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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가 키우면 빅클럽이 믿고 쓴다

중앙일보 2014.01.22 00:28 종합 24면 지면보기
지난해 10월 11일 열린 크로아티아와의 월드컵 예선 원정경기에서 2-1로 승리한 뒤 12년 만의 본선 진출을 확정한 벨기에 선수단. 벨기에는 예선 10경기에서 18골을 넣고 4골만 내주며 8승2무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자그레브 AFP=게티이미지]


브뤼셀 국제공항과 도심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유난히 밝았다. ‘인공위성에서 내려다보면 낮에는 만리장성이, 밤에는 벨기에의 고속도로가 보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최근에는 축구가 ‘작지만 강한 벨기에’의 새 상징이 됐다.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의 면적, 인구 1100만 명의 작은 나라지만 유럽 축구에 끊임없이 새로운 피를 공급하는 심장이 됐다.

[브라질 월드컵 상대국을 가다] 유럽 축구의 보물창고 벨기에 주필러리그
잉글랜드·독일 등으로 적극 수출, 국가대표 대부분 유럽 명문 주전
자국 1위팀 주전 56%가 23세 이하 … 어려도 뛸 기회 많은 '유망주 천국'



 벨기에는 2014 브라질월드컵 유럽예선 A조에서 크로아티아·세르비아 등 강호들과 경쟁하며 무패(8승2무)로 조 1위를 차지했다. 2002 한·일월드컵 이후 12년 만에 본선 진출이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은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들이 중심이 된 벨기에와 조별리그 3차전(6월 27일)에서 격돌한다.



 ◆작지만 강한 나라의 ‘화수분 축구’=벨기에 프로축구 주필러리그는 유럽 빅클럽 사이에서 ‘보물 창고’로 통한다. 재능 있는 유망주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18일 브뤼셀에서 고속철도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리에주. 리그 1위 스탕다르 리에주와 11위 오오스텐데의 경기가 열렸다. 이날 2-0으로 승리한 리에주의 엔트리 18명 중 무려 10명이 23세 이하였다. 선제골도 에버턴(잉글랜드) 이적설이 돌고 있는 벨기에 21세 이하 대표팀 공격수 미치 바추아이(21)가 넣었다.



 현장에서 만난 스포츠 전문 라디오 채널 ‘맥시멈’의 마크 제라르디 기자는 “벨기에 리그의 선수들은 당장의 실력보다는 성장 가능성으로 평가받는다”면서 “20대 초·중반의 어린 선수가 많아 리그 수준이 높진 않지만, 공격적인 축구로 인기를 유지한다”고 말했다.



 킥오프 두 시간 전부터 맥주와 감자튀김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든 리에주 팬들은 3만 명을 수용하는 스타드 모리스 뒤프라스를 가득 메웠다. 제라르디 기자는 “주필러 리그는 독일·네덜란드·프랑스 등 강한 리그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면서 “힘 대 힘, 돈 대 돈으로는 승산이 없다. 그래서 좋은 선수를 키워 클럽 재정을 살찌우고 대표팀 경기력을 높이는 쪽으로 정체성을 설정한 것”이라고 했다.



 벨기에가 ‘유망주 천국’으로 거듭난 건 10년 전 무렵부터다. 스티븐 마르텐스(49) 벨기에축구협회 CEO는 “축구협회의 주도로 투지와 체력을 강조하던 기존 축구에서 벗어나 패스와 기술 축구에 초점을 맞추고 그에 맞는 어린 선수를 집중 발굴했다”고 말했다.



 벨기에 클럽의 유소년 육성 능력이 미흡했던 초창기엔 프랑스·네덜란드 등 인근 국가에서 성장한 벨기에 선수들이 먼저 두각을 나타냈다. 최근에는 벨기에 리그도 탄탄한 유스 시스템을 갖추고 예비 스타를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겡크 출신 골키퍼 티보 쿠르투아(22·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비롯해 리에주에서 성장한 마루앙 펠라이니(27·맨유)·악셀 비첼(25·제니트), 안더레흐트가 배출한 뱅상 콤파니(28·맨체스터시티)·로멜루 루카쿠(21·에버턴) 등이 대표팀의 핵심 멤버다. 빅 클럽으로 진출한 이들의 빈자리에는 또 다른 20대 초반 선수들이 올라와 성장하고 있다.



벨기에 축구 스탕다르 리에주와 오오스텐데전이 열린 스타드 모리스 뒤프라스. [리에주=송지훈 기자]
 ◆이질적 두 문화권, 축구로 화합=축구는 국가 통합의 수단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김창범(54) 주벨기에 한국대사는 “벨기에는 네덜란드어를 쓰는 북부 플란더스 지역과 프랑스어 문화권인 남부 왈로니아 지역으로 나뉜다. 문화·언어·인종·가치관·경제 상황 등 모든 면이 다른 두 지역이 공존하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났다”면서 “인종과 언어를 초월해 하나로 뭉친 축구 대표팀이 근래 두 지역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벨기에 일간지 ‘헷 뉴스블라드(Het Nieuwsblad)’의 루도 판데르월르(49) 스포츠팀장은 “7~8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축구 대표팀에서 두 지역 간의 반목이 심했다. 공교롭게도 지금 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는 콤파니가 당시엔 ‘따로따로 문화’를 주도하는 문제아였다”면서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다. 벨기에 축구가 월드 클래스로 도약한 이후 선수들이 ‘대표팀을 성장시켜 내 가치를 더욱 높이자’는 공감대 아래 화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에 모두 능통한 마르크 빌모츠(45) 대표팀 감독이 선수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화합을 주도한 게 통했다”고 귀띔했다. 그간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타협과 절충의 전문가들’로 불리면서도 정작 내부적으로는 분열했던 벨기에는 축구를 통해 ‘하나된 힘’을 보여줄 채비를 하고 있다.



브뤼셀(벨기에)=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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