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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편의점 습격사건, 이 시대의 연애와 노동을 읽다

중앙일보 2014.01.17 00:18 종합 18면 지면보기
아파트, 옥상, 편의점, 골프장 등을 사회학 연구의 소재로 삼는 전상인 교수. “이념 논쟁, 통계 맹신에서 벗어나 현실 문제와 좀 더 밀착된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중세 신앙으로부터 독립해 인간의 이성적 사고를 강조한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의 유명한 발언이다. 1987년 미국의 개념예술가 바바라 크루거는 이를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비틀었다. 상품 구입이 더 이상 생존을 위한 필수 행위가 아니라 쇼핑 강박, 자아 실현 등의 의미까지 거느린 하나의 생활 양식, 여가 활용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진단이었다.

『편의점 사회학』 낸 전상인 교수
팬티서 요트까지 파는 요지경 공간
김애란 소설, 웹툰 보고 현장 진단
탁아 등 공공 인프라 될 가능성도



 서울대 환경대학원 전상인(56) 교수는 이를 다시 한 번 바꾼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 고로 존재한다”로. 그만큼 편의점은 21세기 한국인을 규정하는 보편적 공간이 되었다는 얘기다. 최근 펴낸 책 『편의점 사회학』(민음사)에서 그런 주장을 했다.



 15일 전 교수를 만났다. 서울 서소문로 한 편의점에서다. 그는 매장 내 상품 배치만으로 어떤 편의점인지 구분할 줄 알았다. ‘현장 공부’를 충실히 했다는 얘기다. 그가 인용하는 김애란의 소설, 웹툰 등 참고 목록은 학술서의 딱딱한 경계를 뛰어 넘는다.



 국내 첫 편의점은 1982년 롯데쇼핑이 서울 신당동에 개설한 ‘롯데세븐’이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소득수준에 비춰 편의점 문턱이 높았던 탓이다. 본격 정착은 80년대 후반부터다. 핵 가족화 등의 이유도 있지만 자유 무역을 지지하는 우루과이라운드 참여,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정책, 89년 도소매업 진흥 5개년 계획 등이 복합 작용한 결과라는 게 전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소설가 김애란의 단편 ‘나는 편의점에 간다’를 무척 재미 있게 읽었다. 80년생인 김애란에게 편의점은 문화 아이콘 같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가령 92년 탤런트 최수종·최진실이 출연한 MBC 드라마 ‘질투’에서는 젊은이들이 편의점에서 김밥·라면을 먹으며 데이트를 즐기고, 편의점 샌드위치를 씹으며 야근을 한다. 심지어 면 팬티도 편의점에서 산다.



 전 교수에 따르면, 당시 편의점이 이렇게 첨단 유행 공간일 수 있었던 이유는 현대 사회의 소비조작 메커니즘 때문이다. 편의점 상품의 화려한 포장이 불필요한 구매를 유도한 끝에 결국 소비자가 사들이는 건 상품이 암시하는 행복·사랑·안락에의 약속이고, 소비하는 건 상품에 붙어 있는 상표 자체라는 진단이다. 전 교수는 앙리 르페브르·미셀 푸코 등 비판적 성향이 강한 문화비평가들 이론을 동원해 그런 해석을 시도한다.



 전 교수는 “현재 한국의 사회학은 정작 분석 대상인 사회적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계급·국가·젠더·세계체제 등 논쟁적 이슈들에 대한 이론 싸움에 빠져 있거나 ‘객관적 통계’라는 미명 하에 추상적 숫자 계산에 매몰되다 보니 대중의 접근이 차단된 ‘학문을 위한 학문’이 되어 버렸다”는 주장이다.



 그는 미국 브라운대에서 ‘미군정기(美軍政期) 국가 건설’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몇 년새 그의 관심은 ‘생활 이슈’로 변화했다. 일상 공간을 비판적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2010년 펴낸 『아파트에 미치다』, 2012년 펴낸 『옥상의 공간사회학』 등이 그 결과물이다.



 전 교수는 “우리의 문제를 우리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아이템이 뭔지 찾다 보니 아파트에 이어 편의점에 주목하게 됐다”고 했다. 거대 담론이 난무하던 80년대 사회학에 대한 반작용으로 미세한 일상을 통해 시대와 세상을 해석하는 2000년대 ‘일상 사회학’ 혹은 ‘미시 사회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 교수가 그린 21세기 편의점의 얼굴은 다면적이다. 88만원 세대의 식사 장소에서부터 수입차·요트까지도 파는 그야말로 ‘요지경 공간’이다.



전 교수는 “탁아, 노인 관리, 재난 지원 등 앞으로는 동사무소를 대체할 새로운 사회 인프라로 발전할 가능성도 옅보인다”며 “그런 공공적인 공간으로 발전할 경우 편의점 소비에 대한 진지한 성찰, 현행 편의점 체제에 대한 공공적 접근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의 다음 행선지는 골프장이다. “한국적 네트워크의 온상이기도 하고 계급·젠더·부동산 개발 등이 얽혀 있잖아요.” 다음 책은 ‘골프 사회학’이라는 예고였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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