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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강남을 정의하다

중앙일보 2014.01.22 00:02 강남통신 1면 지면보기


위 江南通新 제호가 보이십니까. 여기 쓰여있는 대로 중앙일보는 강남을 ‘지역적 의미를 넘어 차별화한 생활 방식을 나타내는 보통명사’라고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이 기준에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학자들도 의견이 엇갈립니다. 그렇다면 행정구역상의 강남 주민은 과연 강남을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로 규정하고 있을까요.

마음 속의 강남은 모두 다른 얼굴 … 그래도 역시 압구정동
강남을 어디로 생각하는지 물어 봤습니다





강남(江南)은 대체 어디일까.



아니, 가수 싸이(PSY)의 글로벌 히트곡 ‘강남스타일’로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적 명성을 얻은 바로 그 강남이 어디냐고 묻다니 제정신인가.

하지만 의외로 답은 녹록치 않다. 국어사전(두산동아)을 펴봤더니 강남을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①’강의 남쪽’. ②’(중국의) 양쯔강(揚子江) 이남 지역’. ③’(서울의) 한강의 남쪽 지역. ↔ 강북(江北)‘. 이 정의가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강남과 얼마나 부합할까. 아마 ①②③번 그 어떤 정의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강남 이미지완 한참 동떨어질 거다.



강남이 단순히 행정구역이나 지역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사회경제학적 함의를 강하게 지니게 된 1980~90년대 이후 적지 않은 학자들이 강남을 정의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여전히 강남의 범위를 어디로 잡을 것인지, 아니 무슨 기준으로 강남을 바라봐야할 것인지에 대해서조차 일치된 견해를 표출해내지 못했다. 『강남좌파』『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 등의 저서를 통해 강남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보여온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그의 책에서 ‘강남은 ①서울의 한강 이남 ②강남·서초·송파·강동구 ③강남·서초·송파구 ④강남·서초구 ⑤강남구의 5가지 범주로 사용되고 있다’고만 적었다.



 그래서 江南通新이 강남을 한번 정의해보기로 했다. 강남에 사는 주민이 생각하는 강남이 어디인지를 묻는 방식을 통해서 말이다.



강남(江南) 사람이 꼽은 강남은 어디



 “압구정·청담·삼성 이렇게 세 곳이 강남이지. 대치동이나 도곡동이 무슨 강남이야~. ”



 1978년부터 압구정동 한양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한 60대 남성은 “강남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는 질문에 대뜸 이렇게 답했다. 하지만 잠실동 엘스에 사는 박소현(34·여)씨 생각은 달랐다. 그는 “강남구, 그리고 서초구 일부 아닐까요. 강남3구라고 불리지만 솔직히 송파구는 강남은 아니죠. 아, 잠실 정도는 들어갈 것도 같네요”라고 말했다.



江南通新은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와 함께 2013년 12월 27일~2014년 1월 2일까지 강남3구와 분당·판교에 사는 20대 이상 성인 남녀 50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강남 범위를 모두 꼽아달라는 요청에 현재 거주지별로 확연하게 다른 결과가 나왔다.



 ‘강남에 해당한다고 생각되는 곳을 모두 골라달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응답자가 꼽은 동네는 압구정동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94%가 압구정동을 강남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청담동(93%)과 삼성동(92%)이 뒤를 이었다. 많은 사람이 강남으로 꼽은 상위 1~8위 동이 모두 강남구였다.



 비(非) 강남구로는 서초구 서초동(84%·9위)이 가장 높았고, 반포동(78%·10위)과 방배동·잠원동(72%·동률 11위)였다. 송파구에서는 잠실동(70%)이 가장 높았지만 전체 순위에서는 13번째에 불과했다.



내가 사는 곳이 강남의 핵심?



 편의상 ‘강남’으로 꼽힌 비율을 ‘강남률’(江南率)이라고 했을 때, 강남률 90% 이상이라면 누구나 이 지역을 강남으로 인정한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전체 응답으로 봤을 때 강남률 94%로 가장 강남다운 강남으로 꼽힌 곳이 압구정동이다. 그러나 현재 거주지별로 답변을 쪼개서 봤을 때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치동 응답자만 유일하게 압구정동의 강남률을 90% 이하(87%)로 꼽은 거다. 남들이 다들 강남으로 생각하는 압구정동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강남으로 부르길 주저하면서 응답자 본인 거주지 인근인 대치동과 도곡동엔 각각 100%, 93% 강남률을 보여줬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대치동 주민이 생각하는 강남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라며 “교육을 중시하는 대치동 주민 특성상 사교육 1번지인 대치동 주변을 압구정보다 더 강남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가장 강남다운 강남으로 꼽힌 압구정동 거주자가 꼽은 강남은 어디일까. 이곳 응답자는 본인 거주지인 압구정동과 청담·삼성동(100%) 3개 동만 강남으로 인정했다. 인근 신사동과 타워팰리스로 상징되는 도곡동 등 다른 지역은 전혀 꼽지 않았다. 다른 지역 응답자가 비교적 여러 곳을 꼽은 것과 대조적이다.



 압구정 주민이 생각하는 강남의 범위가 특히 좁은 이유는 뭘까.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강남 사람이 비강남과 차별화하고 싶은 것처럼 강남 내에서도 차별화 욕구가 강한 곳이 있다”며 “그럴 경우 더 좁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치동과 압구정동뿐 아니라 응답자 대부분 본인의 거주지를 강남으로 꼽는 비율이 높았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자기가 사는 곳을 강남 핵심이라고 여긴다는 얘기다. 예컨대 서초구 서초동 응답자는 현재 거주지인 서초동과 압구정·청담동만 강남으로 답했다. 특히 압구정·청담동(91%)보다 서초동(95%)을 더 강남으로 많이 꼽았다. 서초동 주민에겐 서초동이 대표적인 강남이라는 얘기다.



 곽 교수는 “사람은 자기 공간에 대한 욕구가 있다”며 “좋은 걸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심리, 즉 좋은 영역에 소속되고 싶은 심리”로 설명했다.



 강남이 단순히 행정구역이 아니라 부유함이나 좋은 학군 등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브랜드가치로 작용하는 만큼 스스로를 그 안에 편입시키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예외적인 곳도 있다. 송파구 잠실동이다. 잠실동에선 압구정동과 청담동의 강남률이 90%를 넘겼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거주하는 잠실동의 강남률은 85%에 불과했다. 강남3구라는 이름 아래 강남구·서초구와 한묶음으로 불리지만 정작 그 지역 거주자는 스스로를 강남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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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자격



 그렇다면 사람들이 강남을 꼽을 때 무슨 잣대를 기준으로 했을까.



 전체 응답자(2개까지 복수응답)를 놓고 봤을 땐 소득 수준(41%)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강남 주민 머릿 속에도 강남은 곧 잘 사는 동네라는 일반적인 통념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다음으로는 행정·지리적 경계(39%), 교통권(31%)이 강남과 비강남을 가르는 기준이라는 답이 많았다.



 이같은 강남의 기준에서도 강남·서초·송파구 거주자별로 우선 순위가 달랐다.



 서초구(44%)와 송파구(43%)는 강남의 제1기준으로 소득 수준을 꼽았지만 강남구에서는 행정·지리적 경계(42%)라고 답한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소득 수준을 꼽은 사람은 33%였다.



 강남구가 다른 구 거주자보다 더 중시하는 기준은 교육이었다. 강남구에선 23%가 학군을 강남의 조건으로 꼽았다. 이는 서초구(19%)나 송파구(13%)보다 높은 수치일 뿐 아니라 전체 응답자 평균(17%)보다 높다.



강남 네이티브의 탄생



 강남 3구에 사는 사람들은 왜 여기에 살까. 교통과 쇼핑 등 편리함을 빼놓을 수 없다. 자녀가 있다면 8학군으로 대변되는 교육 프리미엄이 한몫한다. 이게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막상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어릴 때부터 살아서’ 즉, 강남이 고향이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자녀교육과 편리한 교통, 문화·편의시설이 똑같이 16%로 그 뒤를 이었다. 세대별로는 20대는 ‘어릴 때부터 살아서’(40%), 30대는 ‘문화·편의시설’(21%), 40대는 ‘자녀 교육’(27%), 50대 이상은 ‘편리한 교통’(22%)을 각각 1위로 꼽았다.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 강남개발 초기의 강남 붐엔 급등하는 땅값(투자 가치)과 좋은 학군(교육)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강남이 개발된지 30여 년이 더 지난 지금은 누군가의 고향이 됐다. 김 교수는 이를 ‘강남 네이티브(원주민)의 탄생’으로 설명한다. 그는 “20대는 물론 30~40대 가운데서도 강남에서 태어나거나 어릴 때부터 줄곧 이곳에서 성장하면서 강남의 라이프 스타일을 누려온 사람이 많다”며 “굳이 다른 지역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 결과 20대 응답자 열 명 중 여섯 명이 강남에서 태어났거나 10대 이전부터 강남에서 살아온 강남 네이티브였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계획과 교수는 “사람은 누구나 이미 형성한 네트워크 안에서 살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특히 결혼 후 집을 살 때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부모들은 자기가 사는 곳 근처에 마련해준다”고 말했다. 서원석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익숙한 곳에 살기 원하는 게 당연하다”며 “특히 강남은 강남 프리미엄과 결부해서 이런 욕구가 더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이사 가고 싶은 동네는 잠실



 자기 동네에 만족한다지만 만약 이사를 한다면 어디로 가고 싶을까. 답은 잠실동(12%)이었다. 청담동과 반포동이 각각 11%, 압구정동과 대치동이 각각 8%로 뒤를 이었다. 주민 스스로도 강남으로 생각하지 않는 동네가 이사가고 싶은 곳으로 선택받은 이유는 뭘까.



 동네를 선정한 기준을 보면 이해가 된다. 잠실을 꼽은 사람은 편리한 교통(42%)과 문화·편의시설(23%)에 높은 점수를 줬다. 김찬경 잠실1번지 공인중개소 대표는 “잠실은 지하철 잠실(2호선·분당선)·신천·종합운동장역(2호선) 등이 연결돼 교통이 편리한 데다 롯데월드·롯데시네마라는 문화시설과 롯데마트라는 편의시설이 있다”며 “학군도 비교적 좋은 편이고 대치동과 가까워 사교육 시키기에도 편리하다”고 지역 특성을 설명했다. 재밌는 건 송파구 응답자가 잠실에 몰표를 던졌다는 점이다.



 청담동과 압구정동으로 이사가고 싶다고 꼽은 응답자는 그 이유로 모두 지역 프리미엄을 가장 많이 들었다.



강남의 미래



 자, 바로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이 정의하는 강남의 현재다. 그렇다면 강남의 미래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얼마 전 포르투칼 리스본에서 한국으로 짐을 부치는데 주소에 ‘강남’이라고 썼더니 택배 직원이 ‘나도 강남을 안다’더라”며 “싸이 덕분에 강남이 세계적 명소가 되긴 했지만 아직은 전세계 사람 누구나 뉴요커나 파리지앵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강남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강남을 점점 더 지리적인 경계보다 상징적인 경계로 정의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며 “강남 스타일이 각각 뉴욕(사람처럼 멋스런) 스타일과 파리 스타일을 의미하는 뉴요커나 파리지앵과 같은 반열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안혜리 기자

유성운·심영주·조한대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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