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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대모 소차니 밀라노와 다른 그의 실험에 꽂혔다

중앙선데이 2014.01.17 23:26 358호 6면 지면보기
글로벌 인재가 넘쳐나는 시대, ‘한국인 최초’라는 수식어가 촌스러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또 쓸 수밖에 없는 건 패션 디자이너 강동준(36) 때문이다. 그는 이번 밀라노 남성복 컬렉션에서 ‘한국인 최초’로 패션쇼를 열었다. 밀라노 남성 컬렉션은 구찌·제냐·프라다 등 내로라하는 패션하우스들이 주류를 이루는 곳. 브랜드마다 최상의 원단과 장인 정신을 내세우는 무대이기에 입성 또한 쉽지 않다. 그들이 원하는 숍에 들어가야 하고, 대표 잡지에 노출돼야 하고, 프레젠테이션도 2회 이상 해야 하는 조건이 뒤따른다. 그런데 강씨는 통상의 개인 참가도 아닌, 주최 측의 초청을 받아 14일(현지시간) 무대를 꾸몄다. 어떤 행운이었을까.

밀라노 남성 컬렉션이 첫 초청한 한국 디자이너 강동준

뉴욕 패션스쿨 파슨스를 졸업한 강씨는 2006년 남성복 ‘디그낙(D.GNAK)’을 론칭한 뒤 꾸준히 국내외에서 활동해 왔다. 지난해 말 서울시가 추진하는 글로벌 패션브랜드 육성사업 ‘서울스 텐 소울(Seoul’s 10 Soul)’에 열 명 중 하나로 뽑혀, 계획대로라면 2월에 있을 파리 트라노이 트레이드쇼를 준비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초, 밀라노 남성 컬렉션을 주관하는 이탈리아 국립 패션협회로부터 연락이 왔다. 강씨를 콕 찍어 참가 러브콜을 보낸 것. 올해 협회의 이사가 된 패션계의 대모 카를라 소차니(전 이탈리아 엘르의 편집장이자 세계적 편집숍 ‘10꼬르소 꼬모’의 창립자)의 추천이었다.

처음엔 기쁘기보다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밀라노가 내세우는 스타일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길거리에서 쉽게 보는 정형화된 수트가 밀라노라면 강씨의 옷은 수트를 기반으로 하되 소재와 실루엣을 다양하게 변주시키는 걸 무기로 삼았다. 허리 아랫 부분이 스커트처럼 퍼지는 재킷과 셔츠, 치마 같은 바지를 과감히 선보였다. 나중에 주최 측으로부터 설명을 들어 보니 그 실험성이 높이 평가받았단다. 밀라노가 이제는 새로운 걸 원하는 상황이 됐고, 누구나 아는 밀라노 패션을 식상해한다는 것. 소차니 역시 변화를 추구하면서 한국에서 초청 디자이너를 물색했다. 레이더망에 잡힌 게 그였다.

컬렉션 전날, 휴대전화에서 들리는 그의 음성은 가볍고 경쾌했다. 거사를 앞두고 한껏 긴장하고 예민해 있으리라는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2015년 안에 밀라노에 가겠다’는 포부를 그간 수차례 펼치던 그였기에 소감이 궁금했다. 그저 “즐기고 있다”는 그는 옷을 만드는 것은 결과를 알 수 없는 게임이요, 옷을 입는 것은 스스로 즐기는 놀이라 했다. 컬렉션에서 마술을 곁들이고, 지금의 아내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깁스를 한 모델을 등장시키는 등의 깜짝 퍼포먼스를 벌여 온 그를 조금은 이해할 만한 대목이었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느껴지는 그이지만 의외의 이력이 하나 있다. 미국 유학 뒤 한국에 돌아와 MBA(KDI 국제정책대학원)를 2년간 공부했다. 디자이너라도 경영 감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브랜드 론칭보다 득실과 셈법을 배웠단다. 그런 내공이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빛을 발한 걸까. 2010년 런던 컬렉션에 나갔던 그는 단 두 번 만에 목표를 밀라노로 선회했다. 해외 세일즈에 집중하려면 한국도, 런던도 아닌 밀라노가 최적이라 판단했다. 세 시즌에 걸쳐 밀라노의 시장 조사를 하면서 수입 브랜드보다 가격 대비 좋은 원단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걸 깨달았고, 그렇다면 컬러를 최소화하는 디자인을 해 보자는 결론을 냈다. 답은 블랙앤드화이트였다. 지난 2년간은 모노톤 의상만 줄곧 컬렉션에 선보였다. “한국에서는 절대 안 된다”는 주변 반대가 심했지만 스스로 잘 할 수 있는 걸 해보겠다는 뚝심으로 밀어붙이자 매출은 두 배 넘게 뛰었다.

이번 컬렉션에도 흑백에 짙은 붉은색을 포인트로 하는 의상들을 등장시켰다. ‘옵티컬 오리가미(광학적 종이접기)’라는 컨셉트에 맞춰 런웨이 가운데 반사가 반복되는 거울을 설치, 모델들의 모습이 끊임없이 복제되는 시각적 효과를 이끌어냈다.

“한국에서 온 디자이너라는 것보단 밀라노에 새로운 디자이너가 나타났다는 기사가 떴으면 좋겠어요. 그게 진짜 글로벌 브랜드가 되는 첫 걸음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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