당해 사법 기관에 의해 형이 확정된 사람만이 성범죄자”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경찰·검찰에서 기소해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야만 교단에서 영구 퇴출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현행법상 학교 측은 교내 성범죄에 대해 수사 기관에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형법상 유죄가 분명한데도 2차 피해를 우려해 자체 징계로 덮는 경우가 더 많다. 지난해 서울 마포구의 한 고등학교에선 A양(18)이 자신을 강제 추행한 국어교사 B씨(51)에 대한 해임을 학교 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널리 알려지면 이로울 게 없다”며 B씨의 사과문을 받는 선에서 무마했다.



 징계 규정도 미흡하다. 현행 국가공무원법(83조)에 따르면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가 발생한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교사를 징계를 할 수 없다. 반면 금품·향응 수수와 공금의 횡령·유용 범죄는 징계 시효가 5년으로 더 길다. 교육부는 “성범죄 징계 시효를 5년으로 늘리는 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라고 해명했다.



 ‘교육공무원 징계양정에 관한 규칙’의 성범죄 관련 항목은 2009년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등으로 세분화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규정이 애매모호하다.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범죄를 소극적으로 해석할 경우, 미성년자 성매매를 ‘단순 성매매’로 분류해 견책 처분에 그칠 수도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청 징계위원회에서 낮은 수준의 처분을 내리더라도 교육부가 일일이 개입하거나 재징계 조치를 내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교사 성범죄를 강력히 처벌하는 추세다. 미국 LA 교육당국은 지난해 5월 성희롱 등 경미한 수준의 성폭력을 포함해 성범죄 전력이 있는 교사 300명을 일괄 해고했다. 미국 대법원은 2007년 2월 26일 아동 포르노물을 소지한 혐의로 기소된 50대 고교 교사에 대해 징역 200년형을 확정했다. 영국에서는 2006년 10대 소녀를 성폭행한 전력이 있는 교사 등 88명의 성범죄자가 교단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약자 보호법(Safeguarding vulnerable groups bill)’을 도입해 교원 채용 때 성범죄 전력 확인을 의무화했다.



최미숙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대표는 “학부모로선 성범죄가 발생해도 아이가 불이익을 받을까 봐 섣불리 나서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학교가 나서서 수사 기관에 신고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무성 한국교총 대변인은 “극소수의 문제 교사 때문에 대다수 교사의 사기가 떨어지고 교육 전체의 불신이 초래될 수 있다”면서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문제 교사는 교단에서 즉각 퇴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정강현·이유정·장혁진·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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