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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성적표, 장관 평가에 반영하자"

중앙일보 2014.01.22 00:22 종합 3면 지면보기
“대통령과 총리가 틀어쥐고 해야 바뀐다.” 규제개혁위원회 민간 위원장을 지낸 정해주(71) 전 국무조정실장, 최병선(61)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안충영(73) KOTRA 외국인투자옴부즈맨의 공통된 지적이다. 담당 부처와 공무원에게 맡겨놓아선 결실을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정 전 실장은 2006년 3월, 최 교수는 2008년 5월, 안 옴부즈맨은 2010년 5월부터 2년씩 위원장을 했다.



정해주 전 국무조정실장



-김대중(DJ) 정부 초반기 규제개혁은 큰 성과를 냈다.



 “당시는 규제와의 전쟁을 했다. 사무실에 야전 침대를 펴고 일했다. 규제의 50%를 없애고, 25%는 개선하는 게 목표였다. 전체의 75%를 손본 것이다. 김종필 국무총리가 대통령에게 갈 때도 항상 규제 보고서를 챙겼다. 대통령 의지가 워낙 강력하다 보니 공무원이 규제개혁위원회에 와서 벌벌 떨 정도였다.”



 -왜 규제를 풀어야 하나.



 “DJ는 규제 개혁을 하면 투자가 활성화될 뿐만 아니라 부패도 줄어든다고 봤다. 과거 보건 분야에선 모든 게 다 규제였고, 이게 부패의 근원이었다. 식당에 단속을 한 번만 나가도 안 걸리는 게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부패도 계속 생겼다.”



 -DJ 정부 후에는 성과가 크지 않다.



 “행정 부처와 공무원은 규제가 있으면 편하고 좋다. 따라서 실무 공무원에게 맡겨선 규제 개혁이 절대 안 된다. 장관이 나서고,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한다. DJ 때처럼 장관 평가에 규제 개혁 실적을 반영해야 개혁이 가능하다.”



 -규제개혁위원회의 역할은.



 “DJ 때 김종필 총리는 규개위 회의에 자주 갔다. 안건이 많을 때는 5~6시간씩 직접 주재했다. 총리가 오는 것과 민간 위원장이 주재하는 것은 장관들의 태도부터가 다르다.”



 -후배 공직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



 “아무래도 자기 분야부터 챙기고 싶다. 하지만 국가 전체의 이익을 봐야 한다. 법에도 없는 규제를 지침 등으로 실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규제는 반드시 없애야 한다.”





최병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왜 안 바뀌나.



 “규제 개혁이란 정부와 민간이 일을 배분하는 것이다. 규제를 고쳐 기업 편의를 높인다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발상부터 바꿔야 한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줄고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늘어났다. 식당 주인이 규제 때문에 식당을 깨끗하게 꾸미겠나. 더러우면 손님이 안 오기 때문이다. ”



 -약자 보호를 위한 정부 역할을 강조하는 주장도 많다.



 “규제의 최대 피해자는 약자다. 규제가 많아지면 규정을 잘 아는 사람만 좋아진다. 약한 사람, 대응 능력이 없는 작은 기업만 당한다. 몽골의 재상이었던 야율초재(耶律楚材)가 칭기즈칸의 아들에게 한 ‘흥일리불약제일해(興一利不若除一害)’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것보다 잘못된 걸 하나 없애는 게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다른 것 실컷 해보다가 안 되면 그제야 규제 개혁 얘기를 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해야 하나.



 “김대중 정부 때 제일 많이 풀렸다. 외환위기의 특수성도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총리를 볼 때마다 규제 문제를 묻는데 안 할 수가 있겠나. 윗사람의 관심이 중요하다.”



 -구체적인 방안은.



 “규제 개혁을 위해선 규제의 비용·편익 분석에 돈을 써야 한다. 저절로 되는 건 없다. 돈이 흐르면 학자가 몰리고, 분석 수준도 높아진다. 규제의 효과가 없다는 점이 확실하게 나오면 규제의 질은 당연히 높아진다. 규제 개혁에 쓰이는 돈이 국가 전체로 100억원도 안 된다. 말로만 우선순위를 둬선 안 된다.”





안충영 KOTRA 외국인투자옴부즈맨



-규제 개혁이 매번 쳇바퀴다.



 “규제 개혁은 이해 관계를 재편성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기득권을 포기하는 과정이 반드시 생긴다. 규제 개혁은 갈등 조정 능력을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 확립, 환경·안전, 노동자 권익 보호 등은 필요하다. 문제는 부처 권한을 키우기 위한 규제다. ‘파킨스의 법칙’이란 게 있다. 각 부처는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 자기 부처의 권한·조직을 확대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부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규제는 철폐해야 한다.”



 -어떤 규제가 그런가.



 “부처의 작동 원리 자체가 그렇다. 각 부처 서랍 속에는 자기들만 아는 규제가 많다. 훈령·고시 같은 세부 규제다. ‘된다, 안 된다’는 이런 규제를 통해 결정된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이런 규제를 모두 등록시켜서 다른 부처와 기업, 국민이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현재 가장 필요한 규제 개선 분야는.



 “투자 촉진이 시급하다. 민간 투자 활성화를 위해선 수도권 규제를 풀어야 한다. 외국인 투자 기업도 수도권 입지를 원한다. 단 조건이 있다. 수도권 규제 완화의 이득이 지방으로 흘러갈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



 -의원입법에 의한 규제도 많다.



 “규개위원장을 할 때도 정부 규제를 열심히 바꿔놓으면 국회에서 악법이 넘어와 골치를 앓았다. 법규의 대원칙이 네거티브(Negative)가 돼야 한다. 법에 나열된 것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법에서 ‘하지 말라’고 규정한 것 외에는 다 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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