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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한국사 교과서 전쟁의 '비상식'을 고발한다

중앙일보 2014.01.17 00:10 종합 30면 지면보기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
전쟁에선 상식이 안 통한다. ‘우리 또는 적’의 이분법만 있을 뿐이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논쟁은 ‘전쟁’이었다. 비(非)상식이 수두룩했다.



 포문은 지난해 5월 보수 성향의 현대사학회가 열었다. 학회 회장 권희영 교수는 기존 중·고교 역사 교과서 상당수를 ‘좌편향’으로 비판했다. 그는 교학사 교과서의 주 저자다. 본 심사를 통과했다지만 교과서가 검정 중이었다. 교과서 저자의 처신으론 맞지 않았다.



 ‘좌편향’ 비판에 반발한 이들의 대응도 치졸했다. ‘교학사 교과서가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 한다’는 등의 ‘카더라’ 괴담을 인터넷에 퍼날랐다.



 8월 말 8종 전체가 최종 합격을 받자 교학사 교과서에 파상공세가 개시됐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교사들에겐 전달도 안 된 교과서의 내용을 언론에 뿌렸다. 야당 의원 15명이 ‘교학사 교과서 검정 합격 취소’ 기자회견을 연 것은 교사들이 교과서를 손에 쥔 첫날이었다.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교학사 교과서의 다른 저자에게 ‘새누리당 역사 교실’ 강연을 맡겼다. 김 의원은 앞서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승리로 종결시키자”고 발언했었다. 강연을 사양하면 좋았을 저자는 “좌파 진영이 교육계와 언론계의 70% 를 장악했다”는 발언으로 역사전쟁을 확대했다. 일부 언론은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하는 현대사학회 성명서를 기사화하며 주 저자가 학회 회장임은 알고도 쓰지 않았다.



 지난 10월 이 지면에 ‘교과서 논쟁도 교과서다워야’라는 칼럼을 썼다. 안타깝게도 논쟁은 ‘교과서’에서 더욱 멀어졌다. 민주당은 “교학사 검정을 취소하라”며 정부의 자의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들에 웬 수정 명령이냐”며 반대하는 모순을 연출했다.



 교학사 교과서를 비판한 역사단체들의 행태도 수긍이 안 됐다. 이들은 교학사 교과서에 수백 건 오류가 있다고 발표하면서도 교학사엔 자료 제공을 꺼렸다. “오류 수정에 이용될 우려가 있다”면서다.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비상식은 새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럴 바에 국정교과서로 돌아가자”는 여권이나 “국정 교과서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단언하지 못하는 교육부나 모두 무책임하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릴 셈인가.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 명단을 실시간으로 야당이 공개한 것은 학교에 대한 테러나 다름없었다. 교과서 선택은 철저히 개별 학교의 영역이다. 이것이 존중받지 못하면 ‘교과서 검정제’는 뿌리째 흔들린다.



 학생들은 이 전쟁을 어떻게 볼까. “어른들이 원하는 성향으로 우리를 키우려는 것 아니겠어요.”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했다 철회할 수밖에 없었던 상산고에 올봄 입학하는 한 학생의 반문이다. 국정 교과서 전환을 외치거나 검정제의 근간을 흔드는 집단들은 이 학생에게 뭐라 답할 것인가.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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